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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Apr 29. 2020

유럽 여행 - 암스테르담의 밤

2016년 6월 16일 저녁

고흐 미술관


 고흐 미술관은 줄이 굉장히 길었지만 우리는 미리 티켓을 구입해 놓아서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고흐 미술관이라고 하지만 다른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도 여러 점 전시되어 있다. 고흐의 작품은 오르세이나 내셔널 갤러리 등 다른 미술관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고흐 미술관을 돌아보고 나니 예술적 정열을 이기지 못했던 한 화가의 작품 변천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다른 화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고흐의 작품은 시간에 따른 그의 내면 세계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특히, 단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2000점이 넘는 작품을 쏟아냈으며,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매우 격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나는 고흐의 작품 가운데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림과 자신의 방을 그린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예술적 열정을 종교와 윤리라는 그릇에 담고 배고픈 노동자들을 향해 고뇌하는 젊은 청년의 시선이 그대로 보이는 듯 하여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그 그림이 벽면 한 면을 메울 정도로 큰 그림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방 그림을 볼 때는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감이 몰려든다. 여러 장 그렸는지 미술관마다 걸려있는데 빈 의자가 있기도 하고, 의자 위에 담뱃대가 있기도 하는 등 버전이 조금씩 다르다.  


미술관에서 읽은 설명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은 형에게 생활비를 의지하지 않기 위해 수없는 초상화를 그려서 스스로 비용을 벌었고, 그러면서 얼굴의 특징을 표현하는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는 대목이다. 그래서 고흐가 그린 얼굴을 보면 그림속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평론과도 거리가 멀지만 내가 느끼는 고흐는 그랬다.  


고갱의 그림은 의외로 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고흐 미술관에서 여러 점 만날 수 있었다. 고갱을 모델로 쓴 달과 6펜스는 몇 년에 한 번씩 되풀이 해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소설인지라, 고갱의 작품이 더욱 반가웠다. 고흐 미술관을 폐관 무렵 나섰다. 그리고 얌전히 숙소로 돌아가 내일 파리로 출발하기 위해 가방을 챙겼을까? 그러기에는 암스텔담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내가 본 암스텔담의 가장 큰 매력은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움이었다. 미술관에서 나와 시내로 향하는 트램을 탔는데, 길 한 가운데에서 트램이 가지를 않았다. 바로 앞에서 땅을 파고 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하라고? 몇 분 후, 구덩이에서 인부가 나왔고, 구덩이 위로 나있는 젓가락 처럼 나있는 선로를 따라 트램은 유유히 지나갔다. 2차선 넓이의 구덩이를 남자 키를 넘길만큼 깊이 파는 공사인데 도로에 그 흔한 트래픽콘 하나 서 있지 않았고, 교통정리하는 경철관 하나 보이지 않았다. 트램 운전사나 행인이나 자전거 타는 사람, 공사 인부 할 것 없이 그냥 서로 조심했다. 신호등도 거의 참고사항 정도로 여기는듯하다. 너무 무모하여 당황하면서도 귀찮고 무거운 규정에 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움이 와닿았다.  


대중 교통을 비롯해 사회 시스템도 가볍고 효율적이었다. 트램은 주요 행선지 곳곳 '방문 앞'에 섰다. 트램을 타고 기차역에 내리면 기차역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기차역 앞에 내릴 수 있었다. 트램 티켓을 사기 위해 판매소를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트램 운전 기사가 티켓을 판매했다. 암스텔담 사람들은 대부분 자전거 앞에 장바구니 하나씩 달고 다닌다. 거기 들어가는 만큼만 장을 보는 것 같다. 커다란 냉장고도 필요없겠지. 길거리에는 남자 소변기가 서 있다. 술 많이 마셔서 오줌 눌 곳 찾다가 수로에 빠지지 말란 거다.  


운이 좋았는지 암스텔담에서 친절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주택가에 게양된 네덜란드 국기를 가리키며 오늘 왜 국기를 게양했는지 아냐고 물었다. 설명해줄 수 있겠냐고 하자, 오늘이 학기 마지막 날이라 아이들이 너무 기뻐서 국기를 게양했다고 했다. 진짜 자세히 보니 국기봉에 책가방이 걸려 있었다. 이렇게 마주친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암스텔담이 더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 매력에 우리 가족은 암스텔담 밤거리로 이끌려 들어가는 '실수'를 범했다. 19금에 해당하는 쪽으로 간 것은 아니었지만 대마초 향이 거리마다 진동했던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암스텔담에서 저녁으로 인도네시아 음식을 먹을 계획이었다. 호스트의 설명에 따르면, 네덜란드 고유 음식은 푹 삶은 감자나 야채 종류가 많아서 특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고, 자신들은 인도네이사 음식을 자신의 고유 음식으로 생각한다고 하면서 추천해준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걷고 싶은 시내쪽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보니 우리는 식당 쪽보다는 걷는 쪽을 우선으로 하여 걷다가 나오는 괜찮은 식당에서 먹고 싶었다. 그러다 곧 깨달았다. 암스텔담 시내에서는 아이들 데리고 먹을 만한 식당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결국 대마초 향을 들이키며 한 시간 가까이 헤매다가 "미소코리아"라는 한국 음식점을 발견했다. 10시가 넘었는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그런데 동양인 주인이 한국말을 못 했다. 중국인이었다. 거기까지는 오케이. 결정적으로 올유캔잇만 되고 단일 메뉴가 안 된단다. 우린 대마초 향을 흠씬 들이켜서 그런지 고기를 양껏 먹을 식욕이 전혀 없었다. 결국 그 맞은 편에 있는 수시집에 들어갔다. 역시 중국인이 하는 수시집이었다. 이것저것 시켰는데, 우동에서 짬뽕 맛이 났다. 별 걸 다 먹어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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