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버스턴

배우가 다했다

by 겨울달

(최초 작성: 2019.4.25)


한 달 내내 상영할 <어벤져스: 엔드게임> vs 딱 일주일, 그것도 아주 듬성듬성, 직장인은 절대 못 볼 시간에 틀어주는 <갤버스턴>

... 당연히 선택은 후자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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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근거는 간단하다. 벤 포스터와 엘 패닝. 두 사람 연기야 당연히 믿고 볼 만하니까. 반면 멜라니 로랑은 유명한 배우이지만 사실 작품은 본 게 별로 없다. 내가 프랑스 영화를 잘 안 보고, 영어 작품 중에서도 딱히 본 게… 없군.; 정리하면 배우와 감독이 누구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갔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서던 누아르다. 폭력적이고 거칠고 남성적이다. 소설 원작인데, 작가가 직접 각색했다. 바로 닉 피졸라토. <트루 디텍티브>가 일생일대의 역작인지 얻어걸린 행운인지 언제나 헷갈리게 만드는 그분. 사실 크레디트에 나온 그 이름은 피졸라토의 가명으로, 자신의 대본과 영화가 많이 다르게 나왔기 때문에 자기 이름을 걸지 말아달라고 했단다. 까다롭기까지.;

자신이 죽을 거라 아는 남자는 정말 죽을 위기를 겪는다. 그래서 언제나 살아온 대로 도망가고 숨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파괴적인 삶을 놓지 않는다. 소녀는 자신을 처음으로 성적 욕구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 남자를 만난다. 두 사람의 여정은 피와 술과 시궁창같은 삶의 고단함이 가득하지만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물론 이제 두 사람의 삶이 조금 나아질까 싶은 찰나에 다시 비극이 몰아닥치고, 인생은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내용을 정리했는데, 내가 봐도 횡설수설하네. 사실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모르겠다. 엉망처럼 살아온 한 남자가 시한부 선고와 우연히 만난 소녀를 통해 참회의 길(?)을 걷는다는 것 같은데, 이게 이해나 공감이 갈 리가 없지. 참회라기엔 남자의 삶은 변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그 삶에서 벗어나지도 못한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는 남자의 노력은 너무 늦었고, 그 과정을 그리는 영화 또한 울퉁불퉁하다.

메인 캐릭터에 정이 안 가는 것도 문제다. 벤 포스터와 엘 패닝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지만, 남자에겐 동정도 공감도 할 수 없고, 소녀에겐 동정도 공감도 되지만 결말은 마음에 안 들고. 그리고 닉 피졸라토가 지금까지 한 걸 보면 여성 캐릭터는 항상 남성 캐릭터에 비해 비중이 없거나, 중요하지 않거나, 남성 캐릭터의 각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엘 패닝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론적으로 ‘록키’는 저걸 못 벗어난 느낌이다. 그럼에도 영화에선 록키의 전사가 많이 드러나는데, 이게 원작의 힘일까, 각색의 힘일까? 멜라니 로랑의 각색이 소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벤 포스터는 기대한 만큼 잘 한다. (기대치는 상당히 높다.) 엘 패닝은 이제 이런 연기도 할 만큼 많이 컸구나 싶다. 그렇지만 배우 둘의 연기만 믿기엔 영화가 짜임새있다는 느낌은 없다.

촬영은 괜찮았다. 시네마틱한 장면들도 있다. 갤버스턴의 바다와 엘 패닝이 입은 파란 비키니처럼 색감 가득한 장면이나 조명의 유무와 자연광 같은 걸 잘 활용한 장면이 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하다고 느끼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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