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곱씹고, 소통하고, 그러면서 다시 보고 싶어질.
시사회로 보고 왔다. 기대하던 SF 영화, <컨택트>.
시사회에 초대해주신 카카오 브런치 관계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어느 날 희뿌연 안개와 함께 등장한 의문의 거대 비행체. 외계에서 온 12개의 쉘(Shell)은 지구 각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왜 그들이 지구에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각 국가는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전문가들을 동원하고, 미국 정부는 저명한 언어학자인 루이스 뱅크스를 투입하여 외계인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루이스와 물리학자 이안이 포함된 특별팀은 18시간마다 열리는 비행물체에 들어가 외계인과 소통하고, 그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그저, 멍했다. 처음 보고 나서는 차마 이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영화가 주는 느낌이나 질감이 너무 독특해서 이를 잘 표현할 만한 어휘를 찾기 어려웠다. 같이 본 회사 동료와도 한참 말을 잇지 못하고, 장면과 이야기를 연결해보고 곱씹어봤다. 그제야 안개처럼 느껴지는 것이 조금씩 걷히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맞춰보면서 감탄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극본도 극본이지만, 그 극본에 생명을 불어넣은 연출에 감탄하게 된다. (<시카리오>나 <프리즈너스>를 보지 않은 희귀한 인간이라) 드니 뵐뇌브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왜 수많은 사람이 엄청난 찬사를 보내는지 알 것 같았다. 샷과 신은 하나하나가 예술이었고, 수수께끼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듯한 편집은 '너무 궁금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못 떼게 하였다. 몬태나 주의 너른 벌판,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거대한 물체,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하얀 안개. 이게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광경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날 이 영화에 빠지게 한 건 음향과 음악이다. 영화는 요즘 봤던 작품 중에서 가장 고요했다. 내가 종이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미안할 정도로. 그만큼 고요했기 때문에 음향과 음악이 신과 샷이 내포한 긴장감을 그 어느 작품보다 증폭해서 느끼게 해준 듯하다. 침묵, 루이스의 거친 숨소리, 안개를 뚫고 들리는 의문의 소리까지,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떼지 못했으니까.
캐릭터도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정말 훌륭했다. 이 영화는 에이미 아담스 원톱이다. 그리고 에이미는 원톱 그 이상의 몫을 해낸다. 피곤함에 지치고, 불안하고, 잔뜩 겁먹은 루이스가 소통을 통해서 점점 확신과 힘을 갖춰가는 과정을, 에이미는 설득을 넘어 찬양이 나올 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다른 배우 중 이만큼의 감정의 진폭을 섬세하게 연기해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제레미 레너의 '이안'은 에이미 아담스의 '루이스'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레너가 맡은 역할 때문인지는 몰라도, 항상 뭔가 껄렁한 캐릭터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느낌은 하나도 없이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이 영화가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소통'인 것 같다. 영화는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두 존재가 의사소통을 위해서 시간을 들여 의미를 나누고, 표현을 구축하는 과정의 '소통'이 주를 이룬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며, 이 경우에는 군인을 투입한 정부의 인내가 필요하다. 결과물이 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기다림도 따라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인내의 과정을 묵묵히 거친 사람만이 '무기'를 손에 얻는다.
하지만 <컨택트>에서의 '소통'은 외계생명체와 인간 간의 소통만 의미하지 않는다. 각국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12개의 쉘에서 정보를 얻는데, 이 소통이 항상 원활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될 리가 없다. 외계 존재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국제 사회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모습, '무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각국이 정보 공유를 중단하고 커뮤니케이션을 끊는 모습 등등.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몰고 갈 정도로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제사회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영화는 "소통은 중요"하며, 소통을 위해서는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며, "폭탄과 총과 탱크와 함정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느낌? 이 영화 어렵다. 블록버스터만큼 신나는 영화가 아니고, 오히려 보는 내내 고요하다고 느낄 지경이라 장벽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필사적으로 '소통'하려는 의도와 행위를 강조하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마지막에 '놀라운 반전'이 나오고 흩어진 단서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합쳐질 때 느끼는 짜릿함도 있다. 그리고, '놀라운 반전' 속에서 모든 것을 아는데도 그걸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의 고통이 느껴져서 안타깝기도 하다. 두고두고 곱씹으며 감탄할 영화를 오랜만에 만났다. "보고, 생각하고, 소통하고, 다시 봐야 하는" 영화. 개봉하면 한 번 더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