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어설퍼서 여러모로 아쉬웠던

by 겨울달

드디어 후기를... 쓰느라 힘들었다.



조인성, 정우성, 배성우 등이 출연한 <더 킹>. <관상> 한재림 감독의 작품이다. 남들보다 폼나게, 힘있게 살고 싶었던 검사 박태수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훑어보고자 했다. 영화 속 사건은 실제의 사건에 큰 영향을 받으며 흘러가고, 이를 "역사"라 칭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역사"를 마음대로 주무르려 한다.

이 영화를 봐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사실 심각하게 고민했다. 워낙 한국영화를 잘 안 보기도 하고, 이렇게 남자들이 떼로 나온 한국영화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대실망하기도 했고(아수라), 영화에 대한 감이 잘 안 왔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래도 "천만 냄새"라는 말을 들어서 살짝 솔깃해졌고, 결국은 시간 내서 영화를 봤다. 본 걸 후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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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딱 예상한 만큼 전개된다. 현대사를 따라가고, 검사가 주인공이다. 여전히 정치검찰 딱지를 못 벗는 검찰과 검사의 이야기가 주인공이다. 그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80%를 차지한다. 나머지 20%는 검사와 결탁한 조폭 이야기인데, 이 부분은 제에발 사실이 아니길, 아니, 그 어떤 것도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비상과 추락, 그리고 재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인물 간의 관계도 단순하고, 캐릭터도 단순명쾌하다. 예상한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안에서 얼마든지 재미를 찾을 수 있고, 전형적인 틀이라도 재미있는 건 또 재미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게 <더 킹>은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짧지 않은 상영시간 동안 대체 어디에서 재미를 찾아야 하는지, 여러모로 난감한 시간이었다.

그 긴 상영시간을 온몸으로 느꼈던 건, 끊길 듯하면서 끊기지 않는 이야기 때문이다. 이 정도 하면 됐는데, 이쯤에서 끊으면 충분한데 하는 부분에서 자꾸만 이야기는 이어진다. 게다가 태수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나직하게 고백하는 그 장면! 나는 그 장면에서 끝날 줄 알았고, 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가서 정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마치 에필로그, 또 에필로그가 나오는 것처럼. 이러니까 이야기가 깔끔한 맛이 없었다. 왜 모든 걸 다 풀어내야 하는지, 왜 모든 것을 다 말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상상의 영역으로 놔뒀으면 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 이야기가 현실에 굉장히 맞닿아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한 요소가 있다. 바로 인물들의 불로장생(!). 최소 IMF 사태 이전부터 이명박 집권기 총선까지 다루는데 이 기간 최소로 잡아도 20년 가까이 된다. 아니, 태수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됐으니까 30년 가까이 다룬 것. 왜 늙지 않는가에 대해 "권력은 늙지 않는다."라고 해석했는데, 그러면 권력 중심의 인물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닐까. 모두가 30년 가까이 그 얼굴을 꾸준히 유지하는 건 의도된 설정이 아니라 그저 게으름의 산물 같기도 하다.

게다가 정우성은 너무 잘생겼다. 조인성도 너무 잘생겼다. 하지만 두 사람 다 한강식, 박태수에게 기대한 무게감이 없었다. 다른 인물들이 그 역할에 맞는 무게감을 가진 데 반해, 가장 중심이 되는 두 사람의 캐릭터 표현은 기대했던 것보다 가벼웠다. 정우성은 <아수라> 때도 느꼈지만, 욕 못하고, 나쁜 역할 못 한다. 조인성도 블랙 코미디의 원톱 주연을 하기에는 가볍다. 특히 내 몰입을 깬 게 그때그때 튀어나오는 태수의 내레이션이었는데, 멜로 드라마에서 통하는 목소리가 왜 여기서는 안 되는 건가,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했다.

<더 킹>이 나온 이후,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이하 울프)>를 많이 '참고'했다고 말했다. 난 <울프>를 보진 않았지만, 그 영화를 소개할 때마다 나오는 유명한 클립은 여러 번 봤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웨이브 댄스(!)가 인상적인 파티 장면. 돈을 만지는 월가 인간들이 말하는 '화려하게 놀기'의 극치를 보여준다. 펜트하우스 파티 장면, 특히 태수, 강식, 동철이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는 장면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댄스가 어렴풋이 겹쳐 보였다. 물론 <울프>를 안 봤고, 레오가 클론 노래에 맞춰 춤출 리는 만무하지만, 순간 드는 묘한 느낌 때문에, 그리고 춤추는 배우들의 어설픈 몸짓 때문에, 안 하느니만 못한 장면이 되지 않았나, 15금 등급이 그렇게 중요했던 건가 싶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더 킹>에 가장 아쉬웠던 건 '고민'이 표피인 것에만 머무른다는 것이다.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는 그만큼 현실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더 킹>의 풍자와 코미디는 역사적 사실과 주인공들의 스토리를 얽어내는데, 그렇게 참신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골때리는 느낌도 없고, 그저 괜찮은 설정 정도로 마무리됐다. 풍자라면 좀더 날카로웠으면, 할 말 못 할 말 다했으면, 이왕이면 내 취향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여러모로 아쉽다.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캐릭터는 최도일이다. 다만 이 역은 누가 맡아서도 잘해냈을 것이라는 건 함정. 물론 류준열이 못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연기했어도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캐릭터가 되었을 것이다. 반면 한강수는 정우성이라서, 박태수는 조인성이라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야기의 매력을 살리지 못하는 연기. 둘 다 향기 없는 꽃을 보는 느낌이었다. 사실 배성우 외에 이 영화에서 캐릭터를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암튼 여러모로 어설퍼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 더 아쉬운 영화.

사족. 이 영화에서 간접광고가 유달리 거슬리는 건 나뿐이었을까. 태수가 이사할 때 트럭 위 상자에 새겨진 파크랜드 로고는 참 강렬했다. 그리고 마지막 반격을 위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태수가 양복를 맞출 때, 조인성이 모델인 양복 브랜드가 떠오르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문제는 그다지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라는 것이다. 광고도 좀 적당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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