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벗 May 20. 2020

오리 엄마가 된 사연

쇼핑백에 들어있던 오리알에서 오리가 나왔어요

"어제 누가 오리알을 대문 앞에 몰래 가져다주었어요. 알에서 오리가 나올까요?"


지난 부활절, 유진 님이 카톡방에 올린 톡은 생뚱맞고 신기했습니다. 며칠 후, 오리알에 변화가 나타난다는 소식이 올라왔고, 그로부터 다시 며칠 후에는 갓 알에서 나온 축축하고 나약한 생명체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곧바로 이름도 생겼답니다. 오그리.

요즘은 까만 눈동자로 엄마(유진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종종거리며 따라다니는 모습이 올라오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카톡방에 있는 사람들은 오그리 소식만 기다립니다. 모두 일상을 박탈당하고 자연을 잊고 지내는 요즘, 오그리는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들려주려고 누군가 보낸 천사 같기도 합니다. 우리만 알기는 너무 소중한 경험이기에 유진님께 부탁드려서 이 이야기를 여러분께도 들려드립니다. 



글: 임유진, 정리: 글벗


부활절에 누가 집 앞에 오리알 여섯 개를 룰루레몬 쇼핑백에 넣어서 쪽지와 함께 집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Happy Easter! My duck laid a few extra sanitized eggs. And I thought you could have use for them. Take care(기쁜 부활절이에요! 우리 오리가 알을 좀 많이 낳았어요. 알은 소독된 거예요. 잘 쓰셨으면 좋겠어요. 안녕)"


딸 아니카가 발견했는데 저희는 그것을 먹을지, 아니면 달리 어떻게 해야 될지 난감하였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위생에 대해 불안한 시기이어서 그 알도 정말 깨끗한 것인지 걱정되었습니다. '먹기에는 찜찜하니 버려야 하나' 하고요. 아니카가 알을 돌보아서 부화시켜 보겠다고 우겼을 때, 저는 거기서 오리가 나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카는 옛날에 쓰던 어항을 깨끗이 닦아 밑에 흙을 깔고 알 여섯 개를 올려놓고 온도계와 전구를 달아 화씨 90도를 유지할 수 있게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알에 각각 번호를 써서 전구의 열이 각 알에 골고루 미칠 수 있도록 돌려가면서 돌보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팬더믹으로 인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황에서 안전에 대한 불안이 늘어났다고 할까요? 아직도 오리알을 누가 갖다 놨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슈퍼마켓에서 보는 달걀과 비슷하여 '먹어도 안전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했던 오리알은 그렇게 희미한 생명의 가능성을 품고 우리 집에 들어왔습니다. 딸 아니카는 혼자서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하여 적정 온도와 관리법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알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카는 그날 이후 저녁마다 성장을 체크하였습니다. 세 개는 시간이 가도 아예 핏줄이 나타나지 않고, 다른 세 알에는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그중 한 개는 성장이 멈추었고, 두 개는 계속 변화를 보이다가 나중에는 나머지 한 개도 성장이 멈추고 단 한 개만 계속 자라고 있었습니다. 부화 며칠 전에는 플래시로 비쳤을 때 알 속에 몸도 보였습니다. 남은 알이 인큐베이터에 있었던 기간은 총 28일입니다.


5월 8일 밤 11시쯤, 알을 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리가 부리로 쪼는 모습을 보러 식구가 모두 인큐베이터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부리로 쪼아서 알에서 나오려면 24시간이 걸린다고 인터넷에 나와 있었습니다. 늦은 밤이라 일단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니카가 기쁜 목소리로 오리가 나왔다며 나와 보라고 방문을 두들겼습니다. 알 옆에는 밤사이 혼자 알을 깨고 나온 아기 오리가 있었어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12시간 만에 나온 겁니다. 오그리의 생일이 5월 9일이어서 '오그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당장 음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것은 모두 준비해두고 싶어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문을 연 가축 전문점을 찾아 엘카혼까지 달려가 영양이 풍부한 오리용 사료를 사 왔습니다. 형제도, 엄마도 없이 혼자 알을 깨고 나온 오그리가 너무나 안쓰러웠지만 오그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귀엽고 생명이 넘칠 수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오그리는 굉장히 특별한 생명의 신비 그 자체입니다. 태어난 지 이틀째 되는 날부터 가끔 밖에서 산책을 시켜 주었는데 나를 엄마로 알고 열심히 따라오는 모습이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가족 모두 오그리의 귀여운 모습에 열광할 정도이죠. 


오리는 처음 본 것을 엄마로 안다고 하는데 오그리는 모든 사람을 좋아합니다. 아마 태어나자마자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가족으로 아는 것 같습니다. 아직 어항을 개조하여 만든 인큐베이터에서 지내는데 곁에 사람이 없으면 계속 웁니다. 그러다가도 사람이 보이면 금세 그치고 열심히 놀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산책시켜주고 함께 놀아줍니다. 물론 똥도 자주 치워 주어야 하고요.


오그리가 더 크면 지낼 수 있도록 남편은 집 한편에 오그리의 보금자리로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직은 어려서 집 안에서 키우지만 많이 크면 밖에서 키워야 하니까요. 


오그리는 애교가 많은 오리입니다. 사람도 너무나 좋아하고 몸이 닿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그리로 인해서 요즘 우리 식구들은 많이 웃습니다. 오그리와 산책을 하면 동네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쳐다봅니다. 열심히 따라오다가도 조금만 내가 안 보이면 막 우는데 그 소리마저 너무나 귀엽습니다. 오리를 키운다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고 행복해지는 일인지 몰랐습니다. 오그리가 저희와 함께 늘 건강하고 행복한 오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