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봐주세요...
감히 말하건데 작년에 본 드라마 중 가장 재미있었다.
이야기는 몇 갈래로 진행된다. 서부 일대를 공포로 물들이는 무법자 프랭크 그리핀이 한때 아들처럼 생각했던 로이 구드를 죽이기 위해 그를 찾아다닌다. 그리핀은 구드를 숨겨 주는 마을은 주민 모두를 죽일 것이라 맹세한다. 한편 마을 보안관 빌 맥뉴는 연방보안관의 요청을 받아 로이 구드를 쫒는 프랭크 그리핀을 추적한다.
한편 그리핀에게 로이 구드는 작은 마을 라벨의 외곽의 목장에서 쓰러지고, 목장 주인 앨리스와 그 가족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는 그곳에서 앨리스의 부탁으로 인디언에게서 받아온 야생마를 길들이고 앨리스의 아들 트러키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된다.
앨리스의 마을 라벨은 석탄 광산이 있다. 얼나 전 매몰 사고로 남자들은 거의 다 죽고 여자들과 노인, 아이들만 남았다. 여자들은 광산을 다시 열기 위해 회사와 거래를 하거나, 운송에 필요한 말을 사고팔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들은 마을에 위험이 닥치고 믿었던 외부 세력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자, 자신들 스스로 마을을 지키려 한다. 그래서 마지막은 그리핀 일당과 마을 주민들의 치열한 총격전이 펼쳐진다.
이 드라마는 애초에 여성 중심이란 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도, 리뷰에서 페미니스트적 색채가 강하다는 말이 나오면서 여성 중심 드라마라 인식됐다. 그런 것을 기대했다가 여성의 대사나 비중이 크지 않은 것에 실망하며 이 작품을 욕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트위터에서도 한 번 말했지만 애초에 여성 중심 서부극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광고하지도 않았다. 여성 캐릭터의 출연 분량이 적고 대사가 적다고 페미니즘적 색채가 있다는 게 거짓 또한 아니다. 이 드라마에서 여자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위기를 헤쳐나가고 새로은 삶을 개척한다. 각자의 숨은 욕망과 약점과 생각의 차이를 드러내고, 이를 그들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합의하며 문제를 해결한다. 라벨을 지킨 사람들은 결국 죽은 남편들의 총을 들고 무법자들에 맞선 여자들이었다.
반면 남자들은 파괴와 혼돈을 불러오는 존재들이다. 그리핀과 구드처럼 무법자로 살아오며 자신들이 지나가는 모든 곳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도 남자들이다. 마을 보안관이 일생을 걸 일을 찾은 듯 떠나버린 것도, 남아서 마을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한 채 여자들의 보살핌을 받는 것도 그렇다. 거만한 기자는 공명 때문에 로이 구드의 행방을 대서특필해 라벨을 위험에 빠뜨리고도 나몰라라 했고, 마을과 광산을 지켜야 하는 석탄회사 보안요원들은 그리핀이 오기 직전 마을 사람들의 말을 훔쳐 도망가는 비겁한 짓까지 한다.
이런데 여성이 덜 나온다고 여성 중심 작품이 아니라 욕할 건가?그건 좀 아닌듯. 반면 드라마가 왜 이러냐고, 감독이 페미냐고 할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을 각본/연출한 스콧 프랭크는 (남자이며) [마이너리티 리포트] 각본을 썼고 [아웃 오브 사이트]로 작가조합상도 받았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제작자는 스티븐 소더버그다. 여성이 남성보다 조금만 더 긍정적으로 그려지면 창작자가 페미냐고 날세우는 사람들이 예상할 만한 인물들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고 성별로 캐릭터 성격이 나눠지는 건 의도라기보단 개척시대 서부의 독특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선택한 것이라 느껴진다. 의도가 아름다운 만큼 이야기도 내실있고 깔끔하다. 그 점이 가장 좋았다.
이야기가 너무 에누리 없이 제대로 끝나서 아마 다음 시즌은 안 나오겠지만 ㅠㅠㅋㅋ 정말 8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러니 제발 봐주세요......
여기 토브생 나오는데 [메이즈러너]의 뉴트와는 완전히 다르다. [메런] 때문에 보신 분들은 심히 충격 받았을지도...
이 드라마에서 제일 맘에 드는 캐릭터는 앨리스의 원주민 시어머니인 아이오비다. 이 할머니가 굉장한 신스틸러다. 좀처럼 웃을 구석 없는 이 드라마의 웃음을 담당해서, 새벽에 보다가 빵빵 터졌다.
https://www.netflix.com/title/80097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