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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Dec 06. 2021

바닥에서도 보이는 빛

 크리스마스 절기에 즈음하여

얼마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에 알게  분이지만, 내가 일을 일부러 묻지 않고 여러 모로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마음을 느낄  있는 분이다.  일을 모를  없는 분이고,  이야기를 비껴나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워서, 내가 먼저 넌지시 이야기했다.

"딸이 7학년 때 그 일을 겪고 많이 힘들어해서 상담치료를 시작했는데 시작하길 잘한 거 같아요."

-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지...

"모른 척해주셔서 너무 감사한데, 모두 아는 일이라는 걸 저 잘 알고 있어요."

그분은 눈시울이 금방 붉어지셨다. 나는 아들이 가고, 사는 게 쉽지 않다고 담담하고 짧게 이야기했다. 그분이 위로해 주셨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아들을 잃었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게 아니니까 사람들이 다르게 대하는 거에 괘념치 말라는 정도의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내 입에서 곧바로 튀어나간 대답은, "저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다른 삶을 사는 게 맞아요"였다.

네 식구가 세 식구가 되면서 네 개씩 놓여있던 물건, 네 개씩 사던 물건, 네 식구 때 쌓았던 추억을 꺼내는 일 등등은 아직도 힘들 거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것으로 나의 본질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보았던 것이 다르게 보이고, 예전에 할 수 있던 말을 할 수 없고, 예전에 느낀 것을 다르게 느끼거나 느낄 수 없어서, 예전에 하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자꾸 그림에 빗대어 이야기하게 되는데 퍼스펙티브(perspective), 즉 원근법에 따라서 같은 물건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이 얼마나 큰 진리인지 몸소 경험한다고 할까. (영어에서는 원근법이라는 단어와 사안에 대한 관점이라는 단어가 모두 Perspective로 동일하다.)


다른 삶에서 감당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이나 모임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전의 '나'로 하던 것처럼 할 수 없어서 달라진 '나'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 연습하는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교회에 나가는 일이다. 교회와 그다지 가까운 편이 아니었으면서 새삼 교회 얘기를 꺼내는 것이 뜬금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교회가 본래 세상에서 실패한 자, 버림받은 자를 위한 곳이어야 한다면, 인생의 바닥에서 교회를 떠올리는 게 그렇게 뜬금없는 얘기는 아니다. 내 아이가 사망의 골짜기에 떨어지는 순간, 신께서 그 아이를 품에 안아주셨을 거라고, 지금도 그 아이를 품에 꼭 안고 이 땅에서 짧은 생을 사느라고 고생 많았다고 위로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랑의 신을 믿지 않고서 아이를 잃은 엄마는 이 삶을 살 수 없으니까. 하지만 어려서부터 교회 안에서 자라서 교회의 속 모습과 겉모습을 너무 잘 아는 사람으로서, 성경 곳곳의 가시 돋친 구절을 너무 잘 아는 사람으로서 나는 교회에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특히 내 발로 찾아간 곳에서 살갗이 발갛게 벗겨져서 아물지 않는 상처에 다시 소금 뿌릴 만한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소금을 뿌리는 분들은 본인이 그러는 줄도 모를 테고, 성경 말씀에 빗대어 올곧은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이곳에서 소개받은 한인 교회에 몇 주 나갔는데 어릴 적 다니던 교회와 분위기도 비슷하고, 여러 모로 마음이 편한 곳이었다. 등록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주 목사님의 말씀에 나는 마음을 돌렸다. 좋은 말씀 중에 섞여있는 단 몇 마디의 말이었다. 교회가 타락하여 동성애자에 찬성하는 교회가 생겨났다는 맥락에서, 성경에서 분명히 죄로 규정한 행위를 포용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고 너그러워 보이지만 그것도 죄악이라는 대목이었다. 나는 동성애나 신학적인 측면에 대해 논의할 만한 지식도 없고 어떤 주장을 펼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자리에서 내가 느낀 건, 성경에 쓰여있는 수도 없는 구절을 들어서 남의 죄를 가려내고 자신은 결백한 쪽에 서려고 하는 심판자의 숨결이었다. 아이를 잃기 전이라면, 연세 드신 목사님이 하시는 그런 말씀을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니니까, 아니 어쩌면 나도 심판자 무리에 끼어서 다른 사람의 그름에 손가락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내가 느낀 것은 어쩌면 그 자리에 앉아있을지도 모를, 동성애자의, 또는 동성애자 자녀를 둔 어머니의 아픔이었다. 성경에 있는 수많은 사랑의 구절을 다 제쳐놓고 정죄의 입김을 내뿜는 자리에서 나는 얼른 나가고 싶었다. 동성애가 진정으로 죄라고 믿는다면, 동성애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공부하고 그런 발언을 하는지, 아니면 진지하고 공부하고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설교 몇 마디에 내가 그렇게 아팠던 것은 내 아들이 죄악이라고 부를만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성경 어디에도 자살을 죄로 규정한 대목은 없지만 자살은 기독교의 전통 상 죄악으로 규정되어서 교회 묘지에도 묻히지 못한다. 성경의 진리가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이 세상의 교회는 인간 종족의 진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측면이 크다. 번성하고, 번영하고, 성취하고, 개발/발전하는 인간. 인간의 번식에 어긋나는 동성애와 자기 자신의 살인인 자살이 교회에서 유독 극단적으로 금기시되고,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근저에는 이런 부분이 일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아들의 자살을 겪은 뒤, 내가 다른 눈으로 보는 자살은 전에 알던 것과 전혀 다른 종류의 사건이다.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살에 대해서 악마가 들어왔을 때 심약하여 내쫓지 못해서 악마의 부추김에 빠진 것으로 비공식적으로 해석해왔다. 정말 그럴까? 나는 엄마로서 내 아들의 자살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우기고 싶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완벽한 신이 만든,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다른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해, 그 불완전성이 만든 불운한 결과에 대해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믿는다. 완벽한 신이 완벽하지 않은 인간을 만들어서, 그 인간이 불행을 겪고 있을 때, 인간이 할 일이란, 그것이 종국의 선을 위한 신의 뜻이었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고, 지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서 신이란 대문자 God을 뜻하지만, 난 내 아들을 데려간 신에게 아직 크게 화가 나있고, 그분 뜻이었다고 해도 동의할 마음이 들지 않으므로 '하나님'이라는 존대어를 쓰기가 싫다. 그래서 그냥 신(God)이라고 쓴다.


