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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Apr 29. 2020

유럽 여행 - 런던에서 암스텔담으로

2016년 6월 15일

아침을 양껏 먹고 암스텔담으로 가기 위해 게트윅 공항으로 향했다. 기차로도 3시간 남짓한 거리인데 굳이 게트윅 공항에서 항공편을 이용하기로 한 것은 가격이 싸서였다.  게트윜 공항은 런던 시내에서 게트윅 익스프레스라는 기차로 1시간이나 떨어져 있어서 내심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기차를 타보니 비용을 아끼는 것만 장점은 아니었다. 런던 외곽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런던과는 사뭇 다른 여유로운 마을 풍경과 자연 경관을 즐기면서 게트윅에 다달았다.  


참고로 게트윅 공항이 런던에서 멀고 히드로 공항보다 유명세가 덜하다고 해서 작은 공항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남쪽 터미널과 북쪽 터미널 사이가 상당히 멀므로 터미널을 잘 확인하고 탑승 시간을 넉넉히 잡고 출발하여야 한다. 또한 면세점들이 어느 공항보다도 화려하게 들어서 있어서 쇼핑을 좋아한다면 혹시 일찍 도착하더라도 시간 떼우기는 어렵지 않다. 단, 탑승 수속 전 보안 검사에서 처음으로 '삑' 소리가 나는 경험을 했다. 미국 공항에서는 아무 일이 없었던 35g 짜리 튜브 고추장이었다.


"아, 로션이군요. 그럼 지퍼백에 넣었어야지요. (Oh, cream. It should have been stored in a zipper bag.)"


보안 직원은 이렇게 말하고 고추장을 친절하게 샴푸와 비누를 넣은 지퍼백에 넣어주었다.


1시간 30분 비행으로 암스텔담 공항에 도착했다. 미국에 온 뒤 처음으로 여행하는 비영어권 국가이다. 공항 로비는 곧바로 북적거리는 쇼핑몰로 연결이 되었고, 생소한 교통 티켓 장치들이 눈에 띄었다. 공항 건물을 막 나설 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네 사람?(Four?)" 했다. 단정한 용모에 양복을 입고 공식적으로 보이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호객 행위를 하는 택시 회사 직원 같았다. 어차피 택시를 타려고 했으므로 그렇다고 했다. 그 남자는 택시 타는 데가 다른 쪽에 있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조금 따라가다가 당신이 운전할 거냐고 묻자, 자기는 호스트이고 기사가 다른 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매우 빠른 걸음으로 한참 따라가고 있었는데 뒷쪽에서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막 쫓아왔다.


"저 사람은 허가받은 택시 운전사가 아니에요!"


이럴 수가! 가장 꽁무니에 따라가던 나는 정신이 번쩍 나서 앞에 가는 남편을 잡고 싶었지만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에게 앞에 가는 사람이 내 남편이니 빨리 가서 알려주라고 했다. 공항 직원들이 달려가서 남편을 멈추었고, 무허가 택시 운전사는 재수없다는 얼굴로 조용히 물러섰다. 공항 직원들은 우리는 허가 받은 택시 탑승 장소로 안내해 주며, 저렇게 승객들을 꼬셔가는 무허가 택시 업체들이 많다고 했다. 누가 운전하게 될 지도, 요금이 얼마 나올지 모른다고. 택시 탑승 장소에서 우리를 태운 차는 테슬라였다. 고장이 잦아 소비자 보고서에서 온갖 악평을 받으면서도 다시 구매하고 싶은 차 1위로 꼽히는 차답게 승차감이 예술이었다. 그리고 내릴 때 요금을 지불하며, 어떻게 그 비싼 테슬라를 택시로 몰 수 있는지, 왜 공항(어쩌면 택시회사) 직원들이 기를 쓰고 우리를 무허가 택시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20분 남짓 달리고 우리가 낸 요금은 45유로였다!



암스텔담에서 우리가 묵기로 한 곳은 뮤지엄 디스트릭에 있었다. 고흐 뮤지엄, 중앙 수로, 알버트 코이프 마켓을 비롯하여 우리가 방문하기로 계획한 곳을 모두 걸어갈 수 있었고, 바로 앞에 트램 정거장이 있었다. 깔끔한 동네 인상과 행인들의 차림으로 보아 안전한 중산층 주거지역처럼 보였다.  

