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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yellowruby Jun 17. 2024

어쩌면 제일 자연과 가까운 음악

제10회 계촌클래식 축제 - 조성진 with 경기필하모닉

 


계촌이란 숲을 품은 마을이 가진 힘

어렸을 적, 아니, 아직도 나는 산보다는 바다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푸른 하늘과 (다른 의미의) 푸른 숲이 주는 나에게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바다가 주는 설렘과는 분명히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가끔씩 바다의 광활함으로부터 두려움을 겪어본 경험이 있지만 반대 경우는 많지 않다고 알고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푸른 숲이 펼쳐진 곳에서 깊게 숨을 쉬면 머릿속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비워지는 온전한 ‘나‘의 상태가 되곤 한다.


이번 계촌 클래식 축제는 이러한 숲의 배경에서 진행됐다. 사실 나는 조성진 공연을 보기 위해 매일같이 스케줄을 확인하던 차에 계촌 클래식 축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내가 데려간 나의 일행은 나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으니 모두 계촌에 대해 초면인 부분은 마찬가지였으리라.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곳에, 사람들이 즐겨 듣지 않는 클래식에, 게다가 야외에서 하는 축제에, 숲에서 BGM으로 흘러나오는 클래식 무대가 무려 10 회차라니! ‘제10회 계촌 클래식 축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기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요소들로 가득했다.


계촌 클래식 축제는 강원도 평창군 계촌리에서 10년째 진행되고 있는 지역 문화 진흥과 확산을 위해 지역 마을과 예술 장르를 연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축제이다. ‘예술마을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이를 후원해 주는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한예종이 문화예술 사회 공원 프로그램으로 추진하고 있다. 나는 계촌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깊은 내막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고(알려고 하지 않았고), ‘이토록 말도 안 되는 10회째나 되는 축제가 지속되고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경험해 본 후의 지금의 나는 사뭇 많은 걸 느끼고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달까.


소비되는 클래식에 대하여

조성진의 수도 없이 많은 공연을 유튜브로 보고 직접 봤지만 계촌 클래식 무대는 그러한 클리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무대였다. 오케스트라의 구성에 맞춰 무대가 세팅되어 있었고 관중은 소란스러웠다. 자고로 클래식 무대란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고 그러한 데는 어느 정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침 소리도 허용되지 않는 조용한 분위기에 악기의 소리를 고르게 퍼지게 해 줄 수 있는 고도화된 무대에서 연주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계촌은 연주하는 장소도, 연주자도, 관객도 그 무엇도 기존의 클래식 무대와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눈에 보이는 시야부터 달랐다. 계촌무대는 어두운 핀 조명이 협주자를 비추거나 악보를 비추는 연주자들의 보면대 불빛으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자연광인 햇살을 이기고자 하는 인공적인 조명은 없었고, 구름에 적당히 가리어진 햇빛이 무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울퉁불퉁 소리의 반사를 다각화해 주는 벽면 대신, 울창한 숲이 자리했다. 더불어 푸른 숲에 둘러싸인 무대 구조물이 적당한 푸른빛의 하늘과 함께 했다.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이 너무나도 생소했지만 더욱이 맘에 들었다.


두 번째로는 들리는 소리가 달랐다. 뒤로는 얕게 흐르는 시냇물이 존재했고 주변에는 가족들끼리 떠드는 소리 그리고 친구들끼리 대화하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대가 시작하고는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조성진과 경기필의 협주곡에 타코야끼를 먹을건지 닭꼬치를 먹을건지 토론하는 얘기가 들리는 게 맞나?라는 의구심이 자꾸 들었다ㅎ. 쇼스타코비치 무대가 시작하고 1악장부터 3악장까지 나는 곡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고 안타까움이 커졌다.


그렇게 자유로운 인터미션이 찾아오고, 우리는 이 주차난을 벗어나기 위해 언제쯤 자리를 떠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지 떠들다가 2부인 경기필의 브람스 협주곡 2번을 듣게 되었다. 2부를 듣는 중에 나의 뒤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함께 들리는 클래식에 기분이 좋아지던 찰나, 주차 요원들의 호루라기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아…! 떠날 시간이다^^.‘ 보통은 부스럭 대기만 해도 여럿 눈총을 받는 클래식 무대인데 계촌은 달랐다. 주차요원이 무려 엄청 자주 세게 호루라기 경적을 울리곤 했다.


그렇게 우리도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의 차를 타러 걸어 나왔다. 생각해 보면 여기서부터 계촌 클래식 축제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것 같다. 좀 전까지는 옆에 자리했던 아이들의 수다 소리와 주차 요원들의 호루라기 소리에 예민했었지만, 차를 타러 걸어 나오면서 점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상했다. 왜 멀어질수록 음악소리가 커졌을까? 습관처럼 왜 그런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궁금했지만, 점점 그것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고즈넉한 산의 능선과 흐르는 시냇물의 소리에 어우러진 클래식 음악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1km 정도 걸었나. 과연 내가 맞는 방향으로 걸어왔는지 맞는지 의심이 싹틀 시기에 차가 보였다. 차를 타고 창문을 내리고 들려오는 음악소리를 들으며 노을을 보고 있으니, 계촌 클래식 축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그제야 얼핏 알 것 같았다. 고정관념, 아니 어쩌면 예술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혔던 나 자신에 대한 메시지였다. 클래식이라고 다르지 않다. 어쩌면 가장 자연과 닮은 소리로부터 발전되어 왔을테고, 언제나 사람들 뒤에서 존재하는 음악이었을 것이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 열려있다면 언제든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조용히 얘기해 줄 수 있는 음악이었다. 이렇게 따뜻한 음악이라는 걸, 이렇게 편하고 포근하게 들을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래. 생각해 보면 그랬다. 나 또한 어렸을 적 엄마가 피아노 학원을 하셨을 때부터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놀았다. 누구보다 크게 엄마를 부르고 찾기도 하고 배고프다고 칭얼대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힘들어서 위로를 받고 싶을 때 혹은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생각해야 할 때, 기쁠 때, 슬플 때 찾아 듣는 음악이 되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클래식 음악은 내 일상의 일부분이 되었다.


계촌클래식 축제가 의도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러한 게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삶에서, 돌아다보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무언가가 되려는 것.



이번 계촌에서는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다. 연주에 대한 아쉬움은 당연히 아니었고(내가 뭐라고ㅎ_ㅎ), 곡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은 눈에 보이는 봄과 초여름 사이의 풍경을 소리로 그림을 그려주었지만, 다른 관객에게는 너무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 좀 더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을 연주했더라면, 옆의 아이들도 매진된 타코야끼 대신 무대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ㅎ)


아래 영상은 앵콜곡이었던 헝가리 무곡.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셨던 김선욱 지휘자와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포핸즈로 연주했다. 포핸즈란 Four hands 그 말대로 4개의 손으로 연주하는 곡이다. 즉 두 명이 같은 곡을 연주한다. (포핸즈는 와인도 음악도 체고..예…)


무대가 시작하고 우리 일행 모두 연일 탄사를 내질렀다. 이 영광스러운 무대를 이러한 광경에서 볼 수 있다니! 이러한 무대를 만들어준 현대차 그룹과 한예종에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마치 수감소상인 듯 ㅎ_ㅎ).


무대는 말해 뭐 해. 너무 완벽했다. ㅠ 왕자님 좀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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