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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Jun 01. 2020

조지 플로이드 풀 에피소드

한 흑인의 죽음이 폭동에 이르기까지

지난주 화요일, 딸이 미네아폴리스에서 경찰이 흑인을 죽인 사건을 아느냐고 물었다.

"응, 뉴스 읽었어."

"It is really outrageous, so I signed the petition."

(완전 격분할 일이라서 나도 청원서에 서명했어)


뉴스 헤드라인과 기사 몇 줄을 분명히 읽었지만, 그 뉴스는 내 시선을 잡지 못했었다. 경찰이 흑인을 죽인 사건은 미국에서 뉴스거리가 아니니까. 그런데 딸의 말을 들으니 뭔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서 뉴스와 공개된 비디오를 찾아보았다. 건장한 백인 경찰이 흑인을 땅에 쓰러뜨리고 목을 무릎으로 누르고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장면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어떤 사건의 한 장면은 전체 사건과 반대되는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으므로 나는 선동적인 비디오 장면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장면을 몇 개 더 찾아서 보았는데 경찰이 흑인을 죽였다는 묘사 이외에 이 사건을 묘사할 수 있는 표현은 없었다.


구경꾼들이 둘러서서 촬영하고 있는데 경찰이 공개적으로 사람을 죽인다?

테러범이 현장에서 잡혔나?

주요 언론은 유료 구독자에게만 자세한 기사를 공개하여 볼 수 없었다. 페이스북 조지 플로이드 서포트 그룹에 가입하니 벌써 가입자수가 상당했고(4000명 정도? 정확한 수는 기억이 안 난다) 시시각각 정보가 올라왔다. 대부분의 포스트에서는 충격에 휩싸이고, 깊이 상처 받고, 분노한 사람들의 절규가 들렸다. 그 가운데 사실임이 입증되는 기록들도 많았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전혀 복잡할 것이 없는 사건이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흑인이 < 푸즈>라는 잡화점에서 물건을 계산하면서 2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내민다. 종업원이 주인에게 어떻게 할까요? 묻는다. 주인은 경찰에 신고하라고 한다. 경찰은 즉각 출동해서 아직 가게 주위에 있던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한다. 조지는 약에 취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찰을 Sir(선생님)이라고 칭하며 순순히 체포에 응한다. 하지만 경찰은 조지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무릎으로 조지의 목을 짓눌러 숨을  쉬게 한다. 놀란 종업원은 뛰어들어가 가게 주인에게 경찰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한다. 가게 주인은 경찰에 경찰이 사람을 죽인다고 신고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조지는  번이나 "I can't breathe"(숨을  쉬겠어)라고 호소한다. 경찰은 전혀 놓아주는 기색이 없고 옆에 있던 다른 경관  명도 동요하지 않는다. 구경꾼들이 " 사람 진짜   쉬잖아요. 그만둬요" 하는 목소리들린다. 하지만 경찰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조지는 목이 마르다고 한다. 조지는 눈을 부릅뜬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한다(조지는 40 남성이며 조지의 어머니가 죽은  1년이 넘었다). 코에서 피가 흐른다. 방광이 먼저 힘을 빼고  아래로 오줌이 흥건하게 흐른다. 숨이 끊어진다. 경찰은  후에도 2-3분 동안 목을 누르고 있다가 구급대를 부른다. 무릎으로 목을 찍고 짓누르고 있던 시간은 8분이 넘는다. 구급대는 심폐소생술이나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시체를 운반하듯 조지를 구급차에 싣는다.


아래는 조지를 죽인 백인 경찰인 데릭 쇼빈이 당일 경찰에 제출한 보고를 바탕으로 미네아폴리스 경찰이 발표한 보도자료이다.



[요약 번역] 경찰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 사고로 남성  명이 사망했다. 월요일 저녁 8시 경찰은 위조지폐 신고를 받고 즉각 출동했다. 용의자가 청색 차량 위에 앉아 있는데 약에 취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경찰 두 명이 용의자를 발견하고 차에서 나오라고 했다. 용의자는 경찰에게 물리적으로 저항하였고, 경찰은 용의자를 끌어낸 뒤 수갑을 채웠는데, 용의자가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경찰은 구급차를 불러서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곧 사망했다. 무기를 사용한 사람은 없었다. 미네소타 경찰은 범죄 검거국에 사건 수사를 요청했다. 다친 경찰관은 없다.


백주대낮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을 떳떳이 죽일 수 있는 것도 충격이지만 사람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이 충격적인 장면이 소셜미디어를 도는 동안, 미네아폴리스 경찰은 데릭 쇼빈 경관에게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으며, 쇼빈이 무죄라는 증거가 유력하다면서 쇼빈의 체포를 거부했다. 그 동네 흑인들은 경찰서로, 조지가 죽은 상점 앞으로, 조지의 집으로, 쇼빈의 집으로 몰려가 슬퍼하고 위로하고 항의했다. 쇼빈은 자기 집안에 피신하며 음식을 배달시킨 것으로 보인다. 쇼빈은 사람을 죽이고 밥이 목에 넘어가는 인간임에 분명하다. 쇼빈의 집을 둘러싼 성난 흑인들은 배달원들을 돌려보냈다. 이윽고 경찰부대가 투입되어 쇼빈의 집을 보호하기 시작한다.


