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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Apr 29. 2020

유럽 여행 - 파리로 가는 길

2016년 6월 17일

암스텔담에서 Thalys라는 기차를 타고, 파리로 이동했다. 시간은 3시간 조금 더 걸리는데 요금은 시간대와 날짜, 예약일에 따라 달라지는 듯 하다. 우리는 1개월 전쯤에 금요일 오전 11시 기차를 어른 59유로, 아이들 15유로에 예약해 놓았었다. 1등석은 가격 차이는 크게 없으면서 좌석으로 가져다 주는 점심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1등석으로 끊고 싶었는데, 애석하게 놓치고 말았다.  


일반석 실내도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에 비교하면 훨씬 넓고 깨끗했고, 식당차에서도 메뉴가 적당한 가격에 웬만큼 구비되어 있었다. 거기서 점심도 먹고, 창밖으로 지나치는 도시와 들판의 풍경을 보느라 3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암스텔담과 파리 사이에는 로테르담, 앤트워프, 브뤼셀 같은 주요 도시들이 있는데,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브뤼셀을 지난 다음부터는 프랑스 외곽 지역 풍경이 창밖에 펼쳐진다. 파리에 가까이 갈수록 한국의 주공 아파트 단지를 연상시키는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사실 예약해놓은 기차편과 숙소를 모두 포기하고 파리는 건너뛰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여러 번 갈팡질팡했었다. 며칠 전부터 파리는 폭우로 인한 센느강 범람에, 파업에, 테러 위협이라는 3재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고, 우리가 머무는 주간에 유럽 전역에서 축구팬들이 몰려드는 유로 2016까지 파리에서 열리고 있어서, 부모라는 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폭풍우 속으로 뛰어들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이 컸었다. 하지만 폭우는 일단 진정되고 센느강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고 하여 용감하게 파리행 기차에 올랐다.


 파리의 중앙역에 대해서는 내심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미스터 빈 시리즈 깐느 방문 편에 나오는 파리 중앙역이 참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리는 순간 그것은 영상 촬영 및 편집의 결과임을 알게 되었다. 서울역에 내린 줄 알았으니까.   


 중앙역 건물 내부는 '서울역'처럼 익숙했지만 분위기는 낯설어서 정신이 확 들 정도였다. 일단 샌디에고에서 매일 보는 사람들, 런던에서 본 군중, 암스텔담에서 본 군중과 파리의 군중은 인종적인 구성이 전혀 달랐다. 훨씬 복잡하고, 각기 이질적인 성질의 군중이었고, 담배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특유의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특히 기차역 화장실이 유료였는데, 나는 유료 화장실이 처음이었다. 화장실 앞에 펑퍼짐한 중년 여인이 앉아 50센터 정도 되는 이용료를 직접 받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내가 유로 동전에도 익숙하지 않고,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모호하여 좀 해맸더니 프랑스어로 퉁명스럽게 떠들어댔다. 뭐라는지 내가 알게 뭐야? 네덜란드에서는 버스에서도, 시장에서도, 거리에서도 영어가 매우 잘 통했기 때문에(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잘해서) 역시 영어가 유럽에서도 공용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조금 당황했다.  


 중앙역은 곧바로 전철역과 연결되어 있어서 RER이라는 노선을 타고 우리 숙소로 향했다. RER은 한국으로 치면 낡은 정도나 지저분한 정도가 국철 쯤 되는 것 같았다. 2층 기차여서 승강장에서 기다리던 많은 승객들을 다 삼키고도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기차 안에는 여행용 트렁크가 있는 사람이 그냥 다니는 사람만큼 많아 보였다. 우리는 숙소가 있는 Saint Michael 역에서 내렸다.


 숙소는 라틴 지구에 있었는데, 노트르담 성당과 매우 가깝고, 숙소 바로 옆에는 유명한 세익스피어 서점도 있었다. 소르본 대학을 비롯한 대학들이 근처에 많았는데, 당시 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언어가 라틴어여서 라틴 지구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언뜻 보아도 젊은이들이 카페와 퍼브, 길거리에서 물결쳐 움직이는 대학로와 많이 닮아있었다. 숙소 주인은 출판업자였는데, 이 집 말고도 근처 몇 개의 집을 관광객들에게 빌려주고 있었다. 100년 쯤 된 건물에서 중간에 쉬어가도록 꺾이는 부분 하나 없는 좁은 계단을 (남편이) 여행용 트렁크 2개를 번쩍 들고 3층이나 올라갔다. 내부는 컨템포러리 스타일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단장되어 있었다. 천장을 가로지른 목재가 하얀 페인트로 옷만 갈아입은 채 그대로 멋스럽게 드러나 있었고, 거기에 설치된 조명은 벽에 걸린 작품과 테이블에 묘하게 떨어지도록 각도가 조절되어 있었다. 벽에 걸린 작품은 모두 한 작가의 작품인데 집안 인테리어와 통일된 색감으로 작은 갤러리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이제 세 밤을 잔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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