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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 Feb 20. 2022

곶감

-우리 집엔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겨울이었다. 입에서 나오는 하얀 김을 창문에 하-불어 나만의 낙서장을 만들어 놀던 모습이 생경한 것을 보니.


외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던 길, 뒷 자석에 앉은 어린 시절의 나는 갓길에 주차되어있던 트럭에 「곶감 판매」라는 문구를 보고 “엄마, 나 곶감 먹고 싶어.”라 말했고, 그 날의 엄마는 평소와는 다르게 “먹고 싶어? 엄마가 사줄게.” 하고선 곶감 한 팩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평소라면 마트에서 과자 코너 한 번 제대로 구경시켜주지 않았을 엄마였는데, 그날은 자식의 물음에 기꺼이 답을 준 날이었다.


생애 첫 곶감이었다.

투명한 팩, 표면에 하얀색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주황색의 곶감은 툭 찔러보니 퍽 딱딱했고, 집게손가락으로 들어 요리조리 살펴보았을 땐 도통 무슨 맛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엇이든 입으로 넣었을 내가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곶감을 집었다 놓은 집게손가락에 남은 찐득함 때문이었으리라.

씻지 않고 바로 먹어도 되냐는 물음에 엄마는 괜찮다 하셨고, 살짝 베어 문 나는 곶감 특유의 쫀득한 식감과 달콤한 맛에 그날부터 나는 우리 집 호랑이가 되었다.

이후 매년 겨울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식탁 위엔 곶감 한 팩이 놓아져있었고, 행여 식탁 위에 없는 날이면 냉동실 한 켠에 보관되어 있었다.




대학교와 직장 모두를 본가와 떨어진 곳에서 보낸 나에게 한번은 엄마가 우리 집 호랑이 먹으라고 집에 곶감을 사두었으니 본가에 오라는 귀여운 애교를 부리기도 하시다가, 또 한 번은 곶감을 사긴 샀는데, 요새 이놈이 비싸 공짜로는 못 주겠다며 비용을 청구하기도 하셨다.

(청구라 하니 제법 많은 양을 산 것처럼 보이겠지만, 곶감의 양은 늘 한 팩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트럭에서 곶감을 판매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한 마음에 먹고 싶다는 말로 툭 나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길, 엄마의 엄마를 보고 오던 길.

자식의 말이 문득 배곯고 가난했던 시절의 당신이 당신의 엄마에게 말했던 모습과 닮아 보여 비로소 스스로 엄마가 되었을 땐, 내 자식만큼은 배고프지 않게 키워내고 싶은 마음에 아무 말 없이 내 손에 곶감 한 팩 쥐어줬으리라.

그리고선 룸미러로 보았을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곶감을 야무지게 먹는 내 모습을.

그리곤 다짐했으리라. ‘더 강하고, 더욱 더 강해져야겠다.’고.




올 22년도에도 어김없이 겨울은 돌아왔고, 여전히 우리 집엔 호랑이가 살고 있다.

그리고 그 호랑이를 위한 귀여운 뇌물, 곶감 또한 냉동실에 잘 보관되어있다.

올 한 해도 부족한 엄마지만 잘 부탁한다는 그 마음을 알기에.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해 나라도 그 마음 내내 간직하고자 한 번에 다 먹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조금씩 아껴먹는 호랑이.

그 호랑이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귀여운 뇌물을 평생 받고 싶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겨울은 늘 찾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호랑이는 곶감을 찾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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