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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Jul 13. 2022

스페인-세비야

7/4-7/6

7/4

아침 일찍 바르셀로나에서 항공편으로 세비야에 도착했다. 세비야는 더위 때문에 엄두가 안 나서 원래 계획에 없던 곳인데 마지막에 마음을 고쳐 먹고 가보기로 했다. 공항을 나서니 바르셀로나보다 확실히 후끈하고 관광객들의 연령이 살짝 높은 듯했다.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 승차장에 줄을 섰다. 우리 앞에는 60대 정도로 보이는 백인 부부가 있었다. 여느 공항과 택시가 서면 줄에 선 승객들은 차례대로 타는데 택시 두 대가 한꺼번에 도착했고 그중에 몇 초 먼저 도착한 택시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운전사는 우리가 만난 스페인 사람들 중에 영어를 매우 잘하는 편이었고 계속해서 전화로 통화를 하며 우리가 묵을 숙소로 향했다. 길이 얼마나 좁고 꼬불꼬불한지 오토바이도 지나기 힘들 것 같은 길을 운전사는 주소만 보고는 요리저리 빠른 속도로 묘기에 가까운 실력으로 내비게이션도 틀지 않고 운전해서 찾아갔다. 승차 요금을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요금이 얼마 안 나왔는데 우리는 100유로짜리밖에 없어서 딸에게 10유로짜리 세 장을 달라고 하여 현금으로 지불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원래는 3시 체크인인데 아침 비행기로 도착한다고 했더니 11시에 체크인을 하도록 해주어 짐을 풀고 점심을 먹고 일정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숙소는 누마 존도(Numa Zondo)라는 이름의 아파트였다. 160유로에 이런 숙소를 구할 수 있다니. 도보 10분 이내에 관광지가 많을 뿐 아니라 방 두 개에 킹사이즈 침대가 있고 주방과 세탁기가 완비되고 화장실도 두 개였다. 에어컨 시원하게 틀고 매우 만족하며 짐을 풀었다. 잠시 쉬다가 나가려고 하는데 남편이 물었다.

"지갑 네가 가지고 있어?"

"아니, 나한테 안 줬잖아."


지갑이 없었다. 지갑을 찾으러 밖에 나가 돌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앞서 일어난 일 중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줄 서 있는 백인 부부를 제쳐두고 동양인 관광객을 골라 태운 점이 먼저 걸렸다. 앞에 백인 부부가 먼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몇 초 후에 다른 택시가 도착했기 때문에 그냥 탔던 기억이 났다. 요금을 현금으로 달라고 한 것도 걸렸다. 바르셀로나에서도 몇 번 택시를 탔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거다. 또 운전사가 커다란 현금 가방을 꺼내어 우리 시선을 분산시킨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어이없이 우리는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 그 안에 있던 현금, 신용카드, 현금카드, 신분증 모두 다. 나도 정신없이 여행길에 나서느라 여권만 챙기고 돈이나 신용카드는 땡전 한 푼 안 들고 나선 터여서 우리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굴하지 않고 곧바로 신용카드 분실 신고를 한 뒤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잃을 것이 없어 홀가분하기도 했다. 애플 페이로 지불할 수 있는지 보고 안 되면 딸에게 남은 몇십 유로 안에서 먹어야 해서 간단한 메뉴만 시킬 수 있었다. 노천카페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귀신에 홀린 듯 방금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았다. 다행히 애플 페이로 점심값을 낼 수 있었다. 신용카드를 정지시켜도 애플 페이가 된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날씨를 보니 이날은 오전 내내 구름이 끼어 있어서 온도가 오후 늦게 상승할 모양이다. 세비야가 상당히 덥다고 하여 매우 걱정하였는데 구름 덕분에 많이 덥지 않았다. 구글맵에서 찾아봤을 때 숙소와 점심 먹을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알카사르 성으로 향했다. 매표소에서 애플 페이 안 되는 바람에(아니면 에러가 났는지) 티켓 구입에 약간 어려움이 있어서 입구에서 좀 기다렸다. 남편이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들어간 성에 우리 가족은 홀딱 반했다.

