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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yellowruby Jun 11. 2024

나도 뛰어놀 수 있는 사람이더라

16th 서울재즈페스티벌

제16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 첫째 날.


어느덧 16회나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10년 전쯤 대학생 때는 마니악한 외국 재즈 공연을 하는 가수들이 오는 무대였을 뿐이고, 그게 몇 년 전부터 좀 대중적인 팝 가수들이 내한해서 티켓값이 가장 비싸다는 인식만 있었다. 페스티벌을 정말 많이 다녔지만 약간 쳐지는(?) 인디 음악을 선호하고 좋아하고 무대 앞에서 방방 뛰는 걸 못하는(체력적으로도 본능적으로도) 나로서는 그다지 관심이 가져지지 않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음악에 있어서는 바운더리가 없는 게 나의 취향이다. 음악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 말이고 취향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 취향이 정말 정말 넓다.

어떤 음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음악은 가수의 음색이 너무 특별해서, 어떤 음악은 노래 부르는 이가 좋아서, 어떤 음악은 코드 구성이, 어떤 음악은 가사가, 어떤 음악은 사운드가 너무 알찬 게 좋아서 …


나의 취향은 종잡을 수 없고 정의 내릴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웬만한 페스티벌을 가면 그게 서재페든 그민페든 뷰민라이든 락페이든지 간에 내 취향 무대가 하나쯤은 있다는 것


그렇게 수많은 이유 중에서 서재페를 찾게 된 단 하나의 이유는 DAY6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데이식스를 알고 있었지만 특히 올해 초에 흔히 말하는 입덕을 하게 된 듯하다(아직 입덕 부정기이기도 한데 말이지요…) 데이식스가 부른 모든 노래를 찾아 듣게 되고,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데이식스로 가득 차게 된 것.


나는 원래 차분하고 남들이 흔히 졸리다고 하는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데이식스에 빠지게 된 계기는 달랐다.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가사와, 가사를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 가사를 전달하는 데는 많은 방법이 있다. 가창력이 탁월하지 않아도 모든 아티스트는 그 존재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전한다. 하지만 가끔 더 깊숙이 빠져드는 건 아티스트만의 아이덴티티가 나에게 그대로 전달될 때이다. 데이식스는 그중에서도 가사를 전하는 가창력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모든 보컬 멤버들의 특색이 다 다르게 노래 실력이 좋다. 그들의 가창력이 좋아서일까, 그렇게 듣기 시작한 데이식스의 노래들의 가사에 집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나의 취향 때문이다. 나는 기타 아티스트자 이젠 어엿한 싱어송라이터인 적재님의 기타 연주를 엄청 좋아한다. 적재 밴드 기타 연주 중 꽤나 많은 비율로 올라오는 신청곡들이 데이식스 분들의 음악이었고, 그들의 위로 방식이 너무 좋았다. 삶의 힘든 순간을 위로해 주는 내용도 사랑한다는 내용도 아프다는 내용도 데이식스만의 분위기를 가진 멜로디안에 녹여내 곡을 만들었다는 점에 꽤 충격받은 기억이 있다. 처음 듣게 된 계기는 적재 밴드의 특유의 노련함이 섞인 연주 속에서 흘러나온 노래였지만, 그 이후 찾아본 음악들은 데이식스 그들이 얼마나 음악에 진심인지를 충분히 보여주었던 것. 그리고 JYP라는 큰 소속사에서 아이돌 밴드로 데뷔하면서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줬던 덕분에 발매한 음원들이 많아 나의 늦은 입덕을 가속화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브런치에 감상평을 정리하면서도 가장 걱정되고 신경 쓰이는 부분은 나의 필력이다. 나도 다른 작가 분들처럼 세련되지만 읽기에 편하고 깔끔하면서 공감되는 글을 쓰고 싶은 고민이 많은데, 수많은 가수 분들은 이 작업을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 때 모두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이 가히 짐작이 되질 않는다. 얼마나 신경 쓸게 많고, 얼마나 잘 해내고 싶을까. 하지만 데이식스 너희, 성공한 것 같아요.


절대로 잊지 마

밤이 널 삼키려 해도 새벽은 찾아와

Sometimes we fall and then we rise

늘 반복해 끝도 없이


희망이 떠오르면

절망은 저무니까

기쁨만 기억하고 살자


눈앞이 깜깜해도

어둠이 짙어 보여도

틀림없는 사실은

다시 빛은 돌아와

모든 걸 바라보며 살자


우린 - Day6(Even of Day)



이렇게 빠져든 Day6를 보러 서재페에 갔서였을까? 여느 다른 페스티벌과는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도 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면서 페스티벌 갈 준비를 했다. 해가 머리 위로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3시쯤 도착했고, 이미 놓친 무대도 많았지만, 마음이 조급하지는 않았다. 일행 언니가 도착해서, 수변 무대에서의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와 조윤성 트리오를 보며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구나 느끼고, 실내로 이동해 Mac Ayers 무대를 봤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곡들이 많은데 제목을 몇 개밖에 모르겠더라. 습관처럼 틀어놓는 유튜브 뮤직에 중독된 게 이런 바보 같은 결과를 낳았나 싶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내가 페스티벌을 즐겼던 과거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목적은 Day6에 있었으니 Tones and I 무대 때부터 공연장으로 들어가서 대기했다. 페스티벌에 와서 공연도 보지 않고 화장실 앞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건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저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배경으로 삼아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근황을 챙기기에 바빴고, 그렇게 앞 공연이 끝나고 스탠딩으로 입장했다. 근데 웬걸! 이미 공연장의 절반은 차 있었고 나는 오히려 좋았다. 여기가 더 꽉 찰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그렇게 무대가 시작되고 100분 동안 정말 가슴 뛰는 드럼과 베이스 소리에 얹혀 데이식스의 노래를 많이도 들었고 방방 뛰며 따라 불렀고 응원했다. 나는 20대 이후로 이렇게 뛰어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만든 나의 이미지에 내가 갇혀 버렸던 건 아닐까. 나도 뛰어놀고 아이돌 응원할 수 있는데, 내가 만들고 싶은 페르소나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내년에는 마이데이 가입해야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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