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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슈가 Mar 04. 2020

"잘해줘야 다음에 또 오지"

"다음에도 오시면 기억했다가 잘해드릴게요"


“더 깎아 주세요. 잘해주면 단골 할 거고.”

“깎아줘야 다음에 또 오지.”

“더 깎아줘도 되겠네. 많이 남는 거 아는데.”

“뒷자리 때면 되겠네.”

옷값을 계산할 때 적당한 금액을 말했음에도 할인금액을 본인이 결정한다.


“이렇게 해주면 사고 안 해주면 못 사고.”

이 말은 정말 싫어하는 멘트이다.

이 말이 나오면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죄송합니다. 그럼 사지 마세요. 더는 해 드릴 수가 없네요.”


매너 없는 분들은 대부분 말끝이 짧다. 이런 상황은 옷가게 시작했을 때 초창기에 주로 많았다. 처음 왔거나 몇 번 안 오신 분들. 그리고 최근에 새로 오시는 손님들 중 일부가 간혹 던지는 멘트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이런 멘트에 흔들리지 않는다.  

장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손님들은 장사 초보를 바로 알고는 흔히 하는 말로 갖고 놀라고 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어리숙해 보이고 경험 없고 순진해 보이기까지 했던 나의 40대 초반은 당연히 그런 이미지였다.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여서 더 그랬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본인들이 주도권을 쥐고 옷값을 마음대로 깎아버리기도 했다. 너무 턱도 없이 깎으려고 해서 그 부분이 제일 힘들었다.


분명히 옷값이 정해져 있는데도 옛날부터 보세 옷이라고 하면 이윤을 많이 붙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옛날 사람들이 시장 물건을 살 때 엄청나게 깎으면서 사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분명 시대가 많이 변했는데도 아직 우리 엄마들이 하던 것을 보고자란 티를 낸다. 우리 엄마는 옛날 사람이지만 이런 행동을 안 했기에 나는 이런 행동을 잘 못했다.

우리 동네에도 노점에서 야채파는 할머니들이 계신다. 야채를 사면 자꾸 더 넣어줄 때가 있다. 그만 넣어라고 말린다. 어떤 사람은 거기서도 자꾸만 더 넣어달라는 것을 본다.

음식 장사가 많이 남고 물장사가 더 많이 남는다는 것도 알지만 막상 밥값이나 커피 값을 깎아 달라는 사람은 없다. 커피 한 잔 비싼 케이크 한 조각은 쉽게 사 먹으면서 옷값은 깎아달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따라다닌다. 적당한 금액을 할인을 해주어도 자꾸만 더 깎아달라고 한다. 더 깎아달라는 말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말이야 할 수 있는 것인데 억지를 부리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아. 이런 것이 나를 힘들게 할 줄이야.’


아주 일부 그런 손님들이 그랬는데 그 일부 때문에 스트레스가 되었다. 물론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그리고 장사를 한다는 것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당연한데 소비자들은 유독 '작은 옷가게'에서는 계산을 할 때 실랑이를 더  벌인다. 주인의 기운을 다 빼버리는 손님들이 있다. 다른 손님들과 공평하게 해야 된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본인만 더 깎아달라는 것이다.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다.


어떤 이들은 남들보다 많이 깎으면 자랑스러운 듯 보였다. 그만큼 주인을 매우 힘들게 했다는 것이다.

같은 가게에서 똑같은 물건을 사는데 '우는 사람은 많이 깎아 주고 말도 못 꺼내는 사람은 제값을 다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물론 친한 단골이거나 옷을 한꺼번에 많이 구매했다면 평소보다 당연히 할인을 더해준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관계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 나름대로 원칙은 지켜야 하는 것이 이유 있는 고집이기도 하다.      

이런 고충을 간혹 옆에서 직접 보게 되는 지인들은 ‘저런 사람은 미리 금액을 많이 불러서 많이 깎아주는 것처럼 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보는 이도 그만큼 힘들게 보였기에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 머리가 그런 쪽으로는 잘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손님들을 내 원칙대로 끌고 가는 것이 시간이 좀 걸렸다. 초심을 지키고 주관을 유지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정말 좀 더 깎아주고 이런 손님도 잡아야 하나. 여러 번 갈등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신념을 믿어야 했다.

몇 번을 와서 실랑이를 벌여도 안 통하니까 안 오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끌려갈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류는 몇 번을 오면서 계속 떼를 쓰다가 포기한 사람. 나를 이기려 해 보았지만 안 되니까 ‘이 사장님은 안 통하는구나.’라고 포기한 것 같다. 우리 집 옷은 마음에 드니까 나의 방식대로 따라오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경우는 단골이 되면서 돈독해지고 이제는 실랑이 같은 것은 없어도 저절로 할인을 해주고 있다.


옷값을 계산할 때 깎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안 깎아주면 안 산다는 말을 던지는 사람의 심리는 ‘이 가격에라도 팔아야 장사지.’ 또는 ‘이렇게 팔아도 남잖아.’ ‘싸게라도 팔아야지. 요즘 경기도 안 좋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말없이 옷을 다시 걸어둔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런 식으론 안 팔아요.’ ‘안 팔리면 차라리 기부합니다.’ ‘단골손님에게 그냥 끼워줍니다.’     

이런 경우 손님은 두부류이다. 어이없어하며 가시거나 '그냥 주세요' 라며 내 방식에 따르는 분.



모든 것에는 과정이 있다. 손님들이 말하는 ‘잘해줘야 다음에 또 오지’라는 말에 내 대답은 ‘다음에도 오시면 기억했다가 잘해드릴게요’이다. 지금은 오래된 단골들과는 이런 대화로 에너지를 뺏길 일이 없다. 나는 처음에만 이렇게 까칠하다. 일단 나의 고객이 되고 나면 나에게 요구를 하지도 않는다. 알아서 해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더 깎고 싶어도 말을 못 꺼내기도 하는 것 같았다. 덜 친할 때는 요구를 하다가도 막상 가까워지고 나면 미안해서 더 요구하지 못하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단골손님에게는 서운하지 않을 만큼 나도 성의를 다하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기계가 아닌 이상 일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손님들이 나의 그런 어설픔은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달달 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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