로마 양식과 이슬람 양식의 조화가 빚어내는 웅장하고 화려함이 단연 돋보였지만 나의 관심은 살짝 다른 곳으로 쏠렸다. 얼마 전부터 그림 소재로 창문에 집착하면서 유리창이 아닌 창살 패턴에 매료되었는데 이 성에는 기하학적 패턴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주로 타일에 이런 패턴이 쓰였고 창살에도 벽장식 조각에도 패턴이 가득했다. 두 문화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나고, 지나가고, 이겨낸 성 구석구석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가득할 것 같았다. 나는 무엇보다 패턴 때문에 황홀했다. 한없이 단순해 보이는 모티브로 어떻게 이 복잡한 모양을 구성해낼 수 있는지, 또는 한없이 복잡해 보이는 모티브를 어떻게 그 넓은 공간에 확장해 나갈 수 있는지 나는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으로, 마음속으로 따라 그려 보았지만 신기하기만 했다.


정원도 다채롭게 가꾸어져 있었다. 여러 왕조가 스쳐갔던 장소여서 그런 다채로움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베르사유 궁에 방문했을 때 정원 전체가 그래픽으로 디자인하여 실현한 듯 반듯반듯한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곳에도 메이즈 정원은 있어서 누가 먼저 메이즈에서 탈출하는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딸과 남편이 한편을 먹어서 내가 졌지만. 여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지역인데도 다양한 수종이 우거져있을 뿐 아니라 곳곳에 아기자기한 연못과 수금류를 위한 생태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엄마 공작이 아기 공작들을 데리고 아빠 공작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한숨 돌리고 해가 질 무렵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스페인 광장은 주변의 정원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 본 광장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광장 중심에 있는 건물은 긴 회랑을 따라서 홀 등 실내 공간이 연결되어 있는데 현재 사용되는 것 같았다. 긴 회랑을 걷고, 광장을 가로지르는 관광 마차를 구경하고, 연못가에서 백조와 오리들을 지켜봤다.


7/5

이 숙소는 완벽할 뿐 아니라 조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근에 제휴된 식당에 가서 호실을 말하면 토스트 종류와 바로 즙을 낸 오렌지 주스,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아침 식사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오늘은 숙소 옆에 있는 성당과 종탑을 보러 갔다. 솔직히 말하면 표를 구입하러 갈 때까지 성당과 종탑 이름을 몰랐는데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 종탑이라고 한다. 세비야 성당은 가톨릭에 관련된 건물이고 히랄다 종탑은 이슬람교의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종탑이지만 서로 붙어있다. 내가 이름도 몰랐던 이 성당, 사실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기 전에는 이름도 몰랐던 도시에 있는 이 성당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건물은 중앙 채플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채플이 둘러서 있고 거기에서 다시 복도로 연결된 별채 개념의 채플이 나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전에 보았던 웨스터민스터 사원과 채플의 구조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각각의 채플은 장식된 연도에 큰 차이가 있어서 서로 다른 예술 양식과 건축 기법, 재료를 사용했다. 그러니까 이 거대한 성당은 한 시점에서 다양한 시대와 양식의 예술 작품을 모아 놓은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시대와 양식을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채플에는 추기경 등 당대 종교 지도자의 대리석 관이 한두 개 안치되고 관 뚜껑에는 안치된 인물의 외모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그중 놀랍도록 사실적인 안면이 조각된 관이 내 눈길을 끌었다. 설명을 들으니 조각이 아니라 사후에 석고를 떠서 부조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이라고 한다. 대부분 안치된 인물의 생전 업적이나 인품을 상징하도록 특별히 제작된 예술품과 함께 배치한 것이 흥미로워서 쓱 돌아보고 나올 수 없는 장소였다. 아,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로 알려진 콜럼버스의 시신이 긴 여행을 거쳐 최종 안치된 곳이 이곳이다. 자신을 홀대한 스페인 땅에 묻히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유언에 따라 콜럼버스의 관은 네 명의 대신이 들고 있다.

