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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드 카본

나만 재미있게 봤나?

by 겨울달

넷플릭스가 야심차게 준비한 SF 시리즈. 몇백년 후 인간의 의식을 저장할 수 있고 육체를 갈아탈 수 있는 세계가 펼쳐지고, 그곳에서 250년만에 풀려난 사립탐정이 (일종의) 살인 사건을 수사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수사 이야기보단 다른 것들이 더 재미있다. 수사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인가 싶을 정도. 오히려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의, 빈부 격차의 극단적 발현, 교묘한 시스템에 대한 저항 같은 코드로 읽는 게 더 흥미롭다.


영생은 반드시 미친자를 만들어낸다. 인간의 삶이 위대했던 건 자신의 한계를 알기 때문인데, 영생은 그걸 극복하게 한다. 이 드라마에 미친 인간이 너무 많다. 그들은 다 돈을 쥐고 있고 같은 육체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갈아탄다. 같은 모습으로 오랜 시간 살아가는 거... 음, 신이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해도 신은 될 수 없다. 진짜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어도 "미친 사람이다." 정도로만 보는 게 인간이니까.


그래도 여동생은... 정말 대단했다.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이건...


사랑의 감정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나를 사랑하는 이 사람은 나의 정신세계를 사랑하는가, 갈아탈 수 있는 나의 몸뚱이를 사랑하는가. 코바치와 오르테가의 인연도 육체의 결합은 가능할지 몰라도 서로가 그리워하고 원하는 상대가 다르기 때문에 이어질 수 없었다.


작품 전체를 뒤덮은 사이버펑크. SF의 상상력이 장르를 나눠도 될 만큼 이것, 아니면 저것이 됐다. 장르만으로 신선함을 주는 시대는 지났는데, 이 드라마가 그것보다 더 많은 걸 줬는지, 또는 줄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다음 시즌이 나온다면 (계약은 했지만 파기 가능성 있다.) 이야기 면에 좀 더 치중했으면 좋겠다.


배우들은 정말 멋지다. 직접 본 조엘 킨나만은 엘프다. 여기서 피범벅을 해도 엘프다. 피지컬이 주는 압도감이 있다. 목소리도 멋지다. 그 외에 인상적인 사람은 오리지널 코바치 역의 윌 윤 리, 여동생 릴리 역의 디첸 라크먼이다. 두 사람 모두 아시아계 배우가 많지 않았던 시기부터 조금씩 입지를 다져온 사람들이라, 이런 대작에서 중요 배역들 맡아서 정말 반가웠다.




http://www.netflix.com/title/80097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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