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준 선물
아들이 두고 간 생각의 조각들
Sarah, Plain and Tall(평범하고 키가 큰 세라, 패트리샤 맥라클랜 지음)은 아들이 미국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나에게 권해 준 책이다. 19세기말 미국 평원 지대에 남매 애나와 케일럽은 엄마를 잃은 뒤 아빠와 함께 산다. 어느 날 아빠는 신문에 ‘신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고, 메인 주에 사는 세라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세라는 자신을 “평범하고 키가 큰 여자(plain and tall)”라고 소개하며, 바다 냄새 나는 고향을 떠나 평원으로 오기로 한다. 평원에서 세 식구와 함께 지내던 세라는 광활한 들판의 고요함과 바다를 그리워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아이들은 세라가 떠날까 봐 걱정하지만, 결국 아이들 곁에 남아서 따뜻한 엄마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1986년에 뉴베리메달을 수상했다. 뉴베리메달 수상작들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어린이문학상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책들은 아니다. 미국이 세계를 주름잡는 시대의 발랄한 이야기들보다는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배경으로 하거나 역경을 극복하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어서이다. 그런데 아들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후에도 아들이 권해준 책에는 가난한 동네 아이들, 차별을 겪는 흑인 가족, 남보다 작거나 불리한 신체 조건을 가진 주인공 등의 애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들은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평범한 또래 아이들과 달리 아프고 따뜻한 삶의 이면을 볼 줄 알았다.
"엄마에게 고운 이야기를 많이 소개해줘서 고마워."
따뜻한 정성이 키워 낸 작은 생명
할로윈 날 교회 행사에서 아들이 새끼손가락 만한 붕어를 받아왔다. 색깔도 평범하고 지느러미도 단순하게 생겨서 금붕어라고 하기에는 볼품없는 붕어를 밥공기 만한 어항에 넣었다. 붕어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살아 있었다. 언제 헤어질지 몰라서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지만 아들은 매일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었다. 며칠 후에는 1갤런 탱크로 옮기고 이 붕어를 그냥 "피시"라고 부르기로 했다. 피시가 무럭무럭 자라서 10갤런 탱크로, 35갤런 탱크로, 50 갤런 탱크로 옮기는 동안, 아들은 매주 피시탱크를 청소하고 물을 갈아주었다. 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어른 손바닥만큼 자란 피시를 보고, 우리 집에 온 손님들에게 밥상에 올리는 조기가 아니냐고 농담을 하곤 했다. 아들이 떠나고 몇 달 더 기르다가 피시탱크를 가지고 이사를 갈 수 없어서 고민 끝에 연못용 관상어를 취급하는 가게에 갖다주었다. 어느 집 연못에서 자유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기를...
자의적 분류에 대한 항의와 소외된 것에 대한 연민
우리가 네 식구였을 때 살던 집에는 아담한 뒷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었다. 마당 관리는 아들의 일이었다.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허브와 나무는 정성껏 돌보아서 토마토를 2미터가 넘게 키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잔디 돌보기에는 소홀할 때가 종종 있었다. 잔디를 제때 깎아주지 않으면 해를 못 받아서 잔디 밑동이 누렇게 죽어가기도 했다. 환경이 좋건 나쁘건 마당에 살아남는 건 생명력이 질긴 잡초들이었다. 내가 잡초를 뽑으려고 하면 아들은 질색을 했다.
"얘를 왜 뽑아요?"
- 이건 잡초니까.
"잡초라는 건 누가 정한 건대요?"
- 뭐 누가 정한 건지 모르겠는데, 잔디가 자라야 할 곳에 잔디가 아닌 게 자라니까 잡초라고 하는 거지.
"얘도 여기 오고 싶어 온 게 아니잖아요. 여기에서 잘 살고 있는 걸 뽑아 버리면 어떡해!"
시무룩해져서 집으로 들어가는 아들이 떠올라, 오늘도 잡초를 뽑으려다 말고 멈칫한다.
세상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새로운 도구
아들이 떠난 뒤 1년쯤 지나서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곧 그림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빛의 농간이었다. 초록임을 의심치 않았던 이파리에 빛이 비칠 때 이파리는 더 이상 초록이 아니다. 이파리 위에 나뭇가지가 드리워 빛을 막아도 이파리는 초록이 아니다. 이파리뿐일까? 산과 들판, 실내 공간, 꽃과 과일, 물컵, 그 어느 것 하나 빛을 떠나서 제 색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가장 먼저 창조된 것이 빛이며, 신약에서도 신의 본질을 빛이라고 말한다. 과학적 시각에서 빛은 에너지를 가진 전자기파이라고 하지만, 궁극적으로 에너지와 존재의 시작이며, 세상을 있게 하는 근원이라는 점에서 기독교의 시각과 맞닿아 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의 눈은 가시적인 세상을, 점선면, 형태, 명암, 질감, 색채 등으로 인식하는데, 결국 이 모든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빛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림이 세상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새로운 도구가 된 셈이다. 말이나 글에서는 유창성이 부족하여 늘 답답함을 느끼다가 그림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만난 뒤에는 마음껏 날아다니는 생각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선한 신이, 내 아들의 마지막 순간에 따뜻하게 안아주었으며, 내가 이 세상을 떴을 때 아들과 다시 만나게 해 줄 거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