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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슈가 Mar 20. 2020

다음 생애도 여자로 태어날 거야

"다음 생애는 절대로 여자로 태어나지 않을 거야."

친구들이나 여자들끼리 모이면 대부분이 다음 생에는 절대로 여자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다음 생에 태어나도 또 여자로 태어날 거야."

내가 이상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 번도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 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여자들은 나만 보아도 까다롭고 까칠하고 어렵다. 나 같은 여자를 만난다면 삶이 피곤할지도 모른다. 변덕도 심하고 외출 한 번 하려면 옷을 여러 벌을 입었다 벗었다. 결국 보면 그 옷이 그 옷 같고 늘 입던 옷을 입으면서 안방 침대 위에 옷을 순서대로 눕혀 놓고 선택 장애로 시간을 끈다. 내가 남편이라면 얼마나 피곤한 일일까 싶다.


"고마 대충 입어라. 그 옷이 그 옷인데"

"어떤 게 더 날씬해 보이노?"

"다 똑같다."


"딸들아. 엄마 어떤 거 입을까?"

"아. 엄마 모르겠어. 엄마옷은 다 비슷해."

"아니 어떤 게 더 날씬해 보이냐고."


"있는 그대로 보여."

영혼 없이 말한다. 간혹 기분이 좋으면

"엄마, 이게 더 나은 것 같아."

"이게 좀 더 날씬해 보이네."

이런 구체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그나마 딸만 둘이 있어서 둘 중에 하나만 내 옆에 있어도 딸을 괴롭히며 대답을 강요한다. 둘 다 있을 때는 선택하기가 더 좋다. 둘의 대답을 듣고 내 결정을 보태면 더 잘 고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들만 둘 있는 여동생은 나보다 만만치 않다. 수시로 전화 와서 옷에 대해 묻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서 또 묻고 내가 바쁘고 귀찮다고 할 때는 우리 딸들에게 사진을 보내서 '이게 낫나. 저게 낫나'를 묻기도 했다.

"지언아. 이거 오늘 산 옷인데 괜찮나? 뚱뚱해 보이지 않나?" 사진을 보내서 물어보는 것이다.

우리 딸들은 이모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네 예뻐요. 이모." 이 대답이 아니면 이모는 계속 묻는다.

"별로가? 이상하나?"

이미 입은 옷은 못 바꾸는 것을 알기에 괜찮다고 잘 어울린다고 잘 샀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바꾸지도 못하고 혼자 병이 들것이며 그 옷을 입을 때마다 전화 와서 또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미용실 다녀온 후

"이모 파마했는데 괜찮나?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 않나?" 하고 묻기도 했다.

이미 나에게 단련이 된 딸들은 대답도 잘한다.

"네. 이모 괜찮은데요." 애들은 해야 하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

만약 여동생에게

"이모, 나이 들어 보이는데요."라고 답을 하면 그때부터 잠도 못 자고 심지어는 나한테도 계속 묻는다.

"언니야, 우짜꼬? 실패했다. 다시 할 수도 없고 망했다." "다시 할까? 머리 상하겠지?"

"좀 지나면 자연스럽겠다. 일주일만 있어봐라."


나의 대답도 늘 정해져 있다. 막상 '다시 해라.' 이러면 본인도 다시 하지 않는다. 동생은 이미 본인이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 계속 묻는다. 엄마에게 딸이 있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참 좋다. 딸이 없는 여동생은 우리 딸들이나 나에게 이렇듯 수다를 하기도 했다.


2018년 3월 제주도


결혼하기 전까지 여동생과 나는 계속 한방을 썼다. 우리가 둘 다 사회인이 되고 우리가 번 돈으로 옷을 사 입을 수가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친구처럼 같이 쇼핑하러 다니기도 했다. 동생은 여고생 때부터 나보다 키가 더 자랐고 덩치가 커서 같이 쇼핑을 하러 가면 내가 동생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누구보다 만만한 쇼핑 친구이기도 했지만 둘이 보는 눈도 비슷했다. 내가 사고 싶은 옷을 동생도 똑같이 사고 싶어 해서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여동생은 자주 내가 고른 것을 좋아해서 어떤 때는 짜증이 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자기가 먼저 사려고 했던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엄마가 똑같은 옷을 입혀서 쌍둥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덩치도 비슷해서 사람들은 똑같은 옷을 입은 우리 자매를 보고 쌍둥이냐고 묻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전혀 안 닮았는데 사람들은 쌍둥이로 보기도 했다.


