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집으로 이사 들어온 지 두 달이 넘었다. 1955년에 건축한 후 집 한쪽 외벽에 공간을 더 내어 실내를 확장한 것 말고는 냉난방 공조장치 등 현대식 개축을 하지 않은 집이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에 살던 세입자는 멕시칸 모녀인데 12년 간 놀이방을 운영했다고 한다. 붙박이 책장이나 싱크대 서랍 등에 스페인어 라벨이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천장에 전등과 콘센트를 연결하는 꼬질꼬질한 전기선이 천장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런 집에 도대체 왜 월세를 들어오는지 궁금할 것 같다. 그건 집 외벽에 덧붙여 확장해 놓은 공간에 끌렸기 때문이다. 책상 두 개와 커다란 식탁(현실은 작업대), 피아노를 놓을 만큼 공간이 널찍한 데다가 짱짱한 수납공간이 세 개나 있어서 그림과 미술 도구 수납이 해결되겠다는 판단이 서자 이 집은 나를 위해 이곳에 존재하는 집이라고 덜컥 믿게 되었다.
이사는 만만치 않았다. 새집이 기존 집의 딱 절반 크기이므로 이삿짐을 싸고 풀면서 꽤 머리를 굴려야 했다. 무엇을 버리고 간직할 지를 정해야 했고, 어떤 물건이 이사 직전까지 필요할지를 가려야 하는 등 끊임없는 결정의 연속이었다.
결혼 후 열네 번의 이사 경험으로 터득한 요령이 있다면 장식품부터 싸기 시작하는 거다. 피아노 위의 작은 세라믹 조각품들을 뽁뽁이 비닐로 감싸고, 구석에 세워둔 장식용 화병도 조심조심 포장했다. 장식품은 흠집이 생기면 복구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꼼꼼하게 포장해야 마음이 놓였다.
한 반나절 짐을 싸다가 문득 집안을 둘러보았다.
쓸모없는 물건이 자취를 감춘 공간이 휑하고 낯설었다.
물건의 가짓수가 줄었으면 홀가분하고 가벼워 보여야 할 텐데 오히려 어수선해 보였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표정을 더해주던 존재가 공간에서 사라지자 혼돈이 찾아온 것 같았다.
나는 장식품을 박스에 넣던 일을 멈추었다.
이삿짐을 효율적으로 싸려면, 장식품을 모두 싼 다음에 사용 빈도가 낮은 것에서 높은 물건으로 넘어가는 것이 맞겠지만, 일부 장식품은 마지막까지 남겨두기로 했다.
이사 나가는 날까지 집다운 공간에 머물고 싶어서였다.
이삿짐을 새집으로 모두 들인 뒤에는 집의 마감재들을 손보았다.
더께가 앉은 문짝 표면은 수세미로 문지른 뒤 목재 광택제를 헝겊에 묻혀 닦아주고, 벌어진 마감재 사이의 틈새는 재료에 따라 코킹 재료나 우드 퍼티로 메웠다. 낡은 커튼을 떼고 공간에 어울리는 블라인드를 달았다. 누렇게 변한 조명은 모던한 디자인의 조명으로 교체했다. 벽에 좋아하는 그림을 걸고 이런저런 장식품을 집안에 어울릴 만한 곳에 놓아두었다. 비로소 공간이 나를 반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좋아하는 입체 액자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창밖을 내다보기 좋아하는 우리 집 반려견 테디를 주인공으로 만든 손바닥만 한 작품이다. 다이소에서 구입한 나무 상자에 수채화로 실내 배경을 그려서 붙이고 폴리 필름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테디를 붙여서 만들었는데 생소한 재료를 어떻게 이용할지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며칠 전 차고에 쌓아둔 박스에서 그 액자를 찾으니까 몹시 반가웠다.
이번 이사를 하면서 쓸모없다고 가장 먼저 이삿짐에 들어가서 가장 나중에 나오는 물건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