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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Apr 29. 2020

유럽 여행-영국

2016년 6월 13일

6/13 월요일


 웨스트민스터 사원.


원래는 수도원과 성공회 사원을 겸하도록 건축되었지만, 수도원 기능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현재는 주요 왕족과 시대를 뒤바꾼 인물들의 무덤과 왕족의 대관식 장소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내부 사진 촬영이 전면 금지되어 있고 오디어 투어가 무료이다. 우리는 오디오 투어 대신 성공회 사제가 직접 이끄는 투어를 신청했다. 1인당 £5정도이며,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다.


사제라고 하여 당연히 점잖은 신부님이 오실 줄 알았는데 뜻밖에 어깨가 떡 벌어진 씩씩한 여자분이었다. 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proper British accent' 즉 표준 영국 영어로 간간히 농담을 섞어 우렁차게 투어를 진행했다. 아직 그곳에서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올리는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투어를 하는 동안에도 매시간 기도 제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려퍼졌고, 사람들은 일제히 분주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기도에 동참했다.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인 것 같았다. 덕분에 촬영 하느라 산만해지지 않고 사제분의 설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실 못 알아들은 말이 더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거의 천 년동안 거대한 공간을 떠받치고 있는 끝도 없는 고딕 아치들을 올려다 보고, 인간 역사에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무덤 사이를 지나다니는 일은 과히 감동적이었다. 사제 투어를 신청하면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개방되지 않는 공간에도 들어갈 수 있다. 성당 성가대 석에도 앉아보고, 역사적 회의가 열렸던 공간과 가장 오래된 무덤 뒤쪽 밀실에도 들어가 보면서 그 장소에서 벌어졌을 역사적 순간들을 마음대로 상상해 보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성당 입구쪽에 있었던 창조론에 정면배치되는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의 무덤, 신이 더이상 인간 세계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과학자 뉴턴의 무덤이었다. 성경의 일점일획이라도 다르게 해석하면 이단으로 몰아부치는 독선적인 기독교의 모습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생긴 무덤은 1차 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전사한 한 이름 모를 영국 병사의 무덤이었다. 전쟁의 참혹함, 국가를 지킨 한 병사의 희생에 대한 영국인들의 존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투어 말미에 대관식 의자 밑에 놓여 있었던 돌을 놓고 벌어졌던 스코트랜드와의 어처구니 없는 다툼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뜻밖에 바이런과 세익스피어를 비롯한 영국의 문학가들을 기리는 공간도 멋지게 장식되어 있어서 부럽기도 했다.  


 오전 투어를 마치고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3코스가 1인당 30파운드 약간 안 됐던 것 같은데 만족스러웠다. 나머지 공간을 좀더 둘러보고,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공간에서 사진도 몇 장 찍고 일정을 마쳤다.

누군가 급히 영국 출장을 왔다가 꼭 한 곳을 들를 시간이 된다면, 바로 이곳에 들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6/13 저녁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런던 뮤지컬이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 저렴하다고 하여 런던에 왔던 김에 뮤지컬 한편을 보러 갔다.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라는 지역에 뮤지컬 극장이 모여 있는데 건물이나 과거와 현대가 만나는 거리의 번화한 느낌까지 뉴욕 브로드웨이와 무척 흡사한 지역이었다.  


 우리가 관람한 <오페라의 유령>은 여러 개의 뮤지컬 극장 가운데 여왕 폐하 극장 (Her Majesty Theatre>에서 상연되고 있었다. 작고 낡은 극장이었는데 그나마 외관 공사 중이었고, 대기실 구조나 관람석 등이 불편했다. 대기실에서까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고. 그래도 100년 넘게 역사적인 공연들을 무대에 올린 곳이라니 그것으로 의의를 삼는 수밖에.


 사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나온 뒤 다른 가족들이 숙소에 돌아가 저녁 공연 전까지 눈을 좀 붙이는 동안 나는 National Gallery를 관람한 터라 어둑어둑한 무대를 보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익숙한 공연이어서 놓치고 말고 하는 부분도 없이 일관성 있게 졸았다. 공연 자체는 런던 뮤지컬의 수준에 걸맞는 훌륭한 공연이었다. 여주인공 크리스틴 역만 빼면. 그냥 눈꺼풀은 간혹 감겼지만 귀는 열려있었다고 우겨보고 싶다. 유령 역은 내가 들은 오페라의 유령 중 가장 훌륭한 측에 속했다. 아이들은 감동을 받은 얼굴이었고, 딸은 크리스틴이 유령을 떠날 때 무척 분개해하고 슬퍼했다. 노래도 못하더니 배신까지 한다고..  


 공연을 마치고 나오니 해가 거의 넘어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밤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에 휩싸여 피카딜리 서커스 일대를 걷다가 11시를 훌쩍 넘겨 숙소로 돌아갔다.


 참고로 낮잠을 포기하고 National Gallery를 찾아간 것은 Vermeer를 비롯한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미술관에서도 만날 기회가 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콜렉션이 이곳에 많았다. 무료이고. 미술관 맵 $1.5 도네이션인데 잔돈이 없어 좀 단위가 큰 지폐를 내밀었더니 그냥 가져가고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하란다. 덕분에 도네이션 공식 면제 받고 마음 편하게 좋아하는 그림을 즐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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