여동생은 비서가 꿈이어서 어릴 때 놀이도 비서 놀이를 자주 했다. 엄마의 구두를 신고 엄마 백을 들고 스카프를 두르고 출근하는 여비서의 모습을 했다. 아마도 티브이에서 본모습일 것이다. 여동생은 그 꿈대로 은행의 본점에 높은 분의 비서가 되었다. 나보다 수입이 많았던 여동생은 비싸고 예쁜 옷을 잘 사 입었다. 같이 입을 수 있는 옷은 빌려 입고 싶었지만 네 거 내 거가 분명해야 했던 여동생은 싫어했다. 나보다 좋은 옷이 많기에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기도 했을 것이다. 가끔 서로 빌려 입기도 했지만 여동생은 좀 비싸고 좋은 옷은 빌려 주기를 싫어했다. 나보다 체격이 커서 내 옷을 동생이 입을 만한 것은 잘 없었지만 내가 동생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은 많았다. 하지만 동생보다 골반이 컸던 나는 바지만큼은 동생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재킷이나 원피스 코트 등을 빌려 입고 싶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나는 박봉에 힘든 치과일을 하고 있었기에 여동생 몰래 아버지께서 용돈도 주셨다. 아버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아셨을까? 여동생이 이 글을 본다면 또 한 번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낄지 모른다. '아버지는 언니만 챙기고..'


출근 시간이 나보다 빨랐던 여동생이 먼저 출근하고 나면 동생 옷을 몰래 입고 나가기도 했다. 하필 저녁에 여동생이 나보다 먼저 와있는 날이라면 그 날은 싸우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맨날 말로만 싸운다. 서로 욕을 써본 적도 없었으며 몸싸움을 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하룻밤 지나고 나면 여느 때와 똑같다. 동생이 새 옷을 사면 나보다 넉넉한 동생이 부럽기도 했다.


"언니야, 이번에는 진짜 내 옷 입지 마라." 당부를 한다.

"알았다." 나는 또 거짓말을 한다.


이런 것이 자매라서 좋은 점이겠지? 오랜만에 쇼핑하고 온 날은 밤이 늦도록 입어보고 또 바꿔서 입어보고 코디를 해보며 서로를 봐주기도 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내일의 날씨를 검색할 수 없었던 시절. 이미 뉴스 시간 날씨는 끝났고 ‘내일 어떻게 입을까?’ ‘비 오면 어쩌지?’ 이런 식의 대화로 밤이 깊어갔다. 이런 대화는 결혼 후에도 계속되었다. 내가 결혼하고 바로 다음 해에 결혼한 여동생은 일 년 만에 우리 집 일 층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 자매의 옷 이야기는 네버엔딩 스토리였다. 같이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옷을 사는 것도 낙이었다. 아이들 옷을 살 때도 서로 봐주고 골라주고 '이거 예쁘네. 저거 예쁘네' 하면서 조카들의 옷도 내 아이 옷 고르듯이 서로 봐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입을 새 옷을 사는 날은 내 옷을 동생집에 두고 내가 여동생 집으로 내려갔다. 시댁 식구들과 같이 사는 이유로 눈치를 보게 되어서 동생 집에서 옷을 입어보며 패션쇼를 했다. 그렇게 보낸 시절 우리 나이 아직 20대 중후반이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아니 더 이전부터 그렇게 옷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지낸 여동생이기에 나이 오십이 된 아줌마라도 우리 딸들에게 물어보고 나 역시 옷가게 사장이면서도 물어보는 것이다. 여동생은 자신이 옷가게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이런 문의가 조금씩 줄어들었으며 최근에는 우리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가끔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 낮에 만나면 내가 입은 옷부터 본다.


"이 옷, 어디 꺼고?"

"나도 하나 입고 싶은데"

결국 "벗어봐라 나도 한 번 걸쳐보자."


철없어 보이기도 하겠지만 여자들은 나이가 어리든 많든 이런 행동들은 비슷하다. 우리 손님들을 보아도 그렇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친구들끼리 오면 하는 행동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들 소녀가 되는 것이다. 딸과 엄마가 같이 오는 분들은 모녀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나이 드신 엄마도 딸과 쇼핑을 나오시면 소녀처럼 되는 것이었다. 옷 좋아하는 엄마에게는 옷 좋아하는 딸이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집처럼.    

