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의 공포영화 도전 (2)
쫄보가 또 공포영화를 봤습니다. 네에...
조용하고 무섭고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였다.
"소리 내면 죽는다!"는 설명이 과장이 아니었다. 정말 소리를 내면 어딘가에서 괴물이 튀어나와 사람을 죽인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외계 괴물이 지구를 덮쳤고 전 세계 사람들 대부분이 죽었다. 괴물은 소리에 반응하여 생명을 죽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철저한 침묵 속에서 살아간다.
영화가 침묵과 고요함으로 공포를 그리기 위해서는 그저 세계를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관객이 그 세계의 콘셉트를 이해해야 하고 세계 안으로 들어와야 본격적인 공포를 그릴 수 있다. 영화는 타이틀 화면이 나오기 전에 '소리를 내는 것의 위험함'뿐 아니라 괴물의 등장으로 멸망한 세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한 가족의 비극을 한 번에 보여준다. 가장 슬프고 가장 끔찍하게. 그리고 이 순간이 정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는 비극이 닥친 그 시점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를 배경으로 한다. 가족은 이미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몸에 익혔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냥을 떠나고 딸이 가출한 사이, 엄마가 액자를 깨뜨리면서 가족에게 최악의 위기가 닥친다. 하지만 모든 플레이어가 룰을 알고 있으니 허무하게 죽는 게 아니라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공포영화의 뻔한 공식이 바로 "바보짓하는 누군가 때문에 다 죽는다."인데, [콰이어트 플레이스]에는 그런 게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현명하며, 아이들 또한 살아남기 위해 빠르게 적응한다.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도 모두 교육받았고, 예상 못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현명하게 위기를 헤쳐나갈 것이라 믿고, 아이들도 처절한 사투에서 자기 몫을 해낸다. 영화의 위기를 '알아서 불러들이며' 모든 이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민폐 캐릭터가 없다는 점에서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다른 공포 영화와 차별화된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사운드, 또는 사운드의 부재가 분위기 조성 이상의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대사가 거의 없을뿐더러 그 대사를 함부로 쓰지 않는다. 인간의 목소리든 일상의 소리든 작은 소리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게끔 음향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비주얼보다 더 무서웠던 건 유리 깨지는 소리, 철문이 덜컹거리는 소리,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처럼 작고 통제할 수 없는 소리였다. 소리와 공포에 질린 표정만 보여줄 뿐이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운 분위기가 제대로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작은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사이다를 한 잔 사서 들어갔는데 영화의 조용한 분위기에 짓눌러서 얼음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못 냈다. 무서운 장면이 나와도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고 한 손으로는 괴물이 나올 때마다 눈을 반쯤 가렸다. 위기가 끊임없이 닥쳐와서 무서움과 긴장에 몸이 덜덜 떨려도 소리를 안 내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영화가 모두 끝나고 상영관을 나서고 나서야 크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존 크래신스키의 연출력은 정말 발군이다. 본인 입으로 '겁이 많다'라고 하며 이 영화 전에는 공포영화 근처에도 안 갔다는 크래신스키는 첫 공포영화 연출을 완벽하게 해낸다. 공포영화의 공식이나 기믹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을 그저 낭비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밀고 나가는 힘으로 다룬다. 무서운 장면을 머릿속에서 삭제하면(ㅋㅋ)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가족드라마가 된다. 관객이 영화에 관여하게 만들면서(소리 내면 안됨!)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끌고 가는 것에서 새삼 감탄했다.
에밀리 블런트의 연기도 정말 좋았다. 표정 하나 눈빛 하나에서 죽음이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느끼는 생생한 공포를 볼 수 있었다. 실제 부부인 크래신스키와 블런트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함께 연기했는데, 진작 같이 했으면 좋았겠다 생각할 만큼 호흡도 잘 맞았다.
딸, 아들을 연기한 밀리센트 시몬스와 노아 주프도 훌륭했다. 실제 청각장애인인 밀리센트 시몬스는 캐릭터 소화가 남달랐다. 비장애인인 다른 가족과의 커뮤니케이션, 침묵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자신만 고립된 듯한 느낌, 동생을 죽게 한 죄책감 등 깊은 감정을 잘 표현했다. 노아 주프 또한 영화에 잘 녹아들었고 그 몫을 충분히 해냈다.
어쩌다 보니 일주일 간격으로 공포영화를 두 편 봤는데, 두 편 중에 볼 때 무서운 영화를 고르라면 [곤지암]. 하지만 영화를 다 본 다음에도 기억에 남는 작품은 [콰이어트 플레이스]다. 나중에 아주 덜 무섭게 볼 수 있을 때(한낮에 불을 다 켜고 소리를 확 줄여서) 다시 보고 싶다.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7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