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마당일을 했다. 손길이 필요한 식물이 많아서 이틀 꼬박 했는데 마당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선 벽을 따라 무섭게 자라던 스타자스민 덩굴을 과감하게 쳐냈다. 스타 자스민은 물을 주거나 말거나 말없이 잘 자라고 예쁘지는 않지만 향기가 좋은 하얗고 자잘한 꽃을 피우는 덩굴이다. 옆 마당 벽을 따라 스타자스민과 장미와 부겐빌레아가 번갈아 심어져 있는데 스타자스민의 기세가 얼마나 센지 다른 식물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칭칭 감아서 덮어버렸다. 스타자스민에게는 미안하지만 배경이나 조연쯤의 역할에 머물도록 덩굴을 모두 잘랐다. 이제야 부겐빌레아와 장미가 숨을 좀 쉴 것 같다.
스타자스민이 이렇게 기고만장하게 된 건 내 탓이 크다. 덩굴이나 나뭇가지가 원하는 모양으로 잡아주는 일을 영어에서는 트레인(훈련, Train) 한다고 하는데 어디로 뻗어야 하는지 트레인을 해주지 않아서 이 모양이 된 것이다. 10년 전쯤 처음 집을 사고 마당에 있는 화초 이름과 돌보는 법을 찾아보다가 이 표현을 접했다. 훈련은 사람이나 강아지만 시키는 줄 알았는데 화초를 훈련시킨다니 참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화초를 훈련시키려면 화초를 어떻게 훈련시킬지 화초를 심기 전에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한다. 화초가 뿌리를 땅에 단단히 내리고 나면 화초가 타고 갈 격자 울타리나 말뚝 등을 원하는 자리에 박기 어렵다. 뿌리 때문에 땅에 똑바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파는 화분 중에는 아예 격자 울타리가 달려있는 화분이 많다. 우리 스타자스민은 심은지 오래되어 뿌리가 이미 땅을 단단히 장악하고 있어서 이제 격자 울타리를 반듯하게 설치하기는 좀 힘들 것 같다. 워낙 빨리 자라니까 벽에 못을 박거나 말뚝이 들어가는 곳에만 말뚝을 박아서 덩굴을 훈련시킬 수는 있겠다.
부겐빌레아는 지난겨울 내내 잎을 떨구지 않고 꽃을 피우고 있다. 처음에 죽은 나무인 줄 알고 잘라내려고 했으니 이 멋진 나무를 잃을 뻔했다. 화초도 자신을 보아줄 사람들이 이 집에 이사 왔다는 걸 아는 걸까? 봉우리는 섬세하고 만개하면 탐스러운 꽃을 작년 봄부터 쉼 없이 피워서 그려보았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어릴 때 카네이션을 만들던 얇은 꽃종이 같은 이 꽃잎을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앞마당에 여기저기 대머리가 벗겨진 잔디도 손보았다. 잔디는 물도 많이 먹지만 은근히 관리가 까다롭기도 하다. 잔디를 너무 짧게 깎아도 밑동이 햇빛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잘 죽고, 너무 길면 미관상 보기 싫은 것은 물론 밑동이 누렇게 떠서 결국 죽고 만다. 또 잔디 깎고 난 뒤에 지푸라기처럼 마른 풀을 수시로 긁어주고 땅에 구멍도 뚫어주어야 물이나 비료를 주었을 때 땅으로 스며들고 뿌리가 숨을 쉴 수 있다. 잔디 깎는 사람들이 오지만 그런 세세한 서비스는 추가 요금이 필요한 일이다. 넓지 않은 잔디밭이지만 잔디밭 가운데 버드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캘리포니아 페퍼 트리가 있어서 얼마나 땅이 단단한지 마른풀을 긁어내고 구멍을 뚫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그렇게 땅을 준비한 뒤에 비료가 섞인 잔디 씨앗을 흩뿌리고 물을 흠뻑 주었다. 앞으로 2주 동안은 하루 두 번 물을 주어야 한다. 2주 후에 잔디 새싹이 파릇파릇하게 올라오리라는 기대에 벌써부터 설렌다.
집 건물 벽을 따라 듬성듬성 심긴 제라늄 사이에 알록달록한 꽃도 심었다. 꽃을 심을 곳을 파면서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빈 땅이라는 것이 사실은 없다. 거기에는 전선이나 배관이 지나가기도 하고, 다른 나무에서 양분을 찾아온 뿌리들도 지나간다. 무작정 힘껏 내리쳤다가는 배관을 손상시키는 사고를 내기도 한다. 특히 벽 주위에서 조심스럽게 파헤치니까 손 피부에 닿는 흙의 촉감이 좋았다. 까만 손끝을 보려니 아들 생각도 나고 뿌리와 배관으로 나름대로 여러 주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땅을 보니까 얼마 전 맞닥뜨린 똑똑한 어느 분의 생각도 났다. 배관이 지나가는 이유가 있고, 새로 심을 식물보다 먼저 땅을 차지한 뿌리가 있는데 모든 걸 본인 기준에 맞추어 재정의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알고 보니 본인도 별로 바르지 않았던, 그런 일이 떠올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봄 맞을 준비를 마치고 나니 온몸이 뻐근하지만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