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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May 19. 2022

지금 내 얘기

나 자신 인터뷰

또 자화상인가요?

지난번엔 어릴 때 모습이고요, 이번엔 지금 모습입니다.


크레파스로 그렸나요?

아니요. 색연필로 그렸습니다.


사진을 그대로 그린 건가요?

사실적으로 그대로 그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표현하고 싶은 부분은 있었고 아래에 써놓았어요.


제목은 뭔가요?

플레인 & 플로우(Plain & Flow).


제목이 잘 와닿지 않는군요.

다른 인종에 비해 동양인들은 외모가 밋밋하죠. 옷도 화려하게 입지 않고요. 미국에 사니까 저도 그런 동양 여자로 자신을 인식한 거고, 클래스 대부분이 젊고 멋진 학생들이니까 이런 소개를 떠올려 봤습니다. 한국에 살았다면 떠올리지 않았을 콘셉트이죠. 그 밋밋함에다 움직임의 개념을 더해서 콘셉트의 균형을 잡아보았습니다. 일단 움직이는 것은 지루하지 않으니까요. 무엇보다 자화상을 그리려고 자신을 돌아보니까 제 삶이 결코 지루하지는 않았더라고요.


그럼 이 그림을 클래스 게시판에 올린 건가요?

네 숙제로 올린 겁니다. 그림과 함께 그림의 콘셉트와 소감문(Reflection) 같은 것을 올려야 하는데 이렇게 써봤습니다.


이 자화상은 지난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그린 것입니다. 셀피를 찍거나 사진 찍히는 일이 별로 없는데 이 사진은 준비 없이 찍혔네요. 그래서 제 평소 모습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선택했어요.
저는 매우 밋밋한 동양 여자입니다. 항상 뉴트럴 컬러 옷을 입고 화장도 안 하고 커피는 아메리카노를 마십니다. 사진에서도 남색 카디건과 옅은 회색 반 터틀넥을 입고 있죠. 제 옷장에는 회색 카디건, 베이지 카디건, 짙은 남색 카디건, 밝은 남색 카디건이 있어요. 남색 카디건이 낡으면 버리고 새 남색 카디건을 삽니다. 저를 10년 전에 보셨어도 이런 색의 옷을 입고 이렇게 웃고 있을 거예요.
그럼 맨날 똑같냐고요?
그렇지는 않아요. 세월에 따라 변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늙는 것도, 늙어 보이는 것도 전 괜찮습니다. 그림에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눈가의 주름이 보이나요? 외모뿐이 아니라 일도 다양한 일을 했죠. 25년 전에 절 만났다면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였을 겁니다. 물론 같은 옷에 같은 미소였겠지만요. 15년 전에는 에디터였죠. 5년 전에는? 번역사이고요. 지금은? 계속 번역사이지만 미술에 미쳤어요. 알겠나요? 난 항상 밋밋한 동양 여자이지만 변하는 걸 싫어하지 않아요.


항상 웃을 일만 있나요?

슬플 때도 많아요. 내 얼굴 근육들이 모두 슬픔을 휩싸일 때는 억지로 웃는다고 미소가 되지는 않아요. 단, 눈물을 흘린 뒤에는 꼭 코를 세게 풀어요. 슬픔은 눈물보다 콧물에 더 많나 봐요. 슬퍼서 울고 코를 풀어 보면 무슨 말인지 알 거예요.


주로 언제 슬픈가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슬프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기쁘다의 반대가 슬프다일까요? 어쨌든 안다고 치고 이야기할게요. 빨래를 갤 때 많이 슬퍼져요. 아들 생각이 많이 나거든요. 그 아이가 입었던 옷을 다시 만져보고 싶어요. 예전에 빨래가 많다고 불평을 했었어요. 이제는 가족이 입고 다닌 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차곡차곡 정리해주는 일이 참 소중하게 느껴져요. 봐요. 슬픈 게 뭔지 모르겠죠. 마음이 아프면서 따뜻해지는 일도 있으니까.


요즘 행복합니까?

대답 대신 여기에 그림 하나, 이야기 하나 더 올릴게요.

이거 본 그림인데요?

네 맞아요. 이 그림도 학교 숙제로 그린 그림인데 지난번에 이야기를 못 올렸어요. 사실은 이 그림도 자화상이거든요.


Title: When an Alligator Was Injured

There was an alligator, which was, you know, barky and ugly. Living as an alligator is not entirely bad, though, because other animals would like to leave her alone. One day, the alligator was injured somehow. The injury was so bad that it lost half of her heart, let alone a chunk of its barky skin torn off here and there. The alligator was just resting its body on the ground and waiting for the end of her life. What else can she do? But she was too strong to cease to exist after the injury. Then, something unexpected began to show up. Something soft. Somewhat embracing. Maybe bright. Those kinds of stuff would not really go well with what the alligator Looked like, and she felt a little awkward about those new features. That said, she would not really mind them, either. After all, the soft, embracing, and possibly bright features would make it easier for her to live as an alligator to the end of her life.


왜 이건 영어로 올리죠?

그러게요... 번역가로서 부끄럽지만 번역하면 제가 글을 쓸 때 들었던 기분이 전해지지 않는군요. 차라리 다른 글을 새로 쓰는 게 낫겠네요.


그럼 행복하단 말인가요? 아니란 말인가요?

행복이라는 표현은 불편하지만 세월과 싸우지 않으면서 사니까 살게 되는 것 같아요. 다친 악어처럼 세월이 주는 선물을 감사히 받고 세월이 주는 채찍을 달게 맞고 그렇게 살아요. 행복은 모르겠지만 불행하게 살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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