숙소는 AirB&B를 통해 예약을 했는데, 집앞에서 우리를 맞기로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짐을 내려주고 택시는 떠났고, 우리는 여행 가방 옆에서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길을 지나던 말쑥한 젊은 아저씨가 "뭐 도와드릴 것 있어요?" 물었다. 마침 전화벨이 울려 괜찮다고 했지만, 고마웠다. 우린 그 전화벨이 숙소 호스트의 전화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전화가 잘 안 들리는듯 이름을 되풀이 하여 말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맞기로 했던 호스트의 큰 아들이 왔다. 이름은 바스였다. 우리가 묵는 기간 동안 호스트가 뉴욕으로 여행을 가는 관계로, 호스트의 큰 아들이 일처리를 맡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네 아빠 같다면서 남편이 바스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바스는 전화를 받아들었지만 역시 잘 안 들리는지 계속 뭔가 묻고 답하고 했다. 5분 넘게 통화를 한 뒤, 우리에게 전화기를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아빠 아닌데요, 잘못 걸려온 전화 같아요."

농담 속에만 있던 분을 직접 만나다니...


우리를 기다리면서 이것저것 확인하다가 쓰레기 봉투가 모자랄 것 같아 가지러 갔었다고 했다. 집안은 넓지는 않았지만 환하고 감각있게 장식되어 있었다. 새로 개조한 욕실도 세련되고 편리했고, 집안 곳곳에는 손때로 반들반들해진 잘 만든 가구들이 공간을 살려주고 있었다. 바스는 완벽한 "아메리칸 잉글리쉬"로 친절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설명해 주었다. 런던에서 기차로 3시간 떨어졌는데 영국식 영어가 아닌 미국식 영어를 구사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짐을 풀고 침대에서 딩굴거리다가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출발 전 호스트가 소개해진 식당 가운데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코너 베이커리라는 동네 식당이었다. 통상 식사 시간이 아니라 한산했다. 샌디위치랑 샐러드 등 간단한 메뉴 이것저것 시켰던 것 같은데 푸드 프리젠테이션이나 음식 맛 모두 기대이상이었다. 바삭해야 할 것은 바삭했고, 살짝 익혀야 할 것은 살짝 익혔고, 재료는 모두 밋밋하지 않은 제맛을 내고 있었다. 식사를 즐기고 있을 때, 직원들끼리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다면서 우리에게도 카푸치노를 한 잔 내왔다. 진한 커피 향과 풍부한 거품 위에 귀여운 곰돌이로 모양을 내서. 암스테르담에서 더치 페이의 원조들답게 깍쟁이 같은 사람들만 만날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의외였다.  


 식사 후 중앙 수로로 슬슬 걸어나갔다. 암스텔담 거리의 주인공은 자전거인 듯 하도 쌩쌩 달리고, 신호등이 있는 도로도 거의 없어서 처음에는 도로에 내려서기가 무서웠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고흐 뮤지엄 앞을 비롯해 곳곳에 티켓 파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수로 크루즈 티켓을 샀다. 크루즈에 한국어 설명이 있어서 참 반가웠다. 단, 조금 더 재미있게 설명하면 좋았을 텐데 동물의 왕국 아저씨 비슷한 말투였다. 런던에서 먼길을 와서 저녁까지 먹고 흔들거리는 크루즈를 타고 동물의 왕국 같은 해설을 들으니...뭐 뻔하지. 졸렸다. 밖에는 잔뜩 찌푸려서 어두침침하고 비가 오락가락 하고... 그래도 처음 보는 수로 광경을 감상하느라 많이 졸지는 않았다.  


 저녁을 너무 일찍 먹은 데다가 많이 걷고 크루즈까지 탔더니 출출했다. 고흐 뮤지엄 근처에 있는 AH (Albert Heijn) 수퍼마켓에 들렸다.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가 많고, 신선한 편인데, 일회용품의 종류와 물량은 놀랍게도 별로 없었다. 이것저것 사들고 들어와서 야참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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