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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Apr 29. 2020

유럽 여행 - 영국 대영박물관

2016년 6월 14일

대영박물관은 우리 숙소에서 도보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어서 박물관 개관 시간에 맞춰 출근객들 틈에서 씩씩하게 걸어갔다. 무료라서 사람이 엄청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 엄청난 전시관에서 우리가 보고 싶었던 전시는 고대 앗시리아와 이집트 관이었다. 이 박물관 말고도 여행 중에 루브르박물관과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므로 겹치지 않게 관심있는 전시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디오 가이드나 투아 가이드 없이 나름대로 천천히 설명을 읽어가며 돌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전시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로제타 스톤과 고대 앗시리아관의 사자 사냥 부조를 꼽겠다.


로제타 스톤은 워낙 잘 알려진 유물이어서 지나치듯 사진을 본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기원전 2세기에 톨레미 왕의 칙령을 세 가지 언어로 기록해 놓았다는 이 비석은 2300년이 흐른 지금 그 당시의 발전된 언어와 절차, 석조 기술, 왕의 권력을 잡음없이 재생하고 있었다. 이 전시 주변만큼은 사람이 북적거리지만 조금만 버티고 있으면 바로 앞에서 관람할 기회가 오니까 포기하지 말고 꼭 보고 오라고 권하고 싶다.


사자 사냥 부조는 고대 앗시리아 왕족의 사자 사냥 장면을 정교하게 판각한 일종의 기록 문서라고 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3000년 전에 새겨진 것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할 뿐 아니라 한 장면 장면이 당시 사건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사냥을 위해 사자를 우리에서 풀어주는 장면,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사자의 표정, 사냥하는 사내들의 불거진 근육, 작은 글씨와 패턴이 현실적으로 새겨진 사람들의 의복 등은 모두 세심한 기획, 제작, 편집의 결과로 보였다.  


영국이 세계를 휘젓던 시절에 중동에서 참 많이도 훔쳐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전쟁터가 되는 지역에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모두 잿더미가 될 뻔했으니 그 잘잘못에 대한 평가는 내몫이 아닌 것 같다.


오전 내내 이집트와 중동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한 점심을 한 뒤 아시아 쪽 전시를 보고 싶었다. 한국 전시 중에서 한 곳은 폐쇄되고 한 곳이 남아있었는데 도자기와 서당채를 비롯한 몇 가지가 전시되어 있어서 휙 돌아보았다. 일본 전시관은 제법 컸다. 그곳에서 본 설명 중, 세계 2차 대전에서 일본이 서방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중국을 지켜냈다는 투의 설명과(정확한 구절은 잊어버렸다), 일본이 한국을 침공하면서 한국에서 문화를 들여와서 일본 문화가 풍성해졌다는 설명이 내 눈에 꽂혔다. 자기 정당화로 주변을 끌어안는 척하면서 슬쩍 대장으로 나서려는 얄팍한 수가 일본다웠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그 동안 비가 왔었는지 바깥이 흠뻑 젖은 세상 위로 파란 하늘이 나오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무슨 전시가 가장 인상 깊었냐고 물었다. 한국관이란다. 시간이나 전시 면에서 총 관람의 10%도 되지 않았을 텐데. 피는 못 속이나보다.



오후


다음 날이면 런던을 떠날 텐데 못 가본 곳이 너무 많았다. 아쉬운 마음에 템즈 강변으로 향했다. 다행히 마지막 날이라고 날씨가 좀 봐주는 것 같았다.  


템즈 강 주변에는 빅벤과 타워 브릿지를 비롯한 랜드 마크들이 늘어서 있는데 수상 버스는 한국 지하철 타듯 교통 카드를 찍고 타면 된다. 요금은 편도가 6~7파운드 정도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빅벤 부근에서 출발하는 수상 버스를 타고 타워브릿지까지 갔다가 빅벤으로 다시 돌아와서 다우닝 가를 거쳐 버킹검 궁전까지 걸어갔다.


빅벤 아래 도로는 차도 폭을 반쯤 막고 보호선을 쳐놓은 부분이 있었다. 아마 빅벤 아래에서 사진 찍다가 차에 치여 죽은 사람이 여럿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빅벤에서 강변 쪽으로 내려가면 런던 아이라는 대형 패리스 휠이 있는데 대규모 맥도널드 매장이나 주변 분위기가 미국 해변에서 흔히 보는 보드워크와 매우 흡사하였다. 우리가 여행 준비할 때 바이블로 삼았던 릭 스티브 여행 서적에서는 런던 아이를 굳이 추천하지 않았는데 패리스 휠을 타고 올라가서 보아야 할 만큼 높은 건축물이 런던에 없으므로, 비싼 돈 내고 줄 서서 봐야 할 만한 가치는 없다는 이유였다. 역시 패스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보트도 타고,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건물 주변을 걸으면서 과거와 현재와 어우러지고 있는 런던의 모습을 즐겼다. 아이스크림 입에 물고서.


 무장한 경찰이 곳곳을 감시하고 있는 다우닝 가나 버킹검으로 향하는 여러 개의 공원들은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한가했다. 왕족들이 한때 사냥터로 썼다는 공원들은 지금은 런던 시민의 휴식처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어둠에 숨기 시작한 버킹검 궁전 주변에서 한가하게 걸으면서 근위대 교대식을 못 본 아쉬움을 달랬다. 런던 공식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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