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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Feb 18. 2021

괄호 안에 넣어둔 이야기

네가 피터팬의 나라로 떠난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구나.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묻곤 해. 어떻게 사느냐고. 자기 같으면 못 살았을 거라고. 나도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어서 나도 자신에게 물어봐. 네가 곁에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지? 그런데 암만 생각해도 너를 잃은 것 같지가 않아. 네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내 아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너는 내가 쓰는 글의 괄호 안에 들어있고, 우리가 하는 이야기의 말줄임표 안에 들어있단다. 요 며칠 동안은 괄호 안에, 말줄임표 안에 들어있는 네 이야기를 미칠 듯이 꺼내보고 싶었어. 괄호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터질 것 같았거든. 괄호가 팡 터져나가서 이야기가 산산이 흩어져 다시 찾아올 수 없다면 그때는 정말 너를 잃는 거니까.


지난주에 한국 마켓에 제주 월동무가 들어왔어. 이 무로 섞박지를 담으면 별다른 비법 없이도 아삭아삭하고 시원한 섞박지가 되거든. 한아름 사 와서 담갔더니 시원하게 잘 익었어. 빨갛고 투명한 김치 국물이 먹음직스럽게 감도는 섞박지를 보면서 네 이야기가 또 괄호 안에 들어갔어. 네가 설렁탕을 참 좋아했잖니. 그래서 이맘 때면 섞박지 재료를 살 때 우족이랑 사골, 꼬리뼈를 잔뜩 사 와서 설렁탕을 한솥 끓이곤 했었는데. 네가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다음 주에 먹자고 미루었던, 그 후로 아직까지 먹지 못한 음식이 설렁탕이니까. 그날 괄호 안에는 이런 말이 들어갔어. 

"이 섞박지 설렁탕이랑 같이 먹으면 참 맛있겠다. 네가 설렁탕 참 좋아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찔레꽃 울타리 접시를 꺼내서 시나몬 롤을 데워 먹었어. 네가 어릴 때 읽어주었던 책인데 사실 너보다 내가 그 그림을 더 좋아했었지. 그 그림이 그려있는 찻잔 세트 중에 사계절 세트를 늘 갖고 싶다가 이 집에 이사 오고 작년에 한벌 마련했단다. 왜 사계절 세트를 갖고 싶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렸고, 그저 갖고 싶었던 예쁜 찻잔 세트를 갖게 되어서 기뻤어. 그리고 사계절 세트를 원했던 이유가 기억났어. 우리 가족 생일이 사계절에 나누어 있잖니. 너는 늦가을, 아빠는 겨울, 나는 봄, 네 동생은 여름. 생일에 맞추어 하나씩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야. 네가 가고 나서야 이 세트가 우리 집에 왔으니 하나가 남잖아. 이걸 산 걸 한참 후회하다가 생각하니까 오히려 잘 된 거 같아. 가을 찻잔을 꺼내 쓸 때 널 떠올릴 수 있으니까. 너는 작은 동물, 작은 식물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산속에서 열매 따먹는 것도 좋아했고 작은 곤충을 손바닥 위에 올라놓고 관찰하는 것도 좋아했고. 이 찻잔 사기를 잘했어. 네가 좋아했던 게 이 찻잔 그림에 다 그려있어. 물론 이건 모두 괄호 속에 들어있는 말이지만.


아직 길게 못 쓰겠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쓸게.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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