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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 Feb 27. 2022

안녕할 가족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랑 이야기 중 하나


우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 나 자신, 가족, 동료, 친구, 반려동물, 자연... 무수히 많은 객체를 짧거나 혹은 길게 사랑하며 살아간다. 각자의 방법, 방식대로 아끼며 챙겨주고 보살피거나 잠잠히 바라보며 누구나 사랑을 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간다.


내가 아는 한 사람, H의 사랑은 그러했다. 배고프진 않은지 늘 끼니를 걱정하고 혹 냉장고 속 반찬은 충분하게, 비어있지는 않은지. 겨울이며 따뜻하게 여름이면 시원하게 잠은 잘 자는지. 다니는 직장에서는 별일 없는지. 아침을 종종 거르는 네가 요기라도 때울 수 있게 뭐라고 챙겨는 먹는지. 넉넉하게, 여유롭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는 않게 챙겨주고자 늘 안부를 묻고 자나 깨나 자식 걱정에 새벽잠 미뤄두고 예배당에 가 새벽기도를 올리는 나의 엄마, 경옥씨.


어릴 땐 보이지 않던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 묻는 안부가 그냥 겉치레가 아닌 매 순간순간이 진심이었음을, 한 살 한 살 늘어감에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에겐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끼니를 챙기는 것이, 나에겐 그저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계절의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긴히 살펴야 했던 부분이라는 것을.

나는 이것을 엄마의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내가 아는 또 한 사람, H와 아주 많이 닮은 K의 사랑은 그러했다. 그와의 대화 서문은 늘 이렇게 시작됐다. “내가 너보다 10년 더 살아봐서 아는데 ...”

K는 어린 시절 본인이 깨우쳤더라면 좋았을, 더 편한 길을 택할 수 있었을. 세상을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앞서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이의 조언은 비록 어린 나에겐 그저 잔소리, 그저 꼰대와도 같아 가끔은(이라 쓰고 종종 이라 말하겠다.) 귀 기울이지 않은 적 있었다. 그럼에도 힘이 들 땐, 늘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잠잠히 나를 바라보던 K. 평소에는 낯부끄럽다며 잘 하지 않는 표현도 이따금 새벽 감성 촉촉할 때, 스스럼없이 나에 대한 사랑을 담백히 전하던 K.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꼰대 같다고, 잔소리라 여겼던 숱한 말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게 무던히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마음이었음을.

나와는 다른 언니, 네가 사회를 일찍 겪으며 알게 된 세상에 혹 막냇동생 또한 힘들어할까 염려했다는 것을.

나는 이것을 언니, 큰언니 너의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지금 나와 함께 사는 또 한 사람, J가 있다.  J는 K와 나 사이에서 가장 혹독한 사춘기를 보낸 사람으로 그 시절의 J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막강했다. 지금이야 다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삶의 동반자라 그런지 조금 약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건실한 편이다.


나는 그에게 있어 사랑이 무엇이냐 물었고 J는 답했다. “그건 아마도. 음, 나에게 있어 사랑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데 이게 쓴다고 생각 들지 않은 거? 아깝지가 않은 거지.”

이런 J라서 그랬던 걸까. 나의 첫 직장생활 때 늘 나보다 먼저(혹은 비슷하게) 일어나 사과를 깎았고, 야근 후 집에 돌아올 때면 나의 이부자리가 따뜻하게 보일러를 틀어 놓았으며, 지금도 종종 나의 출퇴근을 제법 익숙해진(초보운전 치곤 꽤 괜찮은) 운전 실력을 뽐내며 바래다주기도 한다. 조금은 번거롭고 귀찮을 법한 일들도 J는 그냥 한다. 그것이 번거롭다, 귀찮다 여기지 않으면서.

나는 이 또한 언니, 둘째 언니 너의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사랑은 이토록 애틋하고 다정하게 제 나름의 방식대로 내 주변 곳곳에 존재한다. 세상에 사랑 이야기가 가장 흔한 클리셰 같겠지만 그 속사정은 저마다 다르고 방식 또한 다양하다. 누군가는 사랑의 모양이 심장을 닮은 하트 모양으로, 사랑의 색깔이 진한 빨간색 혹은 따뜻한 파란색으로 비유되는 것처럼. 그러니 지금도 드라마와 영화 소재 또한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듯 감사하게도 나는 이 무궁한 사랑을 먹고, 또 먹으며 자랐고 성장했으며 내 안의 다양한 사랑의 형태와 온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직 나에겐 어려운 숙제 중 하나인 ‘과연 내 사랑의 방식은 뭘까’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말이다.

삶의 시작과 끝은 아마도 사랑 하나면 충분하다는 생각, 우리 주변 곳곳에 지금도 방울방울 피어오를 것이라 믿으며.


우리네 가족, 오늘도 각자의 사랑 안에서 모두 안녕할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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