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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슈가 Mar 27. 2020

장사꾼

장사꾼 아니고 취미생활


좋아서 하는 일을 하다 보니 거의 미쳐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생업이면서 취미생활같이 즐기면서 해야 하는 것이었다. 마라톤을 하듯이 길게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잠깐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팔고 나가고 또 어딘가에서 다시 가게를 열어서 장사 좀 하다가 팔고 나가는 사람들을 더러 보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일하는 것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장사꾼’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싫었다. 왠지 그 ‘꾼’이라는 말이 격이 떨어져 보이고 장사를 하는 사람을 낮추어 말하는 것 같았다.

‘꾼’이라는 말은 사실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또는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어떤 일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 또는 ‘어떤 일을 즐기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이렇게 사전적으로 좋은 의미들이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어떤 일, 특히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도 나와 있다. 특히 ‘장사꾼’은 장사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내가 알고 있기에도 이 ‘꾼’이라는 말은 주로 안 좋은 것에 많이 붙인다고 생각했기에 듣기가 싫었다. ‘노름꾼’ ‘도박꾼’ ‘술꾼’ 아는 것이 이런 것이어서 나에게 ‘장사꾼’이라고 부르면 화가 나기도 했다.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장사꾼이 아니면 무어라고 불러야 하는가? 나에게 '장사꾼'이라고 좋은 뜻으로 말했다던 한 친구는 화를 내는 내가 당황스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옷을 좋아해서 옷가게를 시작했지만, 처음에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좋아만 해서는 계속 좋아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돈도 벌어야 했다. 그냥 취미생활이라면 적든 많든 돈을 쓰면서 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좋아서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내 직업이라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상인가? 직업이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돈을 벌면서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를 '장사꾼'취급하는 것에 화를 냈던 것 같다. 이왕이면 '꾼' 보다는 프로나 전문가이고 싶었다.

나의 취미는 어느새 옷이 되어있었다. 매일 옷을 만지고 다리고 걸고 손님들에게 입히고 또 내가 입어보면서 옷과 함께 9년의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내 일에 프로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했는지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고 재미있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무수한 노력도 함께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람이나 성취감이 없었다면 즐거움도 모를 것이고 만족도 덜했을 것이다. 노력에 대해 좋은 결과를 보게 될 때는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이것이 직장을 다닐 때와 다른 점이었다.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보일 때는 더욱더 일할 맛이 났다.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을 직장 다닐 때는 절대 느낄 수 없었다. ‘언제 점심시간이 되나?’ 배꼽시계는 정확했으며 점심시간은 빨리 오지 않았고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배가 고파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일을 시작하고는 물론 때가 되면 배가 고팠지만, 손님들이 많아서 제때 밥을 못 먹을 때도 웃으면서 참아졌다.

경기가 좋았던 몇 년 전 좁은 가게에 손님들이 늘 붐볐다. 들어와서 구경하고 싶은데 비좁아서 들어오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다음날 다시 오지만 타이밍은 그 시간에 또 붐비고 있어서 그냥 돌아가는 손님들이 생겼다. 그러다 보면 오기가 생겨서 꼭 우리 집 옷을 입고 싶어 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손님들은 옷을 골라서 계산하기 위해 옷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시절은 꿈도 못 꾼다. 경기가 좋았던 몇 년 전, 밥을 제때 먹지 못하면서 일했지만 참을 수 있었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지만 입가에는 미소는 번지던 그런 날이 있었다. 이제는 경기가 침체되어 예전만큼 손님이 많지도 않지만 예전처럼 손님이 온다고 해도 제때 식사를 못하면서 일을 하기에는 나이도 먹었고 체력도 안된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였을 때 좋은 시절을 경험한 것 같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은 이토록 지쳐도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할 수 있다. 일을 일이라 생각하고 할 때 피곤하고 빨리 지치지만, 취미생활처럼 일을 할 수 있을 때는 지칠 것 같은 상황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옷을 좋아하는 모습을 손님들이 더 잘 알기도 했다. 신상을 내리고 나면 그 옷들이 마치 내 아가들인 양 예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생명이 없는 물건이지만 나에게 오면 마치 생명을 불어넣듯이 옷을 대했다. ‘예쁘다’ 말해주면 그 옷은 더욱더 예쁘다고 했다. 손님들에게 내가 예뻐하는 옷이 어떤 것인가를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가게에 와서 구경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알게 된다.


