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레이드에 다가오는 겨울과 작별

by 떠돌이 야생마

나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때가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하고,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되어있다는. 정과 미련이 많아 사람이든 물건이든 잘 놓아주지 못하는 나에게 헤어짐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우리는 모두 적당한 때에 만났고 적당한 때에 헤어진다.


호스텔에 살기 시작한 지도 수개월,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 도착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축제와 쾌청한 여름을 찾아 몰려드는 백패커들이다. 아들레이드의 6월은 비가 잔뜩 내리고 우울하다. 5월 초가 되면 더 좋은 날씨를 찾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해안을 따라 여행하며 서쪽으로 떠나고, 누군가는 건기가 다가오는 북쪽으로 흘러간다. 방향이 같은 이들은 차를 함께 타고 집이 아닌 바깥세상에서 하루하루를 나누며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대부분 거대한 호주땅을 지나가는 그 자체가 이동의 목적이다. 더 비옥한 땅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들이지만 백팩과 감성이 있는 게 차이점이랄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우리는 호스텔에 살면서 매일 옷깃 그 이상을 스친다. 몇 개월간 호스텔에 살면서 이곳은 즉 나의 집이었고 함께 사는 친구들은 곧 나의 가족이었다. 난생처음 만난 타인과 몇 명씩 한방에 머물면서 식구가 되었다. 그저 젊음으로 극복되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 서로의 일과를 나누었다. 매일 보고 놀고먹고 마시고 금요일 밤이면 뒤뜰에 둘러앉아 음악을 틀고 누군가 기타를 치며 한주를 또 마무리했다. 너무나 익숙해진 일상이지만 우리의 본체는 여행자다. 여행자는 흘러들어오고 흘러나간다. 잠깐 머무르는 호수지만 결국엔 제각기 강을 향해 흘러간다.


이미 SNS에서 친구가 되어있고, 앨범 속에는 같이 찍은 사진만 수백 장이 들어있다. 다시 만나자는 영혼이 가득한 기약 없는 인사를 나눈다. 친구들을 배웅하러 아들레이드 공항을 5번쯤 왔다 갔다 했을 때, 나도 새로운 모험과 탐험을 찾아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에 나의 에너지가 향하는 곳은 다윈이었다. 호주의 최북단. 원주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 바다에서는 악어들이 수영을 하는 곳. 이곳에서 좀 더 '진짜 호주'를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북쪽으로 떠나는 친구와 무작정 로드트립을 하기로 했다. 이미 대부분의 백패커들이 떠난 조용해진 호스텔에서, 우리는 야생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생에 첫 로드트립이다. 그것도 '전'남자친구와 함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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