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품

두 번째 신화

by 사아

며칠 뒤 토요일, 청원휴가를 받고 오전 일찍 막사를 나섰어. 위병소를 지나 동서울터미널까지 두 시간. 한 달 반 만에 돌아온 서울인데 돌아왔다는 느낌은 없었지.
곧장 강남세브란스 병원으로 갔어. 먼저 와 있던 누나와 눈이 마주쳤지. 넋이 반쯤 나간 얼굴이더라.
“면회는 하루 한 번, 15분이야.”
잠시 뒤 첫 번째 격리실 문이 열렸어. 손바닥에 땀이 차서 비닐 가운과 장갑을 끼기 버거웠지. 마스크까지 고정하니 간호사가 두 번째 문을 열어 줬어.
턱을 숙인 채 들어갔어. 눈동자만 들어 병상을 훑었지. 엄마를 찾고 싶지 않았으니까. 근데 고개 돌리자마자 보이더라. 거기 있어선 안 될, 고작 쉰네 살의 엄마가.
나보다 더 짧게 밀린 머리. 핏기 없는 얼굴. 목과 코와 입엔 호흡기가, 배에는 튜브가 꽂혀 있었어. 앙상하게 마른 팔. 비늘처럼 거칠어진 손등. 그 위로 분화구처럼 퍼진 주사 자국 멍.
간호사들이 잠깐 나를 훑고 지나가더라. 결국 십 분도 못 버티고 나왔어.


도망치듯 버스에 올랐어. 몇 번을 갈아타고 성산동에 도착했지. 익숙한 오르막길이 보이더라. 매일 오르내리던 길이었지. 나도, 누나도. 머리에 종양 단 엄마도.
집에 들어가기 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어. 두 대를 연달아 태우고 도어락 번호를 눌렀지. 소파, 식탁, TV, 침대. 다 그대로인데, 다 바뀌었더라. 편히 앉을 자리도 안 보였어. 우리 집인데도.
구석에 뭔가 보였어. 작은 그림자 같은 거. 눈을 비볐지. 아무것도 없더라. 먼지가 빛을 타고 흔들릴 뿐이었지. 한참을 서 있었어. 멍한 상태로.
시간에 쫓겨 방으로 들어갔어. 누나가 집을 내놓고 외할머니 집으로 들어가 있었거든. 가방, 박스에 옷을 쑤셔 넣었어. 뭐라도 하나 걸려 나오길 바라면서. 우리 셋의 추억 같은 거. 박스 테이프가 손톱 밑을 파고들었어. 쓰라렸지만 그 정도로 멈출 일은 아니었지. 근데 잡히는 게 없더라.
내 핸드폰에는 엄마 사진이 없었어. 동영상 하나는 있었지. 입대 전날 찍은 거. 2초짜리. 화면 속 엄마는 “그래” 한마디가 전부였어. 사라질까 봐 메일로 보냈어. 드라이브에도 옮겼고.
혹시나 싶어 컴퓨터를 뒤졌어. 뭐가 나오긴 하더라. 성인이 된 뒤 엄마와 찍은 사진 단 한 장. 엄마 혼자 나온 사진도 남이 찍어 준 몇 장뿐이었지.
누나가 그랬어. 입대 전에 셋이 제주도라도 다녀오자고. 그럴 정신 없다고 잘라 냈지. 그게 마지막 기회였더라.


휴가를 쪼개 격주로 서울에 왔어. 엄마를 잠깐 면회하고, 집에 들러 짐을 싸고, 그걸 택시에 실어 지인들 집에 맡기고, 다시 부대로 돌아갔지. 겨우 앉은 딱지를 다시 뜯어내는 일이었어.
두 달 뒤, 5월. 태오 형 작업실에 마지막 짐을 밀어 넣었어. 그때 내게 남은 건 훈련소에서 메고 온 군용 백팩 하나뿐이었지. 가방은 늘 10킬로가 넘었어. 칫솔, 샴푸, 속옷이랑 옷가지까지 죄다 쑤셔 넣었거든. 집이 사라진 서울, 밤을 어디서 맞게 될지 몰라 대비해야 했으니까. 어깨가 무거웠지만 입술을 깨물었어. 오늘 하루만 버티자고.
길가에 멈춰 서서 연락처 목록을 훑었어.
며칠 전에 헤어진 전 여자친구 이름은 바로 넘겼지. 형제 같던 친구들 이름도 몇 개 스쳤어. 근데 기대고 싶은 이름은 없더라. 마지막으로 누나 이름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어. 누르지 않았어. 한 달 전부터는 휴가를 나와도 누나한테 알리지 않았으니까.
처음엔 미안해서 시키는 대로 했어. 누나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으니까. 근데 이사에 청소에 휴가를 다 쏟아부으니 멘탈이 나가더라. 이제 막 일병을 달았는데, 남은 휴가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으니까.
정처 없이 걷다가 또 연남동으로 갔어. 친한 형이 운영하던 작은 바. 내 유일한 도피처였지. 사람들 틈에 섞여 웃고 떠들었어. 병은 한시도 손에서 안 놨고. 취한 줄도 모르고 술을 넘겼지. 근데 뱉지 못한 것들이 목구멍 안쪽을 계속 찌르더라.
마감이 가까워지자 자리가 하나둘 비었어. 공기가 점점 거칠게 느껴졌고. 시야가 흐려지고 손끝이 저려 오더라. 결국 자존심을 버리고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너 지금 군대 아니었어?”
새벽 두 시, 외할머니 집 주소를 받아 적자마자 택시에 몸을 던졌어.
강변북로 위로 여의도 야경이 스쳤어. 빌딩 불빛이 어긋나 보였고. 차 소리가 고막을 긁었지. 컷 없는 카메라 안에 갇힌 듯 숨이 목에서 걸렸어.
“괜찮아. 괜찮아.”
주문처럼 되뇌었어.
한 시간을 달려 택시가 멈췄어. 초인종에 문이 열렸고, 누나와 외할머니가 보였지. 그제야 으스러졌어.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