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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Dec 02. 2020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이 생각나서

토렴을 알았다면

벌써 10년이 가까이 된 일이다. 시어머님이 미국 우리 집에 한 달 남짓 머무셨다. 명색이 맏며느리인데 한국에 살 때 어머님께 따뜻한 밥상을 제대로 차려 드린 적이 없는 게 마음에 걸려서 머무시는 동안 끼니마다 메뉴를 이것저것 바꾸어 가면서 신경을 썼다. 우기가 3월까지 계속되면서 축축하고 으슬으슬한 날, 점심에 잔치국수를 준비했다. 잔치국수는 5분 만에 후루룩 먹는 음식이지만 막상 준비하려면 손이 많이 간다. 소면도 알맞게 삶아야 하고, 국물도 진하고 시원하게 내야 하고, 애호박 송송 썰어서 딱 맞게 볶고, 계란 지단도 부치고, 김치도 참기름과 간장을 살짝 넣어 밑 양념을 해서 넣어야 더 맛있다. 이렇게 솜씨 좋은 척 말은 잘 하지만 사실은 서툰 솜씨가 그날 들통났다.


잔치국수 준비한다고 한 시간 넘게 부산을 떤 뒤 의기양양하게 어머님을 불렀다. 

"어머님, 점심 준비 다 되었어요."

난방을 해도 냉기가 들어오는 목재주택이 익숙하지 않으신 어머님은 두툼한 기모 외투를 입고 방에서 나오셨다. 어머님이 식탁에 앉으시고, 나는 날씨에 맞는 메뉴를 준비했다고 은근히 공치사를 하며 잔치국수를 내놓았다. 어머님은 한 숟가락 딱 뜨시더니 인상이 확 찡그려지셨다.

"어머, 얘. 이걸 어떻게 먹냐?"

"어머님, 입맛에 안 맞으세요?"

"국수가 뜨거워야지 이렇게 미적지근한 걸 무슨 맛으로 먹니? 아무 맛도 없다, 얘."


열심히 준비한 음식을 한 숟가락 드시고 다짜고짜 아무 맛도 없다는 어머님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미지근한 국물은 정말 맹맹했다. 반박 불가였다. 국물은 분명히 펄펄 끓고 있었는데, 식은 소면에 부은 게 문제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엄마 따라 재래시장에 가서 먹어본 잔치 국수는 분명히 따끈했는데 어떻게 한 걸까? 이후에도 잔치국수를 몇 번 더 해 먹었지만 시장에서 맛보던 그렇게 따끈한 잔치 국수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알쓸신잡"을 보다가 그 의문이 풀렸다. 경주 편인가에서 어느 소박한 재래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었다. 거기서 토렴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식은 재료를 뜨거운 국물을 몇 번 부어서 덥히는 토렴이라는 과정이 간편한 따뜻한 국물 요리를 따끈하게 내놓는 핵심이었던 것이다. 이걸 결혼한 지 20년 만에 알다니. 그 후 잔치국수를 해먹을 때는 꼭 토렴을 해서 따끈하게 먹는다. 


요즘 세 식구가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세 끼를 모두 집에서 해결한다. 딸은 칼로리 신경 써서 본인이 직접 챙겨 먹어서 주로 남편과 둘이 식사를 한다. 날씨가 으슬으슬 추워져서 그런지 어릴 때 거리에서 먹던 음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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