한인교회에 발길을 끊은 동시에 적극적으로 교회를 찾았고 한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교회에는 이런 문구가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EVERYBODY’S WELCOME.

NOBODY’S PERFECT.

ANYTHING’S POSSIBLE"

내 마음이 듣기 원했던, 내 마음에 필요했던 말이었다. 몇 주째 이곳에 가고 있고 마음도 기울고 있다. 마음에 깔딱거리지만 차마 꺼낼 수 없었던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건 오늘 설교 덕분이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어둠의 빛으로 해석한 내용이었고, 제목은 '희망(HOPE)'이었다. 이런 해석은 여러 문화에서 이 무렵에 쇠는 절기들에 '빛'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매우 전통적인 종교적 해석이다. 빛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 볼 수 있게 되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어쨌든 이 전통적인 해석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설교 말미에 설교자가 나눈 본인의 경험이었다. 설교자는 얼마 전 아킬레스건이 찢어져서 수술을 하고 누워 있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일이 비하면 자신이 겪은 일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희망을 품는 일은 이런 작은 일부터 연습해야 하니까 공유한다고 말하면서 이야기한다. 통증이 심해서 자다가 깨고 깁스 해서 불편한 생활을 하는 것은 설교자에게 좌절스러운 시간이었다. 말하자면 어둠의 시간이다. 그때 사람들이 음식도 가지고 오고 위로를 해주었다. 그들이 가져다준 것은 빛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빛은 아니지만 그 빛을 반사해주는 작은 빛이었다. 설교자는 그 빛에서 수술 부위가 나을 날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는 작은 간증을 했다. 발목 수술을 하고 누워있는 일시적인 불편함을 나누었지만, 나는 3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심해에는 빛이 전혀 도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3년 전 나는 심해에 있었다. 물론 다른 삶을 살게 된 나는 물 위로 떠오르는 일 없이 물속에서 사는 법을 배우고 있지만. 그 심해에서 그대로 사라지지 않은 건 나에게 다가온 작은 빛들이었다. 그 빛은 내가 부른 것도 아닌데, 도움의 손길로, 뜻밖의 일로, 빛이 찾아왔다. 그리고, 아직까지 나는 희망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가 불편하지만 희망이라는 게 내 속에 싹텄던 것 같다. 설교자는 희망이 끝이 아니라고 말했다. 희망은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빛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그 문턱에 서있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쓸 용기가 났다. 아직 그 이상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냥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이 글로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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