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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May 14. 2023

굽이굽이 어려운 길목

아이를 잃은 후에는 삶의 의지가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사 년 반을 넘겨 만 오 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런 순간을 이따금 맞고 있으며, 앞으로도 때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때로는 예고 없이 그런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가장 처음 맞는 어려움은 아이가 없는 세상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그 납득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어떻게 숨을 쉬지? 어떻게 세수를 하지? 어떻게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웃고 떠들고 나면 마치 두뇌에서 처리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한 것 같은 느낌이 죄책감으로 몰려왔다. 그러고도 네가 에미냐? 이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물론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 죄책감의 근원이 얼마나 사실에 근거했는지 곱씹기도 하고, 자살과 정신문제를 다룬 책을 읽기도 하고, 현실의 삶에서 일어난 일을 과거에 비추어 재해석해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결정이 비극의 씨앗이 된 것 같아 가슴에 응어리가 되었는데,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현재의 삶에서 반복될 때가 있다.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간절히 되뇌며 다시 내린 최선의 결정이 과거와 같은 결정임을 아는 순간 죄책감에서 풀려나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모두 내 잘못이라는 정죄가 무섭게 몰려드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듯하다.


첫 일 년 간은 내가 종신형을 언도받은 죄수로 수감생활을 하는 마음으로 보냈다. 죄책감이 고개를 들면 수감생활이라도 할 수 없게 되므로 아무 생각 없이 현재 눈앞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을 했다. 뜨개질을 했고, TV를 봤고, 옛날이야기를 읽었고, 이력서를 썼고, 그림을 그렸다. 이력서는 취업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걸 알고 한 일이었으며 나의 과거를 되짚어 보는 일이었다. 결심 비슷한 것을 했다면 내 마음에 어둠을 들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마음은 비어있을 수 없으므로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는 어둠이 들어온다고 했다. 정말 오랜만에 신에게 한 기도는, 내 마음에 어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그것이 신의 뜻이었는지 신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아이 생일은 매년 힘들다. 어쩌면 기일보다 더 힘들다. 기일은 슬픈 날이 당연하지만 생일은 기뻐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2주년이 가장 힘들었고 3주년에는 조금 나아졌지만 4주년에 더 나아지지는 않았다. 10년이 지나면 조금 더 나아질까 모르겠다. 나의 심리치료사는 아이 생일이나 기일에 아이를 기억할 수 있는 작은 가족 의식을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처음 1, 2년은 가족이 각자 작은 쪽지에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몇 줄 써서 병에 담아두었다. 그런데 이 일이 마음을 너무 무겁게 하다 보니 다시 반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온 가족이 각자 자기 방에서 쪽지를 쓰는 우울한 분위기가 내키지 않았다. 그다음부터는 납골당에 가서 실컷 울고 평소보다 조금 조용하게 보낼 뿐이다. 지금은, 아직은,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들과 즐겨하던, 좋아하던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 아이가 회를 좋아했는데 일식집에도 한동안 가지 못했다. 네 식구가 하던 일을 세 식구가 되어하는 것은 무엇이든 힘들었다. 네 식구일 때 가장 좋아하던 일이 캠핑이었는데 그 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올여름에 예약을 해두었는데 갈 수 있을지 아직도 확신이 없다.


올해는 딸이 아들이 떠난 나이와 같은 나이가 되는 해이다.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시간을 무겁게 헤치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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