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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Apr 11. 2016

'배트맨 대 슈퍼맨' 대 '슈퍼걸' (번역)

왜 '슈퍼걸'이 '배트맨 대 슈퍼맨'보다 더 나은 슈퍼맨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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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ailorcontents.com


의도치 않게 계속 '배트맨 대 슈퍼맨'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 그만큼 배대슈의 만듦새가 단순히 한 영화의 완성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슈퍼히어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을 논의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비록 일부 의견이긴 하지만, 영화도 보고 DC 코믹스 기반 드라마도 본 비평가들과 관객들에게 '영화가 드라마보다도 못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전체 프랜차이즈의 방향을 수정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배트맨 대 슈퍼맨'과 '슈퍼걸'을 비교한 Vulture 의 칼럼을 소개한다 의견에 모두 동의할 수 없다고 해도,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면 최소한 영화에 어떤 점들이 결여되어 있는지 생각해볼 만하다.


http://www.vulture.com/2016/03/supergirl-batman-superman.html




Supergirl / 사진출처=CBS


CBS의 [슈퍼걸]과 지난 주말의 텐트폴 영화(역자주: 한 영화 스튜디오의 작품 라인업에서 가장 확실히 흥행할 만한, 그래서 다른 영화들의 손실도 채울 수 있는 영화)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DC 코믹스라는 뿌리는 공유할지 몰라도, 세계관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슈퍼걸이 밝고 명랑하고 낙관적이라면, [배트맨 대 슈퍼맨]은 마치 장송곡처럼 색이 없고, 매우 폭력적이다. 잭 스나이더가 감독한[배트맨 대 슈퍼맨]을 보고 나서 다른 평론가들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던 필자는 마치 입가심 음식처럼 슈퍼걸의 최근 에피소드 2개를 다시 시청했다. 그리고 3월 14일 방영된 에피소드('Falling')에서, 처음 봤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던 한 장면에서 필자는 갑자기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 장면은 스나이더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놓쳤던 모든 것들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순전히 우연의 일치로, 그 장면은 마치 [배트맨 대 슈퍼맨]의 암울한 철학에 대한 힐책처럼 느껴졌다.


그 에피소드는 슈퍼걸이 '레드 크립토나이트'라는 정신에 변화를 주는 물질에 노출된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물질의 영향을 받은 슈퍼걸은 가장 잔인한 생각들을 가장 먼저 떠올렸고, 평소에 명랑했던 슈퍼걸은 냉소적이고, 폭력적이며, 이 잔인한 세상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게 된다. 즉, 레드 크립토나이트에 감염된 슈퍼걸은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의 잭 스나이더의 해석과 많이 닮아 있다.


문제의 장면은 에피소드 중간쯤 나오는 슈퍼걸(멜리사 베노이스트)와 캣 그랜트(칼리스타 플록하트)의 대면 장면이다. 안티히어로가 된 슈퍼걸은 캣이 이전까지 슈퍼걸을 지지해온 것에 대해 "미디어에 날 걸스카웃으로 만들어 놨잖아요!"라고 말한다. "'슈퍼걸은 용감하고, 친절하고, 강하다.' 좀 전형적인 캐릭터화 아니에요? 매우 2차원적이죠. 진짜 사람들에게 어두운 면이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일고 있는걸요." 이에 대해 캣은 간결하게 되받아친다. "그래, 하지만 넌 진짜 사람처럼 느껴지면 안돼. 넌 슈퍼히어로야. 세상의 모든 선함을 대표해야지."


