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은 영화
은둔하며 살았던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그린 영화. [딥 블루 씨]의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이 연출을 맡고 [섹스 앤 더 시티]가 대표작이 되기엔 아까운 신시아 닉슨이 에밀리 디킨슨 역을 맡았다.
영화는 당시 청교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에 반감을 가진 에밀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에밀리 삼남매는 다른 집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시를 쓰고 예술을 즐겼다. 그들에게 허락된 가장 큰 자유는 절대자인 신의 존재와 그의 가르침에 반기를 드는 일이었다.
에밀리는 당시 여성에게 강요된 삶을 거부하려 한다. 구혼자를 만나서 결혼해야 하고 자손를 낳고 기르면서 꿈과 열정을 버려야 하는 또다른 여성이 되고 싶지 않았다. 소리내어 저항할 수 없다면, 자신을 그 시스템에서 분리하는 방식으로 반항하기로 결심한다. 에밀리는 동생 비니와 올케 수잔, 친구 브리 등 그녀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에 만족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시간은 흐르고 소중한 사람은 떠난다. 몸도 마음도 허약해진 에밀리는 점점 자신을 고립한다. 디킨슨은 결국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택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는 디킨슨의 삶에서 중요한 여러 순간을 그녀의 시와 교차한다. 소중한 인연을 만날 때, 감정이 요동칠 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 소중한 것이 점점 사라질 때 그녀가 느꼈을 감정은 그녀의 시가 대신한다. 잘 정제된 언어로 주인공의 마음을 가장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해 낸다. 시를 읽는 신시아 닉슨의 목소리도 아름답다.
신시아 닉슨은 조용하지만 격렬하게 저항한 디킨슨을 깊이 있는 연기로 그려낸다. 디킨슨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면 행동 반경도 좁고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기 때문에, 눈빛과 손짓과 말투 하나하나에 많은 의미를 담아야 할 것이다. 닉슨의 연기는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시대극이 맞지 않거나, 조용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영화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요하게 물결처럼 흘러가지만 불꽃처럼 화르륵 피어오르기도 하는 누군가의 인생을 집중해서 듣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오랜 활동기간에 비해 참 작품 안 하기로 유명한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은 장면 하나, 대사 하나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이를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다.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0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