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빌보드

그래 ㅆㅂ 이게 인생이지

by 겨울달

이번 아카데미의 연기상 4개 부문에서 2개를 가져간 블랙코미디, [쓰리 빌보드]를 보았다.


참 특이한 영화다. 아니, '신기한 영화'라고 해야 맞을까? 중간중간 사람을 놀라게 만든다. 다 보고 나서도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든다.


눈뜨고 잠들 때까지 우리는 이야기를 소비하고, 그 수많은 이야기에서 일종의 '패턴'이니 '공식'이니 하는 것들을 찾는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니 앞으로 이렇게 전개될 것이고, 캐릭터들은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고 나름대로 예상을 하고, 맞추는 것은 나름 학습된 쾌감이다.


물론 너무 많이 맞아 들어가면 뻔하고 재미없는 영화가 되고, 얼토당토 안 한 내용이 전개되면 이상한 영화가 된다. 그래서 진짜 쾌감을 주는 '비틀기'는 기대를 '적당히' 벗어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쓰리 빌보드]는 바로 그런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상에 맞아 들어가는 건 하나도 없는데, 그게 터무니없지 않은 데다가 설득력이 강해서 계속 지켜보게 된다.


무능한 경찰을 탓하는 대형 광고판을 세운 후 조용한 마을에서 밀드레드를 곱게 보지 않을 것임은 짐작하고 남았다. 가족들 또한 그녀의 선택이 자신들을 힘들게 만들었으니 원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밀드레드가 직접적으로 공격한 경찰서장 윌러비는 성실하고 착한 경찰이었고, 그 누구보다 그녀의 사연에 안타까워하고 공감한다. 그는 췌장암이 심해지면서 투병 생활을 하는 것을 두려워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의 '충분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다시 밀드레드를 욕한다. 한편 인종주의자이고 동성애 혐오자인 개차반 경찰 딕슨은 윌러비가 죽은 후 경찰에서 쫓겨난 후 진짜 '경찰 일'을 하려 한다. 이건 밖에서 보면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딕슨은 그저 죽으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바로 봐준 윌러비에게 마음의 빚을 덜기 위함이다.


이들이 한 선택은 다른 이들의 이해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자신이 아는 근거에서 판단을 내린 사람들은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른다. 밀드레드도, 윌러비도, 딕슨도 그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밀드레드가 경찰서에 불을 지른 사건은 이 모든 상황의 집약체다. 그 사건이 (역시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는 것을 보고 '놀라움과 감동'을 느꼈다. 어쩜 이렇게 전개할 수 있지 하는 놀라움, 비틀기로 이렇게 놀라움을 줄 수 있구나 하는 감동 말이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다른 작품을 꼭 봐야겠다.


연기는 내가 굳이 감동하지 않아도 아카데미를 비롯한 각종 상과 극찬이 설명하고 있으니 패스. 프란시스 맥도먼드, 우디 해럴슨, 샘 록웰 외에도 익숙한 얼굴이 있다. 또래 젊은 배우들 중 두각을 보이며 필모를 잘 쌓고 있는 루카스 헷지스, 마이클 스털버그와 함께 올해 작품상 후보 중 3개에 출연한 기록을 세운 케일럽 랜드리 존스, 조용히 연기 참 잘 하는 애비 코니쉬 등을 봐서 반가웠다.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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