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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Apr 29. 2020

유럽 여행 - 카타쿰, 트레비분수

2016년 6월 23일

엠마뉴엘 2세 기념관에서 15분쯤 걸어서 게토에 도착했다. 로마의 게토는 기원 전부터 유태인들이 모여살기 시작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태인 거주지구라고 한다. 이 오래된 동네에는 먹을 만한 음식을 내오는 음식점이 꽤 많은 것 같았다. 꼬불꼬불한 골목길 끝에서 가이드가 소개해 준 음식점을 찾았는데, 하필이면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주위에 손님이 바글거리는 음식점으로 들어갈까 하는 유혹을 받았지만 그냥 여기에서 먹기로 했다.  


게토에서는 아티초크 요리가 주특기인 것 같았다. 아티초크 튀김을 전식으로 하고, 메뉴에 있는 요리 이것저것 시켰는데 역시 유혹을 이긴 보람이 있었다. 요리들이 모두 맛있었고, 특히 맥주는 정말 시원하고 청량하여 입안에 남는 잡맛이 하나도 없었다. 추가로 주문을 하려고 식당 안에 있던 아무 웨이터나 불러서 주문을 했는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우리 주문을 받았던 웨이터에게 달려가서 우리 테이블로 보냈다. 그들의 대화를 전혀 못 알아들었지만 너무 익숙한 표정, 익숙한 장면인데? 미국 사람이 나한테 뭐라 그러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을 때 내 표정이 저렇겠구나. 참고로 떠나기 전날에도 이곳에 들러 저녁을 했는데 그때는 사람이 많았다.  


게토에서 식사 후 다시 콜로세움 부근으로 돌아와 카타쿰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가 카타쿰에 버스 타고 갈 거라고 하자 가이드가 택시를 타고 가라고 권했었는데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구글에 없는 폭탄이 두 개나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폭탄. 버스는 공식적으로 30분마다 한 대씩 오기로 되어 있다. 로마의 버스 정류장에는 친절하게 버스 대기 시간이 표시된다. 20분이면 온다고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시간은 점점 늘어나 40분이 되더니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결국 1시간 40분이 지난 다음에 터져나갈 듯 붐비는 버스가 왔다. 젊은 시절 그토록 미워했던 그 만원 버스였다. 그래도 다시 1시간 40분을 기다릴 수 없어서 그냥 타고 갔다. 한 20분만 가면 되니까. 20분 가려고 1시간 40분 기다렸군.


두 번째 폭탄. 시내에서 카타쿰 쪽으로 향하면서 인도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 이상하긴 했다. 그런데 카타쿰 앞에는 도로와 카타쿰 입구 사이에 인도가 아예 없었다. 남편이 구글 지도를 미리 봐두지 않았다면 내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좁은 2차선 도로에서 카타쿰을 둘러싼 벽까지는 1피트 가량의 흙 가장자리가 전부였다. 버스에서 내리다가 벽에 부딪힐까 무서울 정도였다. 거기에서 내려서 오는 차를 조심하면서 거의 쪽문에


카타쿰 문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카타쿰은 2세기 경부터 형성된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하 무덤이다. 이곳은 도착하는 대로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1시간마다 각 언어별로 안내하는 신부님을 따라 일행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예전에 카타쿰 안에서 길을 잃어 관광객이 사망하는 사고가 난 다음부터 이렇게 바뀌었다고 한다. 안내를 맡은 신부님은 아프리카인으로 그날 처음으로 안내를 해본다고 했다. 말이 매우 느려서 아이들은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같다고 킥킥 댔다. 사실 표정도 좀 비슷했다. 입장 전 간단한 설명을 듣고 신부님을 따라 카타쿰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는 정말 추울 정도로 시원했고, 우리끼리 왔으면 찾아나갈 가능성이 정말 없었겠구나 할 만큼 미로였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은근히 기대했던 해골 같은 것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 볼 수 없었지만 2천년 전의 차가운 무덤 속을 걷는 느낌은 으스스하기보다 묘했다.


카타쿰 관광을 마치고 다시 그 인도 없는 길에서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오후 4시 서쪽으로 기울기 전 가장 성질 사나운 햇살 아래에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벽에 바짝 붙어서며 30분 넘게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왔다. 호텔로 돌아와서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뒹굴다가 저녁에 호텔 옆에서 버거킹을 먹었다. 전 세계 어디나 와퍼 맛은 똑같군. 버거킹으로 기운 차린 뒤 트레비 분수로 갔다. 낮보다 사람이 더 바글거렸다. 그래도 씩씩하게 분수 앞에서 동전 한 번 던지고, 거리에 사람들이 잦아들 때까지 로마의 밤거리를 걷다가 집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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