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설정으로 취향 저격하는 SF 로맨스
(최초 작성: 2019.4.1)
몇 주 전 넷플릭스에서 봤다.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역 방송사가 제작한 드라마로 작년에 방영됐다고. 그래서 우리가 아는 유럽식 스페인어가 아닌 카탈로니아 어로 만들었다. 원제는 <Si no t'hagués conegut>.
에두아르트는 퇴근 후 부인 엘리자와 내일 아이들을 누가 데려다 줄지, 차는 누가 어떤 걸 몰지 말다툼을 한다. 다음날 늦잠을 잔 에두아르트는 엘리자와 아이들이 고장 일보 직전의 차를 몰고 나간 걸 본다. 그게 에두아르트가 마지막으로 본 가족의 모습이다. 세 사람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에두아르트는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에도 망가져 간다. 그들을 따라 목숨을 끊으려 했을 때 한 여인이 나타나 그를 구한다. 그는 자신을 미국 대학에서 오랫동안 일한 ’에베레스트 박사’라고 소개하고 에두아르트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평행 세계’가 있으니, 그곳을 탐험하고 와 자신에게 알려달라는 것. 에두아르트는 처음 박사의 제안을 믿지 않았지만, 평행 세계에서 자신의 가족을 살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되고는 박사의 실험에 계속 참여한다.
흥미로운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처음엔 그저 가족과 사랑이 중심이 되며 SF보단 로맨스 같지만 평행세계 여행이 계속되고 법칙이 정립되며 SF와 로맨스의 밸런스가 잡힌다. 에베레스트 박사가 몇 번이나 이야기하지만 에두아르트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니라 다른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그의 존재는 이세계에서는 방해물이나 다름없다. 처음엔 절박함으로 뛰어들었지만 에두아르트는 여러 세계를 다녀오면서 평행 세계의 이면을 깨닫는다. 평행 세계의 자신은 그가 아니며, 선택 하나로 너무나 다른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세계에서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엘리자는 평생 사랑한 아내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 1에서 에두아르트와 엘리자의 삶은 10살에 부모님과 함께 간 결혼식장에서 키스한 것부터 대학생 때 다시 만나게 된 것, 결혼 전에 아이를 가진 것, 에두아르드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고 가족과 함께 있기 위해 임원 승진을 포기한 것 등등 이들의 선택이 총합이 된 결과다. 그 선택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결국 두 사람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통해 사랑과 필연의 힘이 지독하다는 걸 보여준다. 물론 사랑이 이뤄지지 않기도 하고, 그 사랑이 중간에 꺼지기도 하지만.
평행 세계 여행이 거듭될수록 세계 1의 에두아르트의 현실은 피폐해진다. 평행 세계 각각의 시간의 속도가 달라서, 며칠 동안 간 것인데도 몇 개월이 흐르거나, 몇 분만 흐르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그러고는 가족을 만나고 왔다고 말하는 에두아르트. 당연히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힘들어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에두아르트의 모습에 가족들은 슬퍼하고, 친구들은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에두아르트가 믿을 사람은 에베레스트 박사밖에 없다. 에베레스트 박사와 대화를 나누며, 에두아르드는 자신의 가족은 사라졌고, 진정 필요한 것은 가족과의 행복한 기억과 사랑뿐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평행 우주에 사는 또 다른 에두아르트가 가족과의 시간을 놓치지 않게 납치극 비슷한 짓까지 벌이기도 한다.
사실 여기까진 한 남자의 여정이구나 싶었는데, 에두아르트가 자신이 아닌 엘리자의 미래를 바꾸러 간 그 순간 시간 여행의 모든 진실이 드러난다. 마지막 편은 예상하면서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까지 이야기 대부분이 에두아르트의 시각에서 그려지지만, 마지막 반전인 엘리자의 이야기는 가장 파워풀하고 슬펐다. 이 마지막 편 때문에라도 제발 이 드라마를 봐주세요 ㅠㅠ
연식이 보이는 비주얼에 대학생까지 연기한 건 다소 오바같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다. 파블로 데르키는 에두아르트위 절박함과 슬픔, 상실과 행복까지 모든 감정을 자유자재로 연기한다. 엘리자 역의 안드레아 로스도 매력이 넘친다. 무엇보다 나처럼 로맨스와 SF 둘 다에 환장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스토리텔링이 있으니, 한 번 시도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