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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Jun 17. 2019

녹비홍수

홀린 듯이 정주행

요즘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는 중드 <녹비홍수>. 중국 소설 <서녀명란전>이 원작이고, 드라마 정식 제목은 지부지부응시녹비홍수(知否知否应是绿肥红瘦). 송나라 시대 시인 이청조 작 ‘여몽령’의 한 구절이다(시에 멜로디를 붙여 주제가로 쓰고 있다.) 한미한 문관 집안의 서녀(첩의 딸)로 태어난 성명란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실제 커플인 조려영과 풍소봉이 각각 명란과 고정엽 역을 맡았고, <진혼>으로 덕후 몰이 좀 하신 주일룡이 서브남주 제형 역을 맡았다. 명란의 이야기고, 명란이 안팎의 시기와 질투, 음모를 이기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아, <랑야방> 제작자 후홍량이 제작했다. 사실 이것 때문에 <녹비홍수>를 보기 시작했다. 내겐 후거, 왕카이, 류타오 등보다 후홍량이 더 놀라웠던 걸까. 세 사람 나온 후속작은 안 챙겨보면서 후홍량 제작 드라마는 챙겨보는 이상한 사람 (나).



지금까지 줄거리 정리(라서 스포일러가 있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학문과 규방의 예의범절을 익히고, 괜찮은 남자에게 시집가서 아들을 낳고 집안을 꾸리며 사는 것이 송 시대 여인의 운명이지만, 명란은 당장 살아남는다는 하늘에 감사해야 할 처지다. 세 번째 부인이었던 어머니는 동생을 낳다가 죽었고, 아버지는 명란에게 관심이 없다. 아버지의 첩 임씨와 그의 아들 딸은 명란을 잡아먹지 못해 난리다. 그나마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아버지의 본부인과 그 아들 딸들, 그리고 자신을 거두어 키운 할머니만이 지옥 같은 이 집을 버틸 수 있는 이유다.

결혼할 나이가 된 명란은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첩의 딸로 태어난 것으로 업신여김 받는다. 첫사랑인 제국공부 공자 제형은 결국 집안에서 밀려 포기해야 했고, 할머니가 정해준 정혼자는 첩을 들이는 문제에서 우유부단함을 보이면서 명란이 마음을 접게 만들었다. 이후 명란과 어릴 적부터 인연을 맺은 녕원후부의 둘째 고정엽이 그에게 청혼한다. 정엽은 총명한 인재이지만 음모로 미운털이 박혀 출세는 막혔고 여색을 탐하는 망나니란 명성 때문에 누구도 딸을 시집보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다음 황제 자리를 둘러싸고 왕족들이 일으킨 반란에서 새 후계자 옹립에 공을 세우며 금의환향하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명란을 아내로 맞는다.

… 여기가 끝이면 좋겠지만 전체 70부작 중 44부작쯤 온 내용이다. 다음 줄거리는 이미 보신 분들이 잘 정리해 두셨는데, 맨 마지막에 해피엔딩인 것만 확인하고 홀라당 잊어버렸다. 정말 길기 때문에 본방 시청 자체가 하루에 500미터씩 천천히 뛰는 것 같다. 그러니 같이 호흡해서 보는 게 중요하다.



작품의 매력 1. 명란이는 지지 않아

답답하고 속 타는 전개가 펼쳐지는 것 같지만, <녹비홍수>는 의외로 속 시원한 드라마다. 대부분의 고구마는 이후 아주 시원한 사이다를 동반하는데, 이게 대부분 명란이의 빅픽쳐의 시작과 끝이기 때문. 그동안 명란이는 조용히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지략을 배우며 두뇌와 결단력 모두 갖춘 인물로 성장했다. 다른 사람들의 무고와 험담은 무시할 수 있는 담담함, 상황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 때가 되면 발휘되는 엄청난 행동력도 마찬가지다. 명란이가 진짜 답답할 땐 첫사랑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던 때, 그때뿐이었다. (내가 그래서 제형을 싫어한다. 빵점짜리 구남.)


무서운 지략가가 계책을 꾸미는 사이사이 보이는 소녀의 발랄한 모습이 귀엽다. 정말 믿을 만한 몇몇 사람에게만 비치는 본모습은 색다르다.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임씨를 궁지에 빠뜨린 그날, 할머니에게 보였던 모습은 명란이라는 캐릭터와 조려영이라는 배우 모두에 감탄하게 만들었다. 겁에 질려 달달달 떨면서도 “자신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명란을 볼 때 정말 짠해서 안아주고 싶었다. 그때 노마님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원작 소설에는 이런 사람이 된 것이 타임슬립한 현대의 영혼 때문이라는데, 차라리 조용하고 무서운 천재가 이 설정에선 더 나아 보인다. 현대를 산다는 것이 과거에서 무조건 치트키가 될 수도 없고, 현대인이 그렇게 현명한 것도 아니고.



작품의 매력 2. 작품 안팎 막강 케미스트리

<녹비홍수>가 화제가 된 건 실제 커플인 조려영-풍소봉이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2016년 영화로 처음 만나 열애설이 여러 번 나왔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가, 작년 10월 기습 결혼발표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의 케미는 극 중에서도 정말 인상적인데, 캐릭터 구축을 잘한 데다가 서로를 잘 아는 두 사람이 같이 연기하니까 다른 배우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내가 꼽는 두 사람의 베스트 씬은 단연 39화 격구장에서의 대화다. “넌 늘 답답했다. 태어나서 여태껏 억울하기만 했고”라는 말은 정엽이 그동안 한 일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명란을 지켜봤고,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았으며, 일부러 바보처럼 구는 명란의 모든 말과 행동 뒤에 있는 진짜 모습을 알아봤다. 드라마는 명란이 중심이기 때문에 명란이 정엽을 만나고 세간의 평판과 다른 그를 발견하는 과정이 잘 그려진다. 그리고 이 말 한마디로 정엽도 그만큼 명란에게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 알고자 노력했음을 드러낸다.


난 제형이 더 맘에 안 들었지 사실 정엽도 탐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저 정도 정성이라면 인정해야지 뭐. (이 구역 명란이 이모)


암튼 이들은 40회에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고(만세!) 계략의 대가인 시어머니(정엽의 새어머니)와 후작부 깐깐한 인간들, 귀족들의 시기와 질투 등등을 물리치고 잘 사는 게 그려질 것이다. 지금은 정엽이 명란을 정말 사랑하는 것, 그리고 명란이 정엽에게 조금씩 마음을 드러내는 과정을 그리는데, 별 거 안 하는데도 귀여워서 내 광대도 같이 승천하는 중. 내일 45회 방영인데, 이것도 끝날 때까지 한편 한편 아까워하며 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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