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4주 영화감상 기록 (1)
(최초 작성: 2019.2.27)
삼일절을 위한 영화다. 하지만 무조건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흑백의 화면에 꽉 차는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의 사람들과 그 사이에서 유관순의 인간적 고뇌에 집중한다. 좁은 옥사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독려하는 여성들의 연대, 일제의 교묘한 이간질 앞에서 흔들려도 결국 손을 맞잡고 뜻을 모으는 사람들. <항거>는 유관순을 내세웠지만, 유관순과 함께 나라를 위해 만세를 부른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일깨운다.
트위터에서 논란이 되는 지점이 있다. 일단 끔찍한 고문 장면이 나오는가의 문제. 고문 자체를 다루긴 하지만 다른 영화의 폭력적 수위보다 훨씬 덜하다. 감독님에 따르면 더 많은 고문이 있었어도 철저히 기록된 것들만 다뤘고, 가장 잔인한 장면에서는 시선을 돌리거나 그 장소 밖으로 나가서 시각적 자극을 최대한 없앴다.
두 번째는 일제 시대와 독립을 다루며 제기되는 국뽕과 신파인데, 이 영화 보면 절대 그런 말 안 나온다. 감정을 자극할 수 있었을 부분에서 더 억누르고, 억지로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관객은 영화와 함께 감정을 쌓아가고,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한다. 그리고 국뽕. 삼일절과 유관순에 대한 영화는 이제서야 처음 만들어졌다. 그것도 예산도 많지 않고 총칼도 마구잡이로 휘두르지 않으며 여성 출연진이 대부분인 영화. 만약 뽕을 뽑으려면 제대로 뽑았겠지.
이 영화의 장점 중 장점은 배우다. 유관순을 연기한 고아성은 어려운 답안을 신중하게 풀어내듯 인간 유관순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린다.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배우 등 8호실 사람들은 대사가 있든 없든 캐릭터가 모두 생생했다. (실제로 8호실 사람들은 대사가 없는 역할도 연극배우들을 기용했다고.) 일제강점기 배경으로 독립운동 이야기도 흔치 않고, <암살> 이후 여성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 이야기는 처음이다. 그 점이 정말 반가웠다.
단점은 있지만 이 정도면 굉장히 좋은 답안이다. 구한말~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은 <항거>에서 많은 점을 본받아야 한다. 특히 영화화 대상에 대한 존중과 캐릭터를 깊게 파고드는 접근은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시대상에 반한 스펙터클로 탄생한 영화에 경종을 울린다. 영화는 자존과 자유를 향한 인간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고 이를 정성스레 담아 관객에게 전한다. 그것만으로도 <항거>의 가치는 충분하다.
피 돈을 들여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제작비가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