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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Jun 02. 2021

오늘도 그림일기

숲을 잠깐 걷고 나서

어제는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였다.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과 비슷한 날이다. 딸이 학교에 가지 않아 집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트레일을 걷고 왔다. 사라토가에 있는 샘 트레일이라는 곳이다. 딸 친구 중에 샌디에이고에서 우리보다 1년 정도 정도 먼저 이곳으로 아이의 엄마가 이곳을 소개해 주었다. 비가 드물고 햇빛이 강한 캘리포니아에서는 누렇게 뜬 풀이 끝도 없이 펼쳐진 구릉에 드문드문 낮게 자라는 관목이 육지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자연경관이지만 더러 한국처럼 나무가 우거지고 실개울이 흐르는 곳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그런 곳이라고 했다. 인터넷에는 트레일의 총길이가 약 5.1마일, 즉 8.2km 정도 된다고 나와 있어서 트레일을 다 돌려면 오전 반나절은 족히 걸어야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군데군데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고 있어서 트레일 안쪽은 접근이 어려웠다. 나무를 넘어서 갈 수도 있지만 그런 곳은 인적이 드물어서 무섭기도 했다. 골짜기를 따라서 졸졸 흐르는 개울 주위에 모기도 엄청 나서 결국 1시간 남짓 걷고 돌아왔다. 짧아서 아쉽기는 했어도 오랜만에 본 우거진 숲과 냇물은 무척 반가웠다. 특히 수 없이 많은 나뭇잎과 나뭇가지 사이로 그늘진 트레일에 스며드는 햇살을 마음에도 담고 사진에도 담아서 돌아왔다.


찍어온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림을 시작했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문득 보이는 게 있었다. 수많은 나뭇잎 사이로 엿보이는 하늘이었다. 그렇게 나뭇잎이 많은 것 같아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모두 가릴 수는 없나 보네. 오히려 나뭇잎이 밝은 하늘을 더 밝게 해주는 것도 같았다. 새하얀 햇빛이 초록 나뭇잎에서 닿아서 노란빛으로 반사되는 듯 보였다. 짧은 하이킹 길에 그림으로 담고 싶은 장면을 잔뜩 찍어와서 한동안은 그림 그리며 지내야겠다. 물론 그 아름다움은 사진으로도, 그림으로도, 글로도 담을 수 없겠지만 이렇게 옮기면서 아름다움을 조금씩 꺼내서 되새길 생각을 하니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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