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정치인의 배우자들에게 드리워진 힐러리 클린턴의 그림자
미국에서 대통령 경선이 한창 벌어지면서 후보들뿐 아니라 후보들의 배우자들의 일거수일투족도 기사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공화당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의 배우자들이 했던 말과 일들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책이 아닌 배우자들의 과거로 싸우는 다소 한심한 상황이 연출되는 현 시기에 비춰, Hollywood Reporter 에서 TV 속 정치인들의 배우자들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정리했습니다. 이 중 가장 시대에 앞선 캐릭터는 누구일까요? 의외의 결과입니다. 원문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공화당 경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가 서로의 배우자를 겨냥해 벌이는 수준낮은 싸움은, 미국 정치의 여러 위선 중 한 가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바로 후보자의 배우자가 중요하다는 믿음이다. 선거운동 자체가 굳건한 결혼이 좋은 리더십을 보여준다는 것. 그래서 공직에 출마한 사람들은 굳결한 결혼생활이 좋은 셀링 포인트가 된다는 것에 매달려 있다.
우리에겐 다행히도, TV는 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 현재 방영되는 드라마들에서 정치인 배우자의 모습은 '굿 와이프'처럼 현실적인 묘사가 강하거나, '스캔들'과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의외로 전통적인 퍼스트 레이디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마담 세크리터리'와 '더 패밀리'에서 정치인들의 남편들의 모습도 그리고 있다.
이 드라마들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굿 와이프'는 우리가 눈치로는 다 알고 받아들이긴 하지만 절대 관대하게는 용인할 수 없는 전제, 정치인의 결혼은 소설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알리샤 플로릭(Alicia Florrick, 줄리아나 마걸리스 Juliana Marguiles)은 힐러리가 차기 대통령 선두주자로 나선 이 시기에 가장 이상적이고 독립적인 여주인공이다. 알리샤의 삶은 기자회견장에서 남편(피터 플로릭 Peter Florrick, 크리스 노스 Chris North)의 옆에 서서 그가 섹스 스캔들을 인정하는 걸 지켜봐야 했던 아내에서 본인이 직접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로 변화했다. 이 과정 동안, 알리샤와 그녀의 남편은 서로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결혼을 지속하기로 한다. 피터는 주지사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고, 알리시아는 자신의 커리어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남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비밀리에 각자의 삶을 살기로 합의한다. 굉장히 그럴듯하고, 굉장히 신뢰가 간다. 알리샤가 공감을 받는 건 드라마에서 그녀의 결혼이 피터에 대해 남아있는 의리와 자신의 야망 때문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비난받거나 벌을 받지도 않는다. 그럴 이유도 없지 않은가?
'굿 와이프'는 플로릭 부부가 자신들의 개인적 거래를 대중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걸 알고 있다. 일요일 에피소드에서 알리샤가 이혼을 요구하고, 그녀의 남자친구와 남편 둘 다 질투하는 것을 보면 완벽한 거래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 피터는 자신이 기소당하게 되면 마지막 한 번만 자신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달라고 요청한다. 에피소드는 클리프행어로 끝났지만,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드라마가 7시즌 동안 이끌어온 정치적인 통찰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굿 와이프'는 너무나 현실적이라 5월에 개봉 예정인 격정적인 다큐멘터리 '위너 (Weiner)'는 오히려 그 반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앤서니 위너(Anthony Weiner)가 섹스 문자 스캔들로 뉴욕 주 하원의원 직을 사임한 2년 후 진행한 2013년 뉴욕 시장 선거 운동을 다룬다. 카메라는 선거운동 중간에 두번째 섹스 문자 스캔들이 터졌을 때를 포착할 수 있었다.
위너너의 아내이자 힐러리 클린턴의 보좌관 중 한 명인 후마 아베딘(Huma Abedin)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동정을 받으면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두번째 섹스 문자에 관련한 속보가 터진 후, 그녀는 기자회견에서 마치 실다 스핏처(Silda Spitzer, 그의 남편인 엘리엇 스피처 Eliot Spitzer는 실다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매춘부와 관계를 맺은 것을 시인했고, 이 장면은 '굿 와이프' 오프닝에 영감을 줬다)와 알리샤 플로릭이 그랬던 것처럼 남편의 옆에 서 있었는데, 충격을 굉장히 많이 받은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현실과 허구가 갈린다. 그녀가 고통받는 건 분명했지만, 아베딘은 주의가 깊었으며 다큐멘터리 촬영이 계속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드라마틱한 부분은, 남편이 카메라 감독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할 때까지 그녀가 남편을 아무 말도 없이 쳐다보던 것이다.
그녀가 선거 운동에서 빠졌을 때, 우리는 그 결정 뒤의 사안에 대해서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굿 와이프'의 시청자로서 우리는 피터와 알리샤, 알리샤와 일라이(Eli, 앨런 커밍스 Allan Cummings)가 했듯이 이들 사이에도 어떤 대화들이 오고가지 않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그를 구할 것인가, 그녀 자신을 구할 것인가? 둘 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에게 가진 의리는 어느 정도일까?