 


2018년 3월 제주도


나는 정말 병적인 것 같다. 특별한 디자인이나 색다른 옷도 없으면서 가게가 아닌 외출을 갈 때면 옷장을 뒤엎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모임이거나 특별한 날이라서 평소와 다르게 신경 써서 입고 나가면 그것이 나를 종일 더 신경 쓰이게 만들기도 했다. 어색하고 불편하고 입고 나간 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당장 갈아입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다음에는 그냥 평상시 내가 입던 대로 입고 나가야지.' 이렇게 생각하지만 막상 또 그런 날이 되면 한바탕 난리를 부린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여자들이 한 번쯤은 아니 여러 번은 경험했을 것이다.

여행 준비를 하면 무슨 옷을 패션 쇼하는 것도 아니고 조식 먹으러 갈 때 입는 옷 따로 낮에 입는 것 따로 저녁에 잠깐 입을 옷 따로 잘 때 입는 거 따로.. 이렇게 가방 한가득 옷을 챙겨야 든든하다. 결국 한 번도 안 입고 같이 간 친구에게 빌려 주기도 하고 새 옷은 기도 했다. 친구와 캄보디아로 여행을 갔을 때 생각보다 옷을 안 챙겨 온 친구는 내 트렁크를 뒤져서 새 옷을 팔아라고 했다.

"니는 여기까지 와서 옷장사를 하네?"

같이 왔던 언니도 내 옷가방에서 골라 입었으며 나는 본의 아니게 챙겨간 옷을 팔고 맥주값을 벌었다.

"니 이러려고 새 옷도 챙겨 온 거제?"

"계획된 일이제?"

고작 4박 5일의 여행인데 사진 속에는 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만 만족하는 내 성격 때문에 친구는

"니는 옷가게 사장님이 천직이다."

"직장 때리치우고 옷장사 시작한 거는 정말 잘했다."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나는 여자가 훨씬 좋아.”

"다음 생에도 여자로 태어날 거야."

“언제나 예쁜 옷을 입을 수 있는 여자만의 특권 같은 것.”


나는 그것이 좋다고 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한 가지는 그것이었다.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머리 모양을 화려하게 하지도 않는다. 장신구나 보석 등을 걸치는 것을 즐기지도 않는다. 물론 그런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비중을 그만큼 안 준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 이야기를 하듯이 여자들은 옷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이런 대화나 행동에 혀를 끌끌 차면서 한심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여자들은 자기표현을 옷을 잘 입는 것으로 개성을 드러내고 자신감도 충전한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이렇게 옷 이야기를 하는 여자들의 뇌구조가 모두 옷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들끼리 모였을 때는 이런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만 건강하고 심각한 걱정거리가 없을 때 가능한 일이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여자나 아내가 이렇게 옷 이야기를 하면서 눈이 반짝거린다면 그녀는 지금 큰 고민 없으며 무난하고 평범하며 행복한 일상을 즐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몸이나 마음이 아프거나 근심 걱정이 가득하다면 쇼핑도 즐겁지 않으며 옷에 관심도 가지 않을 것이다.

내 아내가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거나 옷 타령을 한다면 '아, 지금 행복한 것이구나.' '무탈한 일상의 한 장면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면서 20대의 아가씨 시절과 애기 엄마를 겪으면서 나누었던 옷 이야기들이 그때 우리가 큰 고민 없이 누렸던 소소한 일상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미소가 내도록 떠나질 않았다.

늦은 밤까지 여동생과 둘이서 새 옷을 입어보면서 속닥거리는 소리를 우리 부모님들은 잠결에 들었을 것이고 두 분은 우리 자매의 하하호호 거리는 소리에 딸들이 행복한 듯하여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내 딸들이 만나면 동생에게 언니에게 본인이 산 옷을 보여주면서 대화하는 장면을 본다. 딸들은 거의 인터넷 쇼핑을 하다 보니 주문해서 받은 옷을 입어보고 서로 뭣이 그리 즐거운지 깔깔거리면서 속닥거린다. 30년 전 나와 여동생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두 딸이 우리 집에 큰 걱정이 있거나 부모님이 아프거나 한다면 옷 이야기나 하면서 깔깔거릴 수 있을까? 행복은 큰 그림이 아니라 이렇듯 소소한 일상에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여동생과 한 방을 썼던 시절. 지금은 여동생도 옷가게 사장님이 되어있으며 우리 자매의 옷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옷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 일을 9년째 하기는 힘들 것이다.



-달달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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