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이 세상을 구하는 미국 영화? 뭐 어때서?
정말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퍼시픽 림] 속편이 나왔다.
전편보다 많이 가벼워졌지만 더 멋져진 '집시'를 보면서 위로받았고 의외로 괜찮은 캐릭터와 캐스트 구성, 약간 의외의 반전이 썩 나쁘진 않았다. 1편이 예거만큼 카이주에 추점을 뒀다면 2편은 예거가 더 많이 나온다. 물론 오랜만에 본 카이주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징그럽다.
여전히 '눈뽕'에 취하는 영화라, 큰 화면으로 보시는 게 좋다. 하지만 아이맥스 3D는 필요없는 것 같다. 오늘 두번째 봤는데 솔직히 돈 버린 느낌. 그걸로 코엑스 대형스크린 2D를 보는 게 나았겠다 싶다.
사실 다른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바로 '우리나라의 반응'이다. 특히 '미국영화'가 아닌 '중국영화' 같다는 평가 말이다.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유니버설(미국)+레전더리(중국) 공동 제작이다. 하지만 말은 똑바로 해야지. 완다의 자본이 아니라면 유니버설은 애초에 이 영화 속편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중국 자본의 요구대로 영화를 만드는 건 당연할 수 있다. 기우가 있음은 당연히 안다. 중국자본의 할리우드 침투는 지금까지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더 많았고, 나 또한 기본적으로 그 입장에선 변함이 없다. 그러나 [퍼시픽 림]은 다르다. 오히려 중국 자본이 나선 게 신의 한 수라고 느껴질 정도다.
눈에 띈 것들만 몇 가지 정리해 보면
1. 메카물과 괴수물의 본고장이고 많이 사랑받은 동북아 지역으로 극중 무대가 옮겨옴.
2. 예거를 관리하는 태평양방위대 다수가 동양인으로 구성.
3. 주인공은 영국인+미국인 이지만, 훈련생들은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미국 등 국적과 인종도 다양함.
4. 물론 기술로 한참 앞선 중국 기업이 등장하며, (당연하지만) 놀랍게도 악역은 아님.
인데, 4번이 중국 자본의 요구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쳐도 1~3번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이런 할리우드 영화 본 적 있음? 최근 할리우드에서 '다양성' 때문에 말이 너무나 많은데,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좋은 본보기라 생각될 정도로 캐스트를 다양하게 꾸렸다.
이거에 시비를 건 사람들을 봤다. 웹에서 본 리뷰에서 '의미 없는 동양인(중국인) 캐스팅'이라고 지적하더라. 일단 이 영화에 동양인 캐스팅이 왜 의미가 없는지 모르겠고, 의미가 없는 배역에 백인을 가져다 꽂는 영화는 더 많았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백인 위주로 캐스팅되는 게 말이 안 된다. 동북아가 주 배경인데? 군 이름도 '태평양 방위군'이다. 동양인이 많은 게 당연한 거다.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보너스처럼 끼워넣은 중국인들, [킹 아서: 제왕의 검]에 등장한 쌩뚱맞은 무술과 동양인 캐스트 등은 할리우드 영화에 중국 자본이 만족할 만한 요소를 끼워넣은 것밖에 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백인이고, 백인이 이야기의 중심이며, 동양인은 그저 양념같은 존재다. (애초에 [트랜스포머]가 중국 자본을 완전히 만족시키려 했으면 사무라이 트랜스포머를 만들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스토리로 짰어야 했는데... 라고 하지만 이 시리즈에 대한 기대는 오래 전 버렸다.) 하지만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제목에 맞게(퍼시픽 림인데! 이름부터 태평양 지각이라고!) 배경도, 캐스트도, 스토리도 현대적으로 발전한 태평양 서쪽을 주무대로 택하면서 새로운 고객을 만족시키면서(?) 기존의 (고정) 관념에 도전한다.
나는 최소한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미국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인 배우가 주인공이고 영어로 말하고 할리우드의 '어디서나 먹힐 코드'를 차용한 것이 '미국영화'로 귀결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중국영화'도 아니다. 애초에 이 영화에 지역색은 의미가 없다. 중국어가 붙어있는 섀터돔, 후지산을 향해 뛰어가는 카이주를 보면 더 그렇다.
지역색이 의미없는 영화에서, 아직도 우리의 관념 속에 남아있는 '백인 구원자'에 대한 생각도 고칠 필요가 있다. 왜 태평양 동쪽에 사는 금발 벽안의 백인만 세계를 구해야 하는데? 영국 억양을 쓰는 흑인 청년과 미국인 고아 소녀, 중국의 천재 기업인이 힘을 합쳐 세계를 구할 수도 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6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