다음날, 경찰은 조지의 부검 보고서를 발표했다.

"부검 결과 플로이드가 질식사로 죽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플로이드는 관상동맥 질환과 고혈압성 심장 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었다. 여기에 체내에 남아있던 약물이 사망에 기여 원인이 되었다."


의료인, 법조인, 판사 등도 의견을 낸다.

"암환자가 총을 맞고, 총알이 머리에 박혀서 죽었으면 그는 암이 아니라 총상으로 죽은 것이다. 기저질환이 있으므로 질식사가 아니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시위대에는 흑인이 많았지만 백인들도 가세했다. 사람들은 맨 주먹을 치켜들고 "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중요하다)를 외쳤다. 경찰이 평화로운 시위대에게 체류탄을 발사하고, 페퍼 스프레이를 면전에 뿌리고 곤봉으로 때리고 발길질하고 짐승처럼 질질 끌고 체포하는 장면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계속 퍼졌다. 내내 침묵하던 트럼프는 "슬픈 일"이라고 짤막하게 코멘트했다. 이 억울한 일을 들어주는 공권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위는 폭동으로 변하기 시작할 무렵 페이스북에는 조지를 살해한 데릭 쇼빈 경관을 옹호하는 그룹이 생기고, 그들도 활동에 나섰다. 아래 원본 비디오 화면은 상점 약탈이 일어난 첫날 촬영한 것이다.

화면에서 한 남성이 망치를 들고 상점 창문을 모조리 깨면서 걸어간다. 한 흑인 여성이 뒤를 따라가면서 부른다. "Sir, wait please." (선생님, 잠깐만요-대충 이런 말이 나왔는데 이 비디오가 삭제되었는지 지금 찾아볼 수 없다.) 한참을 따라가니 남성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You don't need to do this, sir." (이러시면 안 되지요.) 그런데 방독면 뒤에 있는 얼굴은 동네 사람들에게 익숙한 백인 경관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체류 가스를 맞고 타들어가는 피부를 식히기 위해 우유를 사러 상점에 들어가지만 상점에서는 시위대에게 우유를 팔지 않는다. 약탈이 시작된다.


이제 언론에서는 백인 경찰이 어처구니없이 흑인을 살해한 사건보다 약탈과 폭동을 더 크게 다룬다. 트럼프는 연이어 트위트를 날려서 여기에 불을 지핀다.

"이런 깡패 새끼들 때문에 애도할 분위기가 안 나잖아. 주지사 월츠, 든든한 군대가 있으니까 약탈하는 놈들 맘껏 쏘라고!"


트위터는 트럼프의 트윗이 폭력 찬미를 금지하는 트위터 규정에 반한다고 지적했지만 막지는 않았다. 트럼프의 트윗과 경찰의 대처는 불과 몇 주전 외출금지명령에 항의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온갖 총으로 중무장하고 미시간 주지사 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였을 때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당시 트럼프는 "그들은(무장한 사위대는) 좋은 사람들인데 그냥 화난 것뿐이야"라며 시위대를 옹호하는 트윗을 날렸고, 경찰은 시위대를 보호하기에 급급했다. 그 시위대는 모두 백인 극우주의자들이었다.


시위가 거세지자 마지못해 쇼빈 경관을 체포했다고 하는데 체포 장면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며, 혐의는 3급 살인, 즉 과실치사라고 발표했다. 흑인의 죽음은 억울하거나 말거나 호소할 것이 없다고 못 박은 결정이다.


흑인 여성인 시카고 시장이 여기에 공개적으로 답변을 내놓았다.

"트럼프에게 할 말은 딱 두 단어다. F로 시작해서 U로 끝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모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경찰이 흑인을 죽이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라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에서 흑인이 경찰에 살해되는 것이 평범한 일상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흑인이 워낙 많이 살해되는 걸 보니 흑인 시체는 거름으로 쓰기 더 좋은 것 같다"


버니 샌더스 전 대통령 후보는 "미국의 뿌리 깊은 문제를 언젠가 논의해야 한다면 지금이 그때이다"라는 연설을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에 올렸다.


시위는 점점 거세지고 전국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서 내가 사는 샌디에이고에서도 어제 쇼핑몰이 불에 타고 고속도로가 시위대에 점거되었다. 거의 30년 전 LA 폭동에서 큰 피해를 입은 한인들은 더욱 공포를 느끼고 있다. 폭력 시위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시위대 중에는 거리에 조지가 살해될 당시의 자세로 엎드리거나 주먹을 들고 무릎을 꿇고 앉아 시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정의가 실현될 수 없음을 미국 200년 역사가 말해준다. 시위대의 폭동과 사회 불안, 바이러스, 이후의 생계 모든 것이 두렵지만 지금은 시위를 막을 수 있는 때가 아니다.


폭동은 억울한 자들의 언어이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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