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발견의 장
(최초 작성: 2019.3.5)
오늘 언시로 <에브리타임 룩 앳 유>라는 독일 로맨스 영화를 봤다.
영화 보고 쓰는 글이니까 당연히 그 이야기도 있겠지만, 이 글은 내 취향을 발견, 아니 확인했다는 점이 기뻐서(?) 올리는 것임을 먼저 밝힌다.
영화 소개
“트립 로맨스”라는 장르가 모든 걸 설명한다. 두 대학생 율과 얀이 우연히 만나 독일 베를린에서 포르투갈까지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함께 하며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 두 사람은 처음엔 서로에 대해 참을성 없이 접근하며 충돌하지만 어떤 사건이 인연이 되어 여행의 끝까지 함께하기로 한다. 둘은 아름다운 유럽의 경치를 즐기고, 밥을 먹고, 너무나 다양한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고, 각자 여행의 진짜 목적을 실현하면서 사랑을 고백한다. 경치구경+썸구경인데 뭔가 드라마틱한 건 없고 그냥 대화와 경치 구경이 전부다. 그리고 의외로 취향 저격이다.
에브리타임 룩 앳 유 vs. 303
제목은 그럴듯한 브로큰 잉글리쉬이지만 원제는 <303>이다. 왜 303인가 했더니 율과 얀이 타고 가는 캠핑카 모델명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303이란 제목도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그렇다고 더 직관적인 게 없을까 싶은데 떠오르는 것도 없다. 제목을 바꾼 이유를 알겠고, 괜찮은 제목 찾느라 고생하셨을 수입배급사 분들께 박수를 보낸다.
러닝타임 차이
러닝타임 차이가 좀 있다. 독일이나 유럽 쪽 버전은 145분, 2시간 25분인데 우리나라에서 선보일 인터내셔널 버전은 120분이다. 약 25분이 잘렸는데, 실제 영화 내러티브에서 이상함을 느낄 만큼 통째로 사라지는 부분은 잘 없다. 러닝타임이 차이난다는 걸 알고 갔는데 의외로 스무스하게 전개되어 놀랐다. 바꿔 말하면, 삭제된 25분은 영화를 기~~~ㄹ게 늘어뜨리며 넓이든 깊이든 뭔가를 만들어냈다는 건데…
대화가 많은 걸 말한다
영화에서 경치만큼 인상적인 건 율과 얀의 대화다. 두 사람이 싸우고, 화해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데 대화는 많은 역할을 한다. 주제도 인간의 본성, 사회 시스템의 본질, 사랑과 성격,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삶까지 다양하다. 특히 인간의 본성이 경쟁이냐 협동이냐, 사랑과 성적 유혹이 같느냐 다르냐의 질문은 율과 얀이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의 관점과 사랑에 접근하는 방식 모두 다르다는 걸 잘 보여준다. 사실 말도 빠르고 내용도 도돌이표 같기도 한데(얀이 영화에서 대놓고 “도돌이표”라고 이야기한다) 그게 썸이다.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사랑에 빠져든다.
편집점이 티나잖아
분명히 원테이크로 만든 부분인데 아쉽게 중간에서 커트된 게 있다. 숲길을 걷는 장면, 호수를 앞에 두고 얀이 자신을 꿰뚫어보는 율의 말에 어쩔 줄 모르는 장면 같은 데서 얀의 행동을 맞추는 편집점이 많이 튀었다. 차라리 카메라 구도가 바뀌어서 사이에 짧은 장면이 들어갔다면 전환이 자연스러웠을 텐데, 그 부분이 아쉬웠다.
더 아쉬운 건
내가 은근 장황하고 내용 많은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독일 영화을 많이 보진 않았지만 본 것들은 모두 대화가 많아지면서, 내용이 점점 깊어지면서 러닝타임이 길어졌다. 프랑스 영화는 짧아도 머리 아프고, 이탈리아 영화는 특유의 느낌이 코드가 안 맞다는 느낌인데, 독일 영화는 지금까지 본 것들 전부 길어도 재미있더라. 그래서 아쉬운 거? 율과 얀의 대화를 원테이크로 그대로 보고 싶었다는 거랑, 튀는 편집점이 거슬렸다는 것.
추가. 티셔츠...
사랑과 성적 욕구, 종족 번식에 대한 날카롭고 흥미로운 논쟁 중에 얀은 ‘티셔츠 실험’에 대해 말한다. 남녀가 입었던 셔츠의 냄새로 짝을 찾으면 어쩌고 하는 건데 이거 다음에 얘네 둘이 무슨 짓을 하냐면… (이하 생략)
영화는 12세다. 그래서 정말 별 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