필자는 캣의 의견에 동감한다. 우리가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하는 건 힘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위해서,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사는 데 우리가 어떤 힘을 가졌을 때 이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숙고하기 위해서다. 착한 슈퍼맨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타고난 힘 - 요즘 표현으로 하면 특권 - 이 있으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을 돕고 주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데 아낌없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슈퍼맨은 냉소적이거나 터무니없이 폭력적일 수 없다. 왜냐면 그가 인류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데 집중하지 않으면, 막대한 부수적 피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슈퍼걸의 지난 에피소드 몇 개는 영화보다 더 매력적이고 감명깊은 슈퍼맨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제 잭 스나이더가 [배트맨 대 슈퍼맨]와 그 이전 작품인 [맨 오브 스틸(2013)]에서 어떻게 했는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날아다니는 적과 싸우는 동안 슈퍼맨은 악당을 사람이 있는 빌딩에 끊임없이 던져댔고, 그로 인해 수천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결국 전투 끝에 그는 적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슈퍼맨은 자신이 죽인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슬퍼하지도 않았고, 이후 정부에게는 앞으로 자신을 막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테러리스트가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총구를 겨눴을 때, 그는 빠른 속도로 총을 빼앗거나 총에 레이저를 쏘는 게 아니라, 그 테러리스트를 벽돌 벽에 밀어버렸다. 자신에 대한 약간의 공개적 비판이 있고 나서는 그는 인류 전체를 포기하려고 했다. 오해로 배트맨과 갈등했을 때도, 그는 배트맨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설득하기보다는 배트맨을 때려눕히는 쪽을 선택했다. 이게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영웅이 하는 일인가? "나는 코믹북을 보던 사람이고, 영화는 코믹북의 미학에 따라 만든 것이다"라고 스나이더가 최근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떤 버전의 슈퍼맨 코믹스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걸 읽은 적이 없다.


자, 이제 슈퍼걸의 레드 크립토나이트 에피소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그 문제의 물질이 나타나기 전, 우리는 슈퍼걸이 괴롭힘을 당하던 한 소녀의 앞에 나타나 그녀를 괴롭히던 다른 아이들에게 두 사람이 친구라고 말하며 그녀를 지키는 장면을 보았다. 이는그녀가 모든 불의에 관심을 쏟는다는 걸 보여준다. 그 이후 슈퍼걸이 레드 크립토나이트의 영향을 받아 무책임하게 행동하면서, 캣은 공개적으로 우리가 슈퍼걸을 믿지 못하게 된 이 상황이 - 배트맨이 배대슈에서 한 연설과 달리 - 흥분할 일이 아니라 슬퍼해야 할 일이라고 평가한다. 마침내 슈퍼걸이 치유되었을 때, 그녀가 처음으로 물은 건 "내가 누군가를 죽였어요?"라는 것이었다. 바로 슈퍼맨이라면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거대한 힘에 대한 책임을 이해하는 영웅의 태도다. 자신이 말하고 행동한 모든 끔찍한 것들을 기억해낸 슈퍼걸은 울면서 그녀의 언니에게 말한다. "정말 나쁜 짓을 했어. 너무 끔찍했어. 내가 한 모든 나쁜 생각들이 다 튀어나왔어."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그런 옹졸함과 냉소가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녀는 캣에게 레드 크립토나이트는 그저 변명에 불과할 뿐, 이 일들을 통해 자신이 배울 게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이 경험이 왜 자신이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상기시켜줬다고 말한다. "제게는, 이 도시의 모든 사람이 빛이에요. 내가 한 사람 한 사람 도울 때마다, 그들의 빛이 나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아요." 이 대사에서 솔직히 눈물이 찔끔 나왔다.


슈퍼걸은 무게감 있거나, 섬세하고 난해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고급 드라마는 아니다. 슈퍼걸은 직설적인 도덕적 관념, 명확한 상징성, 그리고 쾌활한 대화로 채워져 있다. 반면, [배트맨 대 슈퍼맨]은 영화 자체가 굉장히 심오하려고 하고, 150분 동안 인간과 신, 선과 악에 대해서 정말 무거운 대화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그 난해한 논의 끝에 남은 건 거의 없다. 슈퍼걸은 달콤하고 간결하지만, 우리가 꼭 지니고 있어야 할 이상에 대해 강력한 우화를 조용히 전달한다. 지난주 에피소드의 한 장면에서 슈퍼걸은 "난 그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라고 말했다. "가치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라고. 이런 그녀야말로 지금 멀티플렉스에 걸려있는 '슈퍼히어로를 새롭게 조명하는 데 실패한 영화'에 대한 확실한 해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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