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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Mar 10. 2021

더러운 이야기라 안 쓸까 하다가

이왕 더러운 이야기 쓰는 김에 모조리 써버려야지. 그러면 시원하게 똥 누고 난 것처럼 좀 시원할지도 모르니까. 읽는 분께는 참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 더러운 이야기를 읽는 분의 속까지 시원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숨기고 살아야지 작정한 적은 없지만 보여주는 일에 서툴러서 그런지 내 마음에는 찌꺼기가 참 많이 쌓였던 모양이다. 내 얘기를 쓰고 그림을 그린 후부터 나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란, 똥 눌 곳을 못 찾아서 진땀 빼는 꿈을 어느 날부터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자각한 것은 <나의 꿈 사용법> (고혜경, 한겨레출판사)을 읽은 뒤였다. 흥미롭게 읽었는데 벌써 내용이 가물가물하지만 어쨌거나. 요즘은 화장실 꿈을 안 꾼다. 내 꿈에는 늘 화장실이 등장한다. 얼마나 오래 등장했는지는 몰라도 아마 사오 학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 같다. 꿈의 시작 장면은 학교일 때도 있고 집일 때도 있지만, 어떤 장면으로 시작하여도 나는 꿈에서 꼭 화장실을 찾아 헤맨다. 꿈에서 나는 급하게 화장실에 달려간다. 하지만 분명히 화장실이 있었던 자리에 화장실이 없거나 화장실은 있는데 문이 안 열리거나 문을 열었더니 변기에 똥이 가득 차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 아니면 변기는 있는데 화장실 벽이 없어서 볼 일을 볼 수 없다. 늘 같은 꿈이다. 급한데 내가 쓸 수 없는 화장실이 없어서 쩔쩔매는 아주 더러운 꿈. 꿈에서 나는 화가 난다. 아니 또 화장실 꿈이야? 화장실이 나오는 걸 보니 또 꿈이잖아. 그렇게 깬다. 잠에서 깨 보면 뭐가 마려운 건 아니다. 그냥 꿈에서 그런 거다.


신기하게도 이제는 화장실 꿈을 꾸지 않는다. 꿈의 장면도 다양해졌다. 경험 속에 없는 공간과 이야기가 나온다. 글을 끄적이기 시작한 시점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점이 모두 일 년 전쯤이어서 둘 중 어느 활동 덕분인지 콕 집어서 말할 수 없기는 하다. 단, 글을 쓸 때 종종 마음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끼니까 글 쓰면서 나오는 똥이 더 묵은똥일지도. 그림은 버리는 일보다 발견하는 일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내 눈에 기쁨을 주는 장면이 어떤 빛깔과 모습인지 먼저 발견해야 종이 위에 옮길 수 있어서 그렇다. 그러고 보면 글이나 그림은 관계와 대화에 서투른 사람이 내면의 무언가를 소화하고 배설하게 하는 언어인 것 같다.



멀미

나는 멀미를 끔찍하게 많이 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차를 타면 속이 꿈틀대고 식은땀이 나고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증상을 겪는다. 우리 집 앞 상봉터미널, 망우 파출소 정거장에서 버스를 타고 청량리까지 가는 약 십오 분, 여섯 개 정도의 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네 번 내려서 웩웩 토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일 년 열두 달 멀미를 하는 건 아니다. 어떨 때는 차를 아무리 오래 타도 멀미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멀미가 시작되면 몇 달 간은 차를 타기 어렵다. 창피하게도 아직도 그래서 내 손가방에는 늘 멀미약이 들어있다. 지난달에 집을 나선 적은 손에 꼽힐 정도지만 그때마다 심한 멀미를 해야 했다. 집에서 한국 마켓이나 코스트코까지 가는 약 15분 동안 우글우글 올라오는 구토를 꼴깍꼴깍 삼켜야 했을 정도였다. 결국 한국 마켓 갈 때도 멀미약을 먹었다.


이렇게 멀미를 잘하는 사람이 역마살이 낀 듯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니 참 앞뒤가 안 맞는 얘기이다. 지구 위 곳곳에 내가 게워놓았던 토사물을 떠올리면 주위를 지나며 이상한 냄새에 기분이 상했을 모든 분들에게 미안해진다.


아들도 느닷없이 구토를 하곤 했다. 서너 살 무렵 에버랜드에서 종일 질펀하게 놀고 공원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저녁 먹기 약간 이른 시간이어서 식당은 한산했는데 우리 가족과 대각선으로 어느 중국인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들이 까불면서 먹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중국인 부부는 손도 흔들어 주면서 아들을 연신 쳐다봤다. 아들은 까불까불 맛있게 먹다 말고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먹은 걸 게워냈다. 나와 남편은 혼비백산하여 급히 자리를 치우고 종업원들에게 거듭 사과하고 나서 상황을 떠올리고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년 전 중학생 때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밴프에 있는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이었는데 요리가 명성이 걸맞은 맛이었다. 아들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나도 한 조각 먹어보니 양고기가 이렇게 맛있나 싶을 정도였다. 종업원들에게도 맛있다고 추켜 세워가며 저녁을 흐뭇하게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길이었다. 아들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다.

- 나 속이 안 좋아.

- 그래? 우리도 다 먹었으니까 얼른 나가자. 넌 빨리 화장실로 가.

모두 일어나서 문을 향해 나가는 길이었다. 화장실까지 가기 전에 일이 벌어졌다. 십 대 청소년이 참 많이도 먹었다.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우리는 종업원 손에 큼지막한 팁을 쥐어주고 거의 도망가다시피 나갔다. 양고기만 보면 그 일이 떠오른다. 물론 그후로는 다시 먹지 않는다.


우리 강아지도 차를 못 탄다. 차만 타면 발발 떨면서 위속에 있는 것까지 게워낸다. 한 번은 캠핑에 강아지를 데리고 갔다가 차 안에서 내내 게워 대서 두 시간이 족히 거리는 거리를 코를 찌르는 냄새를 맡으며 와야 했다. 훈련도 시켜보았지만 멀미만큼은 답이 없어서 강아지도 나처럼 멀미약을 먹인다.


차를 타서 흔들대는 불편한 상황이 되면 왜 속에 있는 걸 게워내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참 불편하고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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