히랄다 탑은 엘리베이터 없이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 탑 꼭대기의 전망이나 종을 보는 것도 좋고, 중간중간에 창이 나 있어서 성당 꼭대기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세비야를 관광하면서 내가 몰랐던 스페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투우의 나라, 축구의 나라 등 예전의 이미지는 차치하고, 2008년 이후 높은 실업률 등 유럽에서 그리스와 함께 가장 혹독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런 정열의 나라이니 사람들 성격도 급할 것 같았고 문화재 보존이나 치안도 그다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세비야를 보면서 이런 선입견이 사실과 얼마나 멀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택시운전사에게 소매치기를 당하기는 했지만 스페인 거리에는 그 어느 곳보다 많은 경찰이 있었고, 문화재 보존 상태도 우수했다. 거리의 운전자들도 한국이나 실리콘밸리의 운전자들보다 더 성급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의 일부 거리를 제외하면 어느 공원을 가도 미국처럼 노숙자들이 차지한 곳은 없었다. 물가는 놀랍게 저렴한데 사람들은 여유 있어 보였다. 코로나로 관광길이 막힌 지난 2년 동안 관광산업이 1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모두 찌든 얼굴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손님을 맞는 주인장처럼 친절하고 넉넉하게 손님을 맞았다. 아래 사진의 점심은 세비야 대성당에서 나와 무작정 들어간 식당에서 나온 메뉴이다. 사진에 있는 모든 메뉴를 다 합쳐서 30유로 정도 되었는데 재료와 조리 상태에 흠잡을 곳이 없었다. 샌드위치 속 상추가 소스에 절여져 있지도 않았고, 빵은 토스터가 아닌 프라이팬에 구워 바삭한 촉감을 오래 유지했고, 감자도 구석이 타거나 안 익은 곳이 없고 기름이 줄줄 흐르지도 않았고 냉동 감자로 요리해 퍽퍽하지도 않았다. 바르셀로나의 한국 분식점을 제외하면 어느 음식점에 들어가서 먹어도 서비스나 음식이 실망스럽지 않았다. 스페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문화를 포용하였으며, 신대륙 개척에 앞설 만큼 부를 축척했던 나라라는 사실을 내가 잘 몰랐던 도시의, 잘 몰랐던 성당에서, 지나다니는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저녁에는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갔다. 이날 아침에 표를 예매하는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5:30 공연만 남아 있어서 구입했다. 플라멩코 공연은 주로 소규모 카페에서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숙소 부근에 플라멩코 극장이 있어서 그곳 티켓을 구입했다. 플라멩코 공연 또한 나의 기대와 예상을 벗어났다. 나는 플라멩코가 탱고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는데, 우리나라의 판소리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본 공연은 공연 시작 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촬영할 수 없었고 아래 사진의 플라멩코는 그날 저녁에 스페인 광장에서 마주친 거리 공연 모습이다. 우리가 본 공연은 의상이 더욱 화려하고 무용수가 숙련되어 보이는데 기본 형식은 비슷했다. 즉, 각 공연은 기타리스트와 보컬, 무용수 한두 명으로 구성된다. 판소리하고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창법과 추임새 때문이다. 기타리스트는 무용수의 발을 보면서 박자를 맞추어 연주를 하고 보컬이 노래하지 않을 때는 기타 연주와 무용수의 춤사위에 추임새를 넣는다. 무용수는 동작으로만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표정을 통해 희로애락을 날것 그대로 표현하고 탭댄스처럼 스텝이 타악기 역할을 한다. 스페인어를 좀 하는 딸의 말로는 공연마다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극장에서 본 플라멩코 공연은 매우 강렬해서 딸은 배워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사전 준비가 없어서 좋은 의미의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미리 예약해서 어두워졌을 때 봤더라면 더욱 깊은 감동을 받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저녁을 인근 식당에서 먹고 다시 정원을 지나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오늘은 시간이 조금 일러서 보트 타는 사람들과 분수도 볼 수 있었다. 세비야에서는 하루 더 머물고 싶지만 내일은 마드리드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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