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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Oct 01. 2016

일라이자: 확인사살

신선하고 기분좋은 코미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 넷플릭스는 자주 켜지 않는 편인데, 용량 문제가 일단 제일 크고, 재미있는 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라 고르기도 좀 애매한데, 그러다보니 고른 게 일라이자의 스탠드업 코미디. 일전에 아이즈 기사에서 추천한 걸 볼까 하다가, 새 공연이 올라왔다고 해서 이것부터 먼저 보게 됐다. 지난 4월, 시카고에서 열린 일라이자 슐라이싱어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녹화분이다.

 


처음부터 "어 이거 재미있네." 술과 함께 봉인해제되는 파티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남자들은 알지 못하는 여자들의 미에 대한 노력 (+그리고 때때로 불안함과 함께 나타나는 노력 이상의 집착)에 대해 넘어갈 때만 해도, 재미있다 정도의 느낌만 왔다. 그런데 그 다음에 모든 여자의 큰 가방은 마치 블랙홀 같다는 이야기, 특히 평소에 쓰지도 않는 립라이너를 찾느라 시선은 맞은편에 앉은 (오늘 처음 만난) 상대에게 고정한 상태로 빅백에 손을 집어넣어 그걸 찾는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한 번 넘어가면서 이 언니의 말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됐다.


그 다음에는 여자들이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매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그녀는 "사회적으로 심은 편견"을 꼭꼭 짚고 넘어간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복종시키기 위해서 여성의 신체와 정신에 가하는 온갖 속박과 제제 중 하나라는 지적. 이걸 그냥 글로 적으면 재미가 없는데, 일라이자의 실감나는 연기와 여기에 적을 수 없는 (수위를 가뿐하게 넘어가는) 농담이 곁들어져서 빵빵 터진다.


그 다음에 그녀는 "인어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이걸 보기 전엔 인어 판타지라는 걸 몰랐고 검색해도 잘 안 나오지만, 일라이자가 말하는 인어 판타지라는 건 이런 것 같다. 인어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어류라 혼자 일어서지 못한다. 물고기를 사냥해서 잡아먹지도 못하며, 더 큰 바다생물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도 힘들다. 결국 자신의 보호를 위해 자신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 홀리는 미모"를 이용해 먹을 것을 얻어낸다. 물론 "미모"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 서양에서 인어는 여자아이들의 우상인 아리엘 공주가 아니라, 자립할 수 없어서 결국 선원들의 성적 대상으로 전락한 생명체일 뿐이다. 이 이야기를 할 때는 웃기도 많이 웃었지만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도 받았다.


마지막에 한 샤크 탱크 이야기는... 사실 샤크 탱크를 안 봐서 잘 모르지만 일라이자의 연기는 정말 재미있다. 특히 바보같은 두 자매가 나와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모습이 이럴 것이라 보여주는데 ㅋㅋㅋ 정말 연기는 발군이다. 엄청나다 ㅋㅋㅋ


코미디 속에서 일라이자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빼놓지 않고, 재차 강조한다.


혼자가 되는 것이 외로워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관계에 머물러있지 말라


여자가 어떤 옷을 입는지가 무슨 상관? 여자의 옷차림새가 남자에게 그녀를 짐승처럼 취급할 권리를 주진 않는다.


여성으로서 존중받고 싶으면 나 자신과 상대를 존중하라. 성적인 매력만이 여성 인권을 신장시킨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서로를 창녀라고 부르지 마라. 여자가 여자를 깔아뭉개는 그 순간, 사회는 모든 여자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시원시원한 웃음 속에서 촌철살인같은 말들을 듣고 싶은 분들께, 특히 여성의 힘을 믿고 여자의 이야기를 하는 여성 코미디언의 공연을 보고 싶은 분께 추천한다.


아,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 일라이자 성님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 하나 더.


그래서 성희롱은 최악이에요.
죄송해요, 다시 말씀드리죠.
못생긴 남자에게 받는 성희롱은 진짜 최악이에요.


 

http://www.netflix.com/title/80106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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