TV 속 정치인의 배우자들은 현실의 그들보다 훨씬 재미있고, 심지어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최근 공개된 '하우스 오브 카드' 4시즌에서 클레어 언더우드(Claire Underwood, 로빈 라이트 Robin Wright)은 남편을 왕좌에 올리려는 맥베드 부인에서 남편의 부통령 러닝 메이트가 되었다. 어떻게 한 걸까? 처음에는 그의 선거운동을 망치려는 비겁한 작전을 썼고, 그 다음에는 이혼을 하겠다고 협박했는데, 이혼은 그녀의 남편에게는 정치적 사형 선고와 같았다.
'스캔들'의 멜리 그랜트(Mellie Grant, 벨라미 영 Bellamy Young)은 전 영부인이었고 현재는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는 상원 의원이다. 그녀는 남편(피츠 그랜트 Fitz Grant, 토니 골드윈 Tony Goldwyn)이 대통령에 재임할 당시 이혼했고, 그의 불륜을 몇 년 동안 참아준 대가로 선거운동에서 그의 지지를 얻어냈다.
두 시리즈 모두 살인과 같은 과도한 멜로드라마 요소가 넘친다. 그러나 또한 정치적 현실의 영역에 머무르려 한다. 스캔들에서 부자 수다쟁이 홀리스 도일(Hollys Doyle, 그레그 헨리 Gregg Henley)을 마치 트럼프처럼 만들어 놓은 게 그 예다. 클레어와 멜리의 커리어가 페미니즘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 아래에는 (설사 실수일지라도) 고전적인 가정이 있다. 정치인의 아내는 남편들보다 앞서나가거나 그들에 반하는 음모를 짜거나 그들을 협박한다 하더라도 아직은 남편들의 연장선으로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힐러리가 과연 이런 드라마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남자 이야기들을 좀 해보자. 불쌍한 TV 드라마 속 정치인의 남편들 말이다. 현실에서도 정치인들의 남편이 너무나 적기 때문에 TV 속에서도 남편들이 남자다우냐 아니냐 정도의 논의만 이루어지고 있다. ABC의 신작 '더 패밀리'에서, 조안 앨런(Joan Allen)이 연기하는 클레어 워렌(Claire Warren)은 음모를 꾸미는 데 능숙한 시장으로 10여년 전 실종된 그녀의 아들이 그녀가 메인 주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려고 할 때 다시 나타난다. (최근 에피소드에서 그들의 아들이라 주장한 소년은 사실은 사기꾼인 것 같다.) 클레어는 동정표를 얻기 위해서 가족들의 상처를 이용하려는 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 약한 남편 존(John Warren, 루퍼트 그레이브스 Rupert Graves)은 사건 당시 담당 형사와 불륜을 저질렀는데, 클레어는 기자들 앞에서는 형사(마고 빙엄 Margot Bingham)에게 따뜻하게 대하면서도 둘만 있을 때는 위협을 서슴지 않는다. 존은 아내에게 당할 수가 없다. 이미 끝장난 워렌 부분의 결혼은 대중 앞에서는 매우 공고한 것처럼 보인다.
한편, CBS '마담 세크리터리'는 이와 반대로 국무장관 엘리자베스 맥코드(Elizabeth McCord, 테아 레오니 Tea Leoni)에게 강한 남편을 만들어냈다. 헨리 맥코드(Henry McCord, 팀 데일리 Tim Daly)은 대학교수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가끔씩 자신의 이전 일인 스파이 업무에 투입되기도 하고, 최근 에피소드에서는 대통령이 그를 매우 중요한 반 테러리즘 작전에 역할을 부여했고 그의 아내와 동일한 수준의 기밀 열람 인가를 받았다. 이들이 잠자리에서 어떻게 테러리스트를 잡는가 같은 정치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건 클린턴 부부 또한 즐기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까지 TV는 한 번도 이 상황에 대해서는 그리지 않았다. 한때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의 배우자가 되는 상황 말이다. 하지만 현재 '굿 와이프'만큼 현실을 리얼하게 반영한 드라마는 HBO의 '빕 Veep' 뿐이라는 것은 텔레비전과 현재 선거운동의 불합리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 예로 최근 호주 총리가 드라마 속 대통령 셀리나의 '변화와 연속을 함께'라는 표어를 가져와서 '변화와 연속'이라는 역시나 무의미한 구호로 바꾼 바 있다.
4월24일 방영될 '빕'의 새 시즌은 셀리나(줄리아 루이 드라이퓌스 Julia Louis-Dreyfus)와 상대 후보(브래드 리랜드 Brad Leland)가 선거인단에서 동률을 이루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기든 지든 셀리나는 이혼한 싱글이고,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 위해 남편을 협박하거나 하진 않았다. 배우자 또한 중요하다는 위선을 제거했다는 것에서, '빕'은 시대보다 조금 더 앞서 있는것 같고,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 지형보다 더욱 정직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