총체적 난국인데 다음 이야기는 궁금해
토요일 영화보기 두번째. 문제의 그 영화, 어쌔신 크리드.
사형수 칼럼 린치. 사형을 당한 줄 알았던 그는, 병상에서 깨어난다. 그의 옆에 있던 여자, 소피아는 자신이 앱스테르고라는 조직에 소속된 과학자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칼럼은, 15세기 스페인에서 활동한 '암살자'의 직계 후손이며, 그만이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올 비밀,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전자 속에 숨은 기억을 찾는 최첨단 기술, '애니머스'를 이용해 15세기, 그의 조상인 아귈라의 기억을 체험하는 칼럼. 암살단 중 마지막으로 그 비밀을 숨기고자 했던 아귈라의 행적을 따라가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기억의 체험 이상을 경험하고, 선조의 지식과 기술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는, '선악과'에 숨겨진 비밀로 세상을 통제하려는 앱스테르고와 템플 기사단에 맞선다.
이런 영화를 볼 땐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이 든다. 너무 재미없어서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 떡밥은 많아서 다음 편에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지 궁금한 마음. 선행 체험을 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낮추고 간 데다가, 초반에는 나름 괜찮길래 '이 영화가 그렇게나 까일 이유가 있나?' 싶었는데…. 역시나 초반 집중력은 끝까지 가지 못하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하품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굉장히 거창한데, 이를 촘촘하게 짜 넣지 못한 채 큰 개념들만 툭툭 던져놓았다. 선악과, 자유의지, 폭력성, 템플 기사단, 암살자…. 익숙하지 않고, 다소 뜬구름같은 용어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최소한 이것들을 잘 엮어야 하는데, 그런 점이 많이 부족했다. 난 원래 이런 뜬구름 스토리에 환장하기 때문에, 조금만 촘촘하다 싶으면 떡밥을 덥석 무는 타입이다. 이렇게 역치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생각, '아, 그래서 언제 끝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건, 영화에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들이 너무 아까운데, 특히 이 영화의 주요 출연진을 보면 '재.능.낭.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마이클 패스밴더도 그렇지만, 마리옹 꼬띠아르, 제레미 아이언스, 샬롯 램플링, 브랜든 글리슨 등 연기라며 절대 아쉽지 않은 배우들이 나온다. 게다가 연기는 다들 왜 그렇게 잘하는 거야? 모두 구멍 숭숭 뚫린 대본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특히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한 소피아 라르킨, 샬롯 램플링이 연기한 엘렌 케이는 남성 일색의 블록버스터 사이에서도 존재감 강한 여성 캐릭터라서 눈길이 갔다. 게다가, 만약 후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이 두 사람이 메인 빌런이 될 예정이다. 연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배우가 악역이라니…. 이걸 보고 싶어서 후속편을 기다린다고 하면 한 대 맞으려나?
게임 원작 영화다 보니 작년 개봉한 <워크래프트>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나야 두 게임을 모두 모르니까 '원작을 얼마나 잘 살렸느냐'를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영화가 게임이라는 정체성을 영화에 녹이느냐에 대한 선택,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녹여내느냐에 대한 선택이 다른 점은 인상적이다. <워크래프트>가 게임 속 세계관을 영화로 구현하는 방식은 '전쟁의 서막'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게임의 장대한 배경 서사를 풀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영화는 중세 배경의 판타지 전쟁영화 같았고, 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겠다고 하는 기대를 하게 한다. 반면 <어쌔신 크리드>는 주인공 칼럼이 겪는 것 자체가 게임과 유사하다. 그가 '애니머스'를 통해서 기억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플레이어가 게임을 좀 더 직접 체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애니머스에 장착된 채로 적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애니머스 주위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도 그렇고, 칼럼이 애니머스를 통해 암살자로서 직접 경험하고 수련하는 것이 그의 능력치를 쌓게 하는 것도 그렇다. 영화를 보는데도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군데군데에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거의 유일한 매력이었던 그 지점도 어느 순간 놓아버렸지만.
뭔가 많은 떡밥을 던졌는데, 돈 버는 속도를 봐선 아무래도 후속편을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그래도, 제발,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면 참 좋겠다. 21세기에 활약하는 암살자의 이야기를 그릴 것인지, 그 망할 '선악과'는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칼럼과 소피아는 이제 서로에 대한 적으로만 존재하게 되는지, 후드를 뒤집어쓴 마리옹 언니는 왜 나왔던 것인지! 궁금한 게 많아진다. 그래서 속편을(읔) 해달라는(읔!) 건 아니고요….
게임 <어쌔신 크리드>의 플레이어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