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신화
버스가 터널을 지나는 동안 창문에 비친 얼굴을 봤어. 입꼬리가 올라가더라. 웃은 건지, 정신이 나간 건지.
내무반에 들어섰어. 몇 시간 안 남은 주말을 보내던 시선들이 한꺼번에 꽂혔지. 교차했어. 바로 피한 눈, 노려보는 눈이. 이제 막 일병된 놈이, 격주마다 사회로 나갔으니까. 근데 달더라.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았거든. 적응은 계속 못했어. 안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얼마 뒤 소대장이 나를 불렀어. 눈은 안 마주쳤지.
“현역 부적격 심사 진행해 보는 게 어때?”
심사 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했어. 전역은 장담 못 하고. 공익으로 빠질 수도, 최악은 원복 판정을 받고 다른 부대로 전출 갈 수도.
바깥은 집도, 돈도, 직업도 없었어. 군대에 남아 있으면 끼니, 월급, 잠자리는 해결할 수 있었지. 더군다나 내가 나간다고 엄마가 빨리 낫는 것도 아니잖아. 도박이었어.
“진행하겠습니다.”
일주일 뒤, 행보관이 종이 한 장과 볼펜을 내밀었어. 문진표.
<자살 충동>, <불안 발작>, <자해 시도>.
이름을 적고 예, 아니오를 채웠어. 한 시간 뒤 군용 버스에 실렸지. 쿠션이 죽은 시트에서 역한 땀 냄새가 올라왔어.
버스가 사단 의무대 위병소를 지났어. 연병장 구석의 낡은 컨테이너 앞에 멈췄지. 조악한 유리문 위로 색 바랜 명찰이 번들거리더라.
<사단 힐링캠프>
5월, 군대 안의 또 다른 수용소로 옮겨졌어.
실내에는 예닐곱 명쯤 되는 생활복 차림 병사들이 있었어. 전투복을 입은 ‘멘토’들도 서 있었지.
곧이어 앞머리가 벗겨진 나이 든 소대장이 나왔어.
“기상, 취침 시간은 동일하다. 공식 일과는 없어. 화장실, 샤워, 식사 포함 모든 이동은 멘토 동행하에 한다. 휴대폰 사용 금지.”
곁눈질로 실내를 훑었어. 낡은 TV와 빽빽한 책장.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지.
며칠간 잠들지 못했어. 그곳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맞는 선택이었는지. 머릿속이 멈추질 않았으니까.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랑 수면 유도제를 거부한 것도 한몫했을거야. 잇몸에 숨겼다가 변기에 뱉었거든. 약에 눕혀지면 수거되는 것 같아서.
일과 시간엔 너덜너덜한 책장을 넘겼어. 장기를 둬도 시간을 죽이진 못했지. 복도 구석의 공중전화기. 내겐 쓸모없었어. 누르고 싶은 번호도, 듣고 싶은 목소리도, 꺼낼 마음도 없었으니까. 근데도 그 앞에 한참 서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