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부분의 쇼핑을 밤에 카카오스토리를 통해서 주문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직접 서울까지 가야 했다. 그때는 어떻게 했나 싶을 만큼 서울을 다녀오는 것이 고된 일이었다. 막상 가면 밤새 씩씩하게 일을 했지만 돌아오면 꼬박 2~3일은 후유증으로 힘들었다.
서울을 가는 날은 아무리 피곤하고 지쳐도 얼굴에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감추려고 해도 저절로 표시가 날 수밖에 없겠지만 최대한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지키고 싶어 했다. 거래처를 방문하면 항상 약간의 하이 톤으로 인사부터 했다. 피곤하고 지쳐도 일단 인사부터 밝게 하고 나면 오히려 덜 지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어머. 사장님 어떻게 오늘 오셨어요?”
“언니. 어서 오세요. 온다고 수고하셨죠?”
언제부턴가 나의 단골 매장이 되었고 오래 봐온 직원들이나 거래처 사장님들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 가방에는 현금 몇 백만 원이 들어있으며 나는 지금 이 매장에서 얼마를 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가게에서는 내가 사장이지만 서울을 가면 내가 그들의 손님이다. 그들에게 진상 손님이 될지 찌질 한 손님이 될지 VIP가 될지 알 수 없다. 때론 큰돈을 쓰는 손님은 아니어도 매너 있고 좋은 손님이어서 밉상이 아닌 사장님이나 언니가 되어야 한다.
새벽이 되어가도 들르는 매장마다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자신을 지켰다. 프로가 되어가고 있었다. 벌써 3~4년 전의 이야기이다.
거래처를 방문하면 꼭 음료를 챙겨주는 매장이 있었다. 나름 내가 VIP 고객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날 구매 금액과 상관없이 늘 생과일주스나 아이스커피 등을 대접받았다. 사계절 상가 안은 대체로 숨이 막히고 갑갑했다. 특히 겨울이 심했다. 밖은 추운데 안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목덜미로 땀이 고이기도 했다. 밖은 한 겨울이지만 시원한 음료가 간절히 생각날 때가 있다. 제일 장사가 잘 되는 집은 상가마다 들어서 있는 작은 매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장에서 전화를 하면 냉커피나 생과일주스 등을 만들어 배달하느라고 바쁘다. 나는 가끔 초콜릿이나 바나나우유를 사 먹기도 했다. 초콜릿은 당 떨어진 느낌이 들 때 한 알씩 입에 물면 정말로 기운이 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대문 상가에서 처음으로 맛있는 음료를 발견했다. 친하게 지내는 거래처에서 그날은 나에게 ‘얼박’을 마셔보았느냐고 물었다.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언니. 오늘은 시원한 얼박 하나 드세요.’했다.
좀 있으니 자잘한 얼음을 가득 채운 투명 유리잔에 노란색 물을 부어서 배달이 왔다. 마치 예쁜 칵테일로 보였는데 박카스였다. ‘얼박’ ‘얼음 박카스’의 준말이었다. 이거는 마시는 순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며 눈이 번쩍 뜨이는 시원한 맛에 당 떨어진 몸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달달한 박카스의 맛이 원 샷을 불렀다.
동대문을 추억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 잊고 살았던 ‘얼박’이 생각나네. 자잘한 가루 얼음에 부어서 마시는 박카스 한 잔이 생각난다. 그리고 거래처에 보고 싶은 ‘언니’들과 나에게 ‘누나’라고 부르던 ‘삼촌’ 들도 생각난다.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녀들과 그들은 오늘도 열심히 밤을 낮처럼 살고 있겠지?
photo by sugar
최근 몇 년 사이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동대문에 상인들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대신 중국 상인들이 많이 늘었다. 가끔 서울을 가면 얼굴에 붕대를 감았거나 마스크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젊은 중국 상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서울에 온 김에 성형도하고 동대문에서 옷을 정말 엄청나게 사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중국 상인들도 없고 지방상인들도 발길이 뚝 끊겼으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동대문시장의 모습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요즘은 우리 가게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방이 이렇게 없으면 도매시장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전국이 침체상태이다.