"언니 눈에는 다 예쁘죠?" 손님들은 말한다.

"네. 내 눈에는 다 예뻐요."

이것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팔기 위해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예뻐한다는 것을 알고들 있었다. 솔직히 예쁘지 않다면 우리 가게에 데려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직접 입어보고 코디를 해보면서 옷에 생명을 불어넣고 날개를 달아주는 일.

그것이 또한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옷은 전시용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예쁘고 근사하게,

때론 편하게 잘 입혀져야 제 몫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장이며 내가 직원인 일터에서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고 내 손이 닿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사생활은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생겼다. 중요한 것이 일이었기에 힘들어도 옷가게를 즐기면서 하고 있었다.    


“언니는 정말 이 일을 매일 즐겁게 하네요.”

“진짜 옷을 좋아하나 봐요.”

“사장님은 정말 부지런하세요.”

자주 듣는 말이었다.

내가 내 옷을 좋아하려면 그만큼 옷에 자신이 있어야 했기에 옷 고르기에 더욱더 신경을 써야 했다. 집에서 기르는 똥개라도 주인이 ‘예쁘다.’고 늘 아껴주고 사랑해주면 동네 사람들도 같이 예뻐해 준다. 하지만 아무리 예쁘게 생겼어도 주인이 구박하는 똥개는 동네 사람들도 괜히 툭. 툭. 발로 찰 것 같다. 내 옷을 함부로 이상하다고 말하면 기분이 안 좋다. 그래서 나도 거래처에 물건을 주문해서 실물 보았는데 맘에 안 들 때 조심스럽게 반품을 시킨다. 물론 반품 이유도 조심스럽게 말한다. 왜냐하면 그분들도 고심해서 만든 옷들일 것이고 안 예쁜 것이 아니라 나하고 안 맞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다들 나보다 전문가이며 디자이너들이 오죽 노력했을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 가게 옷이 나한테는 모두 예쁘지만 누구나 다 예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옷가게가 많고 스타일도 다 다른 것 아닐까? 사람들의 스타일이 다른 것도 개성이기에 존중해 주어야 한다. 나와 스타일이 맞지 않는 손님이 우리 가게에서 옷을 살 필요는 없다. 그리고 본인과 맞지 않는 옷가게에서 굳이 이러쿵저러쿵 옷을 평가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입은 옷을 함부로 대놓고 평가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각자의 개성인 것인데 나와 다른 것을 이상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나 역시 옷을 이상하게 입은 사람을 보거나 유행에 너무 뒤지게 입었거나 나의 취향과 너무 다르게 입은 사람을 보면 분명 수군거리며 입을 대기도 했다.

'옷 진짜 이상하게 입었지?' '저 여자 봐. 저거 언제 유행했던 옷이고.' '어떻게 저렇게 입고 다니지?' 이런 나쁜 버릇이 가끔 새어 나오기도 했지만 옷가게를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을 옷을 입혀보고 만나면서 '그럴 수도 있구나.' 이해를 하게 되었다. 각자의 개성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장사’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물이 흐르는 막힘없는 통로 같은 마음도 필요하다.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말들을 더러 만나기 때문이다.

마음에 양쪽이 뻥 뚫린 관을 심어 두고 담아두지 말고 흘러 보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을 취미생활처럼 즐기면서 하게 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무슨 취미든 익히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물며 장사하는 것이 취미라니? 옷이기에 가능했다.

요리가 취미인 사람이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은 훌륭하다고 말한다.

옷을 파는 것을 내가 잘하는 취미라고 인정해주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오느냐에 따라 

훌륭한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 듯이 내가 옷들에 생명을 넣고 날개를 달아주어서 누군가에게 예쁘게 입혀지도록 만드는 일 또한 멋진 취미생활이라고 말한다.    


-달달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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