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들의 3박 4일 냅다 야생속으로

Flinders Range로 다녀온 3박4일 캠핑과 문명전으로 돌아가기

by 떠돌이 야생마

3박 4일 동안 누구 하나 씻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모두 똑같이 냄새가 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스타에 영혼을 갈아넣는다는 이탈리안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대충 끓인 파스타면에 생토마토 소스를 부어 우걱우걱 먹는다. 그런데 맛있다. 해가 지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술을 마신다. 갑자기 잔뜩 취한 누군가가 감동의 건배사를 외치더니, 침낭만 달랑 챙겨서는 야밤에 산을 오른다. 이름도 없는 옆 산 정상에서 침낭 하나에 몸을 뉘어 밤을 지새우고 돌아온다. 이 모든 건 부활절 연휴에 다녀온 플린더스 레인지(Flinders Range) 3박 4일 캠핑의 일부였다. 노지 캠핑이라는 고급스러운 말로는 감히 포장할 수 없는, 그저 홈리스들의 세상에서 가장 와일드한 캠핑이었다.


부활절 휴가가 시작되기 며칠 전, 공용 공간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느닷없이 캠핑을 가자는 제안에 일단 Yes를 외쳤다.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루마니아 그리고 한국에서 온 캠핑팸이 만들어졌고, 호주판 다이소 K-mart에 몰려가 2만 원짜리 침낭을 사왔다. 8명의 친구들, 8개의 캠핑 의자와 4일간의 식량을 실은 2대의 자동차가 출발했다. 누군가 가져온 무전기를 나눠 들고는 플린더스 레인지를 향해 달렸다. 기름을 넣으려 잠시 멈춘 주유소 옆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누군가는 전시된 피아노를 연주했다. 다시 한참을 달려 누군가 제안한 무료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배가 고프면 일사분란하게 인원을 나눠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해가 지기 전에는 반드시 텐트를 다 쳐야 한다. 이미 어두워지고 나면 온 세상이 깜깜해지기 때문이다. 고요한 밤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술게임과 술 마시기. 주위에 마른 가지들을 주워와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앉아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 하나둘 텐트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아침이 되고 해가 점점 높아지면 텐트 속 더위를 못이긴 사람부터 나와 햇빛 샤워를 한다. 맨 식빵에 잼을 발라먹고는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또 다른 캠프사이트로 이동한다. 여기까지가 벌써 설레고 즐거운 친구들끼리 여행의 대표적인 서막이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던 나에게 누군가 손가락으로 나무 뒤를 가리키기 전까지는! 그렇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그날 밤 침대가 될 수도, 화장실이 될 수도, 식탁이 될 수도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야생적인 캠핑이었다.


비밀인데, 나는 며칠 머리를 감지 않아도 찝찝함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땀을 잔뜩 흘리면 이야기가 다르다. 3일차 아침이 되자 극도의 예민함이 찾아왔다. 호주 사막에 여름이 찾아오면 목마른 파리떼들이 마구 몰려온다. 언뜻 똥파리가 꼬이는 이유가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째 씻지 못한 우리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 산 꼭대기에 계곡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오아시스를 찾은 파리떼처럼 슬리퍼 차림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걸려 도착한 곳에는 자연이 만든 수영장이 있었다. 대학교에 으레 있는, 술 취한 새내기가 빠졌다가 피부병이 생겼다는 괴담 속의 연못보다 정확히 두 배 불투명했다. 평소라면 가위바위보에 백 번 지더라도 발목조차 담그지 않았을 텐데, 당장 더워 죽을 것만 같으니 다 같이 뛰어들었다. 누군가는 머리를 감고, 누군가는 발끝까지 잠수를 했다. 그동안 넘을 듯 말 듯 하던 원시인이 되는 선을 드디어 넘은 것 같았다. 바위에 낀 이끼는 흐린 눈으로 보게 되고, 그저 내 땀을 식혔다는 사실에 놀랍게도 개운했다!


마지막 날 아침, 길었던 휴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못내 아쉬웠다. 이 홈리스들의 Home sweet home, 호스텔로 돌아가면 내가 먼저 씻을 거라고 다들 샤워실을 찜했다. 그러나 문득 누군가 "그런데 이제 괜히 깨끗한 느낌이 들지 않아?"라고 말하자 하나둘 동의했다. 그동안 우리도 모르게 야생의 삶에 적응했나 보다. 다시 몇시간을 달려 도착한 우리들의 집, 차마 침대에는 눕지 못하고 바닥에 앉았다. 귀찮은 건지 아쉬운 건지 미루고 미루다 결국 샤워실에 들어가서는 한 시간동안 물을 맞고 서 있었다. 4일간 묵은 때는 벗겨내는 게 아니라 긁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실제로 깨끗한 몸을 하고 삐걱거리는 매트리스에 누우니 5성급 호텔에 온 것 같았다. 처음 호스텔에 도착한 날, 이런곳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 싶었던게 생각났다. 다시 돌아온 호스텔은 그저 극도로 발달된 문명 그 자체로 느껴졌다. 평생 도시에 머물렀고 노트북이며 휴대폰, 콸콸나오는 물과 전기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한다. 인지하는 즉시, 난자리는 아쉽고 든자리는 어색하다. 4일간 그토록 그리웠던 나의 문명화된 공간이 갑자기 돌아오자 괜히 무언가 불편했다. 도시로 돌아왔지만, 야생의 냄새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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