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주 영화감상 기록
영화감상
(최초 작성: 2019.1.12)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주먹과 입담만 믿고 사는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가 1960년대 남부 지역을 여행하며 겪는 인종차별과 두 사람 간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가 두 캐릭터를 환상적으로 소화해냈다. 유머와 따뜻함이 담긴 각본과 연출이 인상적이다. 이걸 <덤 앤 더머> 감독이 한 작품이라는 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영화는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 할리우드 영화답게 매끄러운 플롯 진행, 비고 모텐슨의 몸을 던진 변신, 마허샬라 알리가 그려낸 우아한 돈 셜리. 그들의 여행길은 현실을 잘 아는 셜리와 입담으로 갈등을 잘 극복하는 토니가 점점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토니는 셜리가 겪는 인종차별의 뿌리가 깊고 쉽게 바꿀 수 없음을 깨닫는다. 셜리는 그저 무식하고 거친 줄 알았던 토니 덕에 자신 스스로 떠나온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그들이 서로의 좋은 친구가 된다. 마지막까지 확실한 감동을 준다.
영화는 토니를 무조건 '백인 구원자'로 만들지 않는다. 물론 토니는 부당한 현실 때문에 매번 위기에 빠지는 셜리 박사를 구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 트롭을 따르면서도 비틀어 이 이야기를 ‘두 나자의 우정 이야기’로 위치시켰다. 셜리 박사가 자신이 어떤 일을 겪을지 알고 토니를 고용했고. 토니도 그 모든 걸 알고 셜리 박사를 매번 구하며 자신의 '일'을 했다. 또한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위기에 빠지고, 셜리가 그들을 구한다. 마지막엔 토니가 아닌 셜리 박사가 그들의 여정을 마무리한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제부터 이 영화가 다소 불편했던 지점을 말하겠다. 뛰어난 연기와 연출로 영화에 충분히 호감이 가고, TV에서 틀어준다면 다시 볼 용의가 충분히 있으면서도 지금 당장 가시지 않는 불편함 말이다. 아마 이건 영화 자체의 불편보다는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마음이 더 클 것이다.
영화는 1960년대의 극심한 인종 차별을 '백인'의 시선에서 다룬다. 그가 뉴욕 브루클린의 이탈리아계 건달이고, 잘 교육받지 못한 데다가 그 스스로 인종차별주의자임에도, 사회는 그의 피부색을 가장 먼저 본다. 영화는 현실과 사회가 얼마나 부당한지 잘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이가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도 결국 인종차별의 큰 틀에서 보면 기득권인 '백인'이다. 무식하고 하루 벌어먹고 살아가는 그가 어떻게 '기득권'이냐고? 최소한 길거리에서 피부색을 이유로 경찰의 심문에 걸릴 염려도 없고, 어떤 레스토랑에서도 피부색을 이유로 입장을 거절당하지 않으니까.
아무런 피해를 당하지 않는 사람의 눈에서 타인이 겪는 인종차별과 폭력은 그 상황의 본질을 얼마나 잘 보여줄까? 카메라는 결국 시선이다. 영화는 결국 토니의 시선에서 셜리 박사가 겪는 차별을 이야기한다. 토니의 눈에서 본 영화는 셜리 박사의 우아함과 비폭력이 얼마나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 결론 또한 두 사람의 훈훈한 우정으로 마무리되지만 결국 토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영화는 토니의 아들 '닉 발레롱가'가 쓴 원작에 바탕했다. 그가 원작을 쓰면서 참고한 이야기 중 아버지 '떠벌이 토니'가 직접 "각색한" 부분이 얼마나 될까? 얼마 전 셜리 박사의 가족이 박사는 영화화를 허락한 적도 없고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투성이라 주장했다. 닉 발레롱가는 그에 대해 "여행에 한해서" 영화화를 허락받았고 자신이 이렇게 쓴 근거도 있다고 말했다. 난 두 가지 사실 모두 각자의 입장에선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승자는 '누가 이걸 먼저 영화로 만들었는가'이다. 토니의 시각에서 그렸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인종 차별을 뛰어넘는 우정을 이야기한다. 셜리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이야기할 땐 어떤 이야기가 될까. 과연 백인 운전사와 함께 한 남부 여행이 <그린 북>처럼 따뜻하고 추억에 남을 만한 경험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