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버드

영화와 추억에 웃음과 눈물이

by 겨울달

[레이디 버드]는 단연코 올해 본 작품 중 최고로 꼽을 만하다.

기대를 많이 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이런 작품 정말 흔치 않다.


내게 [레이디 버드]는 기억을 꺼내는 영화다. 나도 레이디 버드처럼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앞둔 나이에 잔소리 많은 엄마, 도저히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집, 내 꿈을 이룰 기회가 많지 않은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세상의 중심 같고, 이렇게 특별한 나는 특별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이불 속에서 하이킥 백번은 할 것 같아서 가슴 한 구석에만 묻어둔 그 기억들. [레이디 버드]는 그 기억들을 아프지 않게 꺼낸다. 잘한 것 잘못한 것 재단하지 않고, 가장 소중한 나를 만든 사건으로 온전히 볼 수 있도록 한다. 그러면서 그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살랑살랑 마음을 간지럽히고, 와하하 웃게 한다.


레이디 버드와 엄마와 이야기가 중심이 된 것은 가장 자연스럽지만 신선한 선택이었다. 나도 엄마랑 대학 원서 쓰면서 저렇게 싸웠었는데... 정말 미친듯이 싸우다가도 엄마는 내가 굶을까봐 아침밥을 챙겨놓고 출근하셨고, 나는 펑펑 울면서도 엄마가 차린 밥 남기면 안 된다며 먹었던 기억이 있더랬다 ㅎㅎㅎㅎ 마찬가지로 남자친구가 아닌 단짝친구와의 관계를 다룬 것도 좋았다. 10대 때 연애가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아도 결국 함께 성장하는 존재는 마음을 나눈 친구니까. 나도 고등학교 때 안 좋은 기억이 많지만, 가족의 사랑과 곁에 있는 가장 친한 친구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레이디 버드]는 그때는 어리고 시야가 좁아서 알지 못했지만, 내가 그때 참 사랑받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한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레이디 버드처럼 살았고, 지금도 레이디 버드같은 맹랑하고 자기중심적인 구석이 남아있지만, 그때도 지금도 완벽하지 않은 나를 마음 다해 사랑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존재를 알게 된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된다.


연기야 다들 감탄할 만큼 잘 한다. 시얼샤 로넌과 로리 맷켈프는 정말 엄마와 딸 같았고, 줄스 역의 비니 펠드스타인과는 실제로 친한 친구가 된 게 눈에 보일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다. 레이디 버드의 남자로 등장하는 루카스 헷지스와 티모시 샬라메도 그 몫을 충분히 했다. (다만 국내 영화 마케팅에선 엄마와 친구는 쏙 빠지고 남자친구를 연기한 배우들만 내세운 점에는 불만이 크다.) 그 외에 정말 마음에 들었던 건 배경이 된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다. [레이디 버드]가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자전적 성격이 담긴 영화이기도 한데, 그게 가장 잘 보이는 지점이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바다와 해운대로 내 고향을 정의할 때 나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상가와 아파트, 작은 슈퍼마켓과 분식집을 떠올리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도시이지만 마음의 고향에 온 것 같았다.


다들 [레이디 버드]는 꼭 보셨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제대로 살아온 걸까 자신할 수 없다면, 잘 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할 것이란 응원이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시길.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위로를 선물할